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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eit Sep 24. 2024

노르웨이에서 나무 위를 누려보기

sage


수도 오슬로를 떠나는 날이다. 도시를 벗어나 숲으로 향했다.


국토 면적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만큼이나 산이 많은 나라가 노르웨이다. 노르웨이도 국토의 72%도 산지라고 한다. 다만 산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와 다른,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평탄한 꼭대기를 지닌 노르웨이만의 지형이다.


노르웨이가 이 거대한 자연과 어떻게 함께 하는지를 직접 보러 간다는 생각에 오슬로와는 또 다른 기대감이 가득 차올랐다.


이런 기대감을 누그러트린 건 날씨였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다. 노르웨이는 유럽에서도 가장 비가 많이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더니, 정말 비를 자주 보게 되었다. 흐리던 날씨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되더니,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오고 그치기를 반복하며 잔뜩 흐렸던 날씨



상상으로만 가보게 된 나무 꼭대기 산책길


노르웨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목적지는 하마렌공원였다. 오슬로에서부터 운전으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이 곳은 2023년에 개장한, 매우 독특한 자연친화적인 프로젝트다. 이 공원의 산책로는 지상에서 15m 높이에 설치되어 있는데, 건물 4-5층 정도되는 이 높이가 바로 나무 꼭대기 높이와 맞추어진 것이다. 나무 꼭대기 끝 높이에서 호수와 굽이치는 산등성이를 펼쳐지는 산책로는 그 길이가 무려 1km나 이어진다고 한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나무 위로 올라가 소나무 숲, 맑은 호수, 거대한 바위산 등의 장관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산책로를 걷고 싶다는 기대감에 먼 길을 달려왔지만, 공원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도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입장조차 할 수 없었다. 비가 멎길 기다렸지만 도저히 산책로를 걸어갈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아쉬운 마음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곳을 생각하며 다시금 피오르 호수를 바라보며 소나무의 꼭대기를 따라 놓인 산책로를 걸어보는 상상을 해본다.






나무 위에 만든 집


아쉬운 마음을 다잡고 다음 목적지인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숙소 또한 나무 윗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두 번째 장소이다.


숙소 이름은 Trekronå

노르웨이어로 나무에서 가지와 잎이 무성한 부분을 의미하는, 수관이라는 뜻이다. 한자로 나무 수樹, 갓 관冠을 쓰고, 영어로는 tree crown.

숙소의 이름만으로도 풍성한 나뭇잎 사이로 나무 위에 올려진 조그만 오두막이 연상되었다. 이곳을 만든 사람은 목수로, 어린 시절 나무 오두막을 짓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이 어린 시절의 향수를 바탕으로 코로나 시기 바이러스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휴식을 제공하는 안식처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숙소의 주소를 알려주지 않으면...?


이 숙소의 가장 독특한 점은 바로 주소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다.

체크인 전날 이메일을 받았다. 주소가 아니라, 찾아오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내용이었다. 마치 보물지도에서 보물섬을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안내문은 이런 식이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로 마트를 검색해서 따라오세요.
마트를 지나면 간판이 하나 보이면, 우회전하세요.
조그만 주차표시를 찾아 거기에 주차하고,
산 속 오솔길을 따라 800m를 걸어오세요.
오는 길에 작은 개울 위의 나무다리를 건너,
언덕을 올라오면 됩니다.  


마트까지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달려갔다. 

마트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다같이 탐험가처럼 지시를 하나하나 따라갔다.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먼저 마트와 표지판을 발견하고 다음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들어갔지만 제대로 포장된 도로가 아니었기에 주차장 찾는 것부터 수월하지 않았다.


숙소로 가려면 숲속 오솔길을 따라 들어와서 작은 개울, 작은 나무다리, 언덕을 발견하면 된다고 했는데, 오솔길 800m를 걸어가는 도중에 작은 개울과 그를 잇는 작은 나무다리, 그리고 언덕을 네다섯은 본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작은 이정표 하나 없어서 우리를 더욱 헤매게 만들었다.


옷가지와 일용할 양식을 메고서 나무다리를 건너서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왔는데, 찾고자 하던 곳은 아니었다. 나폴레옹이 군대를 이끌고 원정을 나가 알프스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했던 말 “이 산이 아닌가벼,” 그 유명한 우스갯소리가 절규같은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우리가 머물렀던 그린 캐빈의 바깥과 실내 모습



노르웨이 숲에 불시착한 이방인처럼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도착한 숙소는, 소나무 숲 사이로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생겼다. 캡슐같은 독특한 모양의 오두막과 착륙을 위해 뻗은듯한 검은색 다리, 그리고 탑승하기 위한 나무계단까지.

이 숲에는 단 두 채의 오두막집이 마주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 자리잡고 있었고, 공용공간으로 미니 스파와 캠프파이어장이 있었다. 나무집 안에는 어느 호텔과도 비견될 만한 모던한 인테리어와 어메니티가 갖추어져 있었다.


집안에 들어가면 마치 나무 위에 올라온 것 같기도 했고, 나무 안에 들어온 것 같기도 했다. 나무 냄새가 가득했고, 숲속 나무와 눈높이가 맞으니 눈도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천장과 사방으로 있는 창문을 통해서 자연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왔다. 태양과 나무의 전망이 말 그대로 바로 눈앞에 있었다.


공간 그 자체가 선사하는 경험은 여기 찾아오는 것뿐만 아니라 노르웨이까지 날아온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에 조화되며 고요하게 차분해졌다. 평소에 바라보지 못했던 것을 느끼고, 낯선 감각으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며 그렇게 소나무숲 사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어두운 밤이 찾아온 캐빈과 뒤뜰, 그리고 사우나 (사진출처 : trekronå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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