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기 전 치밀한 사전조사와 꼼꼼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여행을 더욱 여행답게 기억 남게 하는 것은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인연과 행운인 것 같다. 그리고 실망과 아쉬움마저도.
우리는 뭉크의 <절규>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나서,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언덕이 있는 에케베르그 공원 Ekebergparken 으로 향했다. 뭉크가 실제로 <절규>의 영감을 받았던 장소로, 일명 뭉크의 언덕이라고도 불린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친구 2명과 함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한쪽에는 마을이 있고 내 아래에는 피오르드가 있었다. 나는 피곤하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구름은 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했다. 나는 자연을 뚫고 나오는 절규를 느꼈다. 실제로 그 절규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진짜 피 같은 구름이 있는 이 그림을 그렸다. 색채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바로 이 글. 뭉크가 1892년에 남긴 이 유명한 글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하우메 플렌사 JAUME PLENSA, CHLOÉ 2019
헤매도 괜찮아. 친절한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구글맵으로 뭉크의 언덕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니 중앙역에서 트램으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트램을 타고 이동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내 중심가에서 트램이 갑자기 멈추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다. 노르웨이어로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영어로 된 안내는 없었다.
영문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동양인 여자들을 본 한 청년이 “여기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야 한다”라고 말해주었다. 트램에서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내렸지만, 우리는 여전히 트램이 왜 멈췄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당황하고 있었다.
다행히 친철한 청년이 길 건너 버스정류장까지 안내해 주었고, 어디를 가느냐고 묻더니 같은 버스를 타니 본인을 따라오라고 했다.버스정류장에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노르웨이어라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올해 여름에는 트램 대신에 버스를 이용하라는 내용인 것을 눈치껏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청년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고, 우리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미리알려준 덕분에 우린 공원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공원 입구에서는 트램라인을 정비하는 공사가 한창이었고 트램이 멈춰서고 버스로 갈아타야 했던 이유였다.
그리고 이 공사 때문에 돌아갈 때도 약간 헤맸지만, 그땐 두 번째 친절은 만나지 못했다.
힐데 메흘룸 Hilde Mæhlum , Konkavt ansikt(오목한 얼굴)
뉴욕 출신 + 노르웨이 거주 + 한국어 구사 = 이게 가능해?
버스에서 내렸는데 어디선가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버스에서 같이 내린 금발의 여성 한 분이 우리를 보며 인사하고 있었다.
그녀는 뉴욕사람이지만 결혼하며 노르웨이 오슬로에 정착했고, 우리나라 문화를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국어가 정말 능숙해서, 가끔 영어도 섞어서 이야기했지만, 그녀와 같이 동행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나누고 싶었다. 아쉽게도 그녀는 뉴욕에서 온 동생과 일정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입구에서 한국어로 인사하며 헤어졌다.
유럽을 매년 오다 보니 한해가 다르게 한국에 대한 인식과 위상이 달라지는 게 절로 체감이 된다. 니하오, 곤니찌와 같은 인사말만 받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오늘처럼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이 늘어나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내심 기분이 좋기도 하다.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THE COUPLE 2003
나도 <절규> 속으로!
좋은 사람들을 연달아 만나다 보니 고양된 기분으로 에케베르크공원 입구에서 뭉크의 언덕까지 쭉 올라왔다.
우리는 <절규>처럼 불타오르는 하늘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저녁시간에 맞춰 왔지만 이건 너무나도 한국적인 사고에 기초한 계획이었다. 우리가 간 5월에도 이곳은 해가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여름철에는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백야가 찾아온다.
우리가 간 시기는 아직 여름은 아니고 일몰 시간이 저녁 9시인 것까지도 확인하고 왔지만, 야속하게도 오슬로는 우리에게 붉게 타오르는 저녁 노을을 보여주진 않았다.
여기 언덕 위에서는 구름 가득한 하얀 하늘과 피오르 해안선, 오슬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저 멀리 뭉크미술관도 보인다. 이 언덕에서 뭉크는 무엇을 바라봤을까 상상해 본다.
<절규> 속의 붉은 하늘은 뭉크의 상처를 통해 바라보았기 때문에 피처럼 붉게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
뭉크는 바로 이 언덕에서 그의 어머니와 누나 소피의 장례식을 치렀고, 여기 근처에는 여동생 라우라가 입원한 정신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이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뭉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붉게 물든 <절규>의 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하나 남았다.
언덕 옆으로는 넓은 녹지의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한때 세계 2차대전 시기에는 독일군이 무려 5,000개 넘는 지뢰를 매설했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나무에는 그 표식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평화로운 숲에 걷기 좋은 산책로가 조성되고 다양한 현대 조각작품이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 L´ouiseau Amoureux Fontaine, 1993
<절규> 속 피 냄새가 날 것 같은 곳을 찾으러 왔지만, 예상치 못한 친절을 받았고, 한국어를 잘하는 뉴욕출신 새댁을 만났던 곳으로 기억에 남는 에케베르그언덕. 우연한 친절과 스쳐지나간 인연, 기대했던 것은 보지 못한 아쉬움까지 이 모든 순간이 모여 오슬로가 더욱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