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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17. 2020

주인공이 있었는데요, 없어졌습니다.

정세랑, 피프티 피플 

  

제목이 무슨뜻인고 하니 정말 50명의 이야기였다. 사람 이름으로만 이루어진 단편은 각각 제목이자 주인공인 인물의 이야기를 짧지만 강인하게 다룬다. 50여명의 날씰과 씨실이 직조해나가는 한 폭의 이야기인데, 그 과정에서 아주 작은 존재로 스쳐지나가는 인물들은 그 전후에 자신만의 장(章)을 갖고 있다. 모두가 자기 인생이라는 연극무대의 주인공이라지만 누군가의 연극에서는 지나가는 조연출이기도하고, 아예 이름을 못 올리기도 한다.  

   작가는 미색의 퍼즐 조각 처럼, 주인공 없는 소설을 쓰기로 했다고 말한다. 인물이나 정물을 맞추고 나면 남는, 모두 같은 조각으로 보이는 옅은 하늘색이나 미색의 수없이 많은 조각에 비유한 피프티피플의 50명은, 사실 그런 미색의 조각들이 모여 퍼즐 한 판을 맞추는 것 처럼 스쳐지나가지만 스쳐지나가지않는 50명 (혹은 47명, 혹은 51명) 의 이야기가 정교하게 엮여있다.

  덕분에 잔인하고 슬픈 사건들이 잊을만하면 툭, 하고 올라와 읽다보면 호흡이 빠르고 술술 책장이 넘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뒷목이 뻐근해져왔다. 안타깝고도 잔인한 죽음을 당한 승희, 어린 정빈과 다운의 눈으로 보기에 더 마음아픈 가족 이야기..... . 

  그렇지만 책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 역시 인물간의 촘촘한 관계였다.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내가 뇌물을 준 공무원이 자살을 했다고 했다, 라고 하면 '아, 한영의 아버지인가?' 하고 내가 추측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노트에 정리해가며 읽었어도 놓쳤을 수많은 관계가 있다. 소설적 장치가 아니라 사실 나와 내 주위의 50명을 정리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가장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는 가장 현실과 닿아있었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한 곳에 모이는 마지막 장에서는 옅은 색의 조각들이 모여 비로소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본래 조각이 속해있는 하늘이나 다른 배경뿐만이 아니라, 일찌감치 맞춰 둔 오브제들까지 연결한 더 큰 그림이다. 

  책을 읽다보니 뭔가 마음이 가벼워진다. '나는 결국 우주의 먼지일뿐인데' 라는 문장을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든다. 때로는 굵직하게 영향력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이름도 기억에 남기지 못하면서 그렇게 내 조각도 자리를 찾아가나보다. 원래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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