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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프란 Dec 14. 2020

안전과민증인 남자, 안전불감증인 여자

비록 부부의 난임을 인정했다고 해도 당장 난임 병원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우린 미국이었고, 둘 다 지켜야 할 직장이 있었고, 매달 렌트비를 내야 할 집에 살고 있었다. 한마디로 오래 집을 비워 두거나 둘 중 하나라도 일을 그만둔다거나 할 경우 현재의 생활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미국의 코로나 사태는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정부의 STAY HOME 행정 명령이 내려지고 대부분의 지인들이 재택근무를 할 때 나는 필수 업종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근무지 출근이 유지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 회사에서는 속속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 확진자는 2주 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코로나 완치 판정을 받지 않은 상태로 다시 출근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평소 안전불감증인 나와 다소 안전과민증인 내 남편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잦은 의견 충돌과 동시에 서로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우애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평소 용감한 편이기도 하고 늘 최악의 상황은 배제하고 보는 편인 나는 팬더믹 상황에서도 나름 평소와 비슷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거기엔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밖에 없는 식품유통 분야라는 업계의 특성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반면 재택과 정상 출근을 병행했던 남편은 동료의 확진으로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이 한껏 고조된 상황이었다. 마스크와 페이스쉴드는 우리 부부의 출근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팬더믹 상황 속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만큼 힘든 건 가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타지에서 알게 된 속 깊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의 퇴근 후 모임이나 주말여행 같은 미국 생활의 소확행이 점점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내가 “바로 길 건너면 코앞인데 가서 얼굴이라도 보고 갈까?” 하면 남편은 요즘 시기에 분명 민폐라며 내 충동을 저지시켰다.


의도치 않게 남편과 나만의 밀도 있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출근해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우리 부부는 라이언(Ryan)과 네오(Neo)처럼 24시간을 붙어 지냈다. 라이언은 늘 네오의 출근과 근무 환경에서의 어떤 접촉을 걱정하며 페이스톡으로 마스크와 페이스쉴드 착용을 확인하곤 했다. 라이언의 안전과민증 덕분에 네오의 안전불감증은 점차 상쇄되어 보다 철저한 방역을 이어가는 코로나 시대의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까다로운 방역 만으로 미국 전역의 거센 코로나 역풍을 거스를 순 없었다. 한국에 계신 가족들의 우려는 점점 커져갔고, 오랜 봉쇄와 집-회사-마트로 이어지는 단조로운 생활에 우린 조금씩 지쳐갔다. 미국 생활 3년 차, 부부의 최대 위기이자 전 지구적인 위기의 시간들이었다. 2020년 1, 2월 새해를 맞이하며 세웠던 계획에 도전해 보기도 전에 무력한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불안과 좌절과 원망의 나날들 속에 우리 부부는 잠시 미국을 떠나 있기로 결정을 내렸다.


마음의 결정은 오랜 고민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귀국 준비를 위한 미국 생활 정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귀국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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