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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프란 Dec 11. 2020

뭐, 우리가 난임 부부라고?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부부의 난임 진단은 가까운 친구 부부를 통해 이루어졌다.

“야 너 그럼 난임이야”

사전에 따르면 난임의 정의는, ‘정상적인 부부관계에도 불구하고 1년 이내에 임신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맞다. 우리 부부는 규칙적으로 성관계를 갖진 않았지만 1년 동안 임신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난임이었다.

4주년 결혼기념일을 넘기고 부터 나는 조금씩 조바심이 났다. 주변에서 들리는 이따금의 임신 소식을 들으면 축하는 기쁘게 해주되 한편으로 ‘그럼 나는 언제?’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타 부부의 임신 소식을 ‘아 진짜?’ 하고 시큰둥하게만 여기던 남편도 이제 슬슬 ‘와 남들은 임신이 참 쉬운가 보다...’ 하는 눈치였다.

사실 대학 입학, 취업, 결혼 등 일련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통과 의례에서 크게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게 나였다. 몸은 미국 땅에 발붙이고 살지만 누가 말한대로 나는 100% 한국인이었다. 대학 입학에서 가 군이 떨어지고, 나 군의 불합격 통보를 받고, 다 군의 결과를 기다리는 2004년의 그 초조한 기분이었다. 얼추 따져보아도 내 친구들 중에 90%는 결혼을 한 상태고, 그 중 70%는 아이가 있었다.

“둘다 건강하니까 아기 금방 생길거야”

우리 부부는 결혼 후 단 한번도 피임을 하지 않았다. 둘이 서른, 서른 하나에 결혼을 하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아기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들의 그 ‘자연스럽게’ 가 우리 부부에겐 조금도 자연 스럽지가 않았다. 우리보다 늦게 결혼한 젊은 부부의 임신 소식을 들을 때 축하보다는 부러움의 마음이 커져갔다. 어느새 나는 모르는 아이의 인스타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친구 아기 계정의 피드를 보며 부러움과 사랑스러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달 사이의 호르몬 주기에 따라 내 감정도 요동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결혼 5년 차임에도 아직 신혼부부 같다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연애도 1년 반이나 했고, 연애 같은 결혼 생활도 4년이면 내겐 충분했다. 우리 부부에게 임신에 관한 한 남편보다는 늘 내가 주도적이었다. 요즘에 난임 병원에 가는 건 흠도 아니라 했다.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에게 난임 진단을 내려준 친구 부부의 임신 성공은 실질적으로 큰 자극이 되었다.

결국, 우리는 난임 전문 병원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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