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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이 Mar 22. 2023

출근 시간이 업무시간에 포함된다면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니라서

2023.03.22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 퇴근 시간과 겹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가 거의 만석이다. 좌석 두 개가 붙어있는 뒷자리에 빈자리가 있는 듯 해 가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복도 쪽으로 앉고 창가 쪽에는 가방을 두었다. 또 다른 자리엔 중년의 남성이 앉아 있는데, 체구가 커서 빈자리 삼분의 일 이상에 엉덩이를 걸쳤다. 어떡하지 어영부영하는 중에, 아주머니가 가방을 치워준다. 서둘러 버스 좌석에 앉은 후에야 안도의 날숨이 나온다. 버스 차창 밖으로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 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 머릿속 어딘가에 박제된 듯 익숙한 풍경이다.


가방 자리를 내주는 건 당연한 것 같아도 당연하게 일어나진 않는다. 가방으로 자리를 선점한 것이 기득권이 되기도 하니까. 이해는 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으니. 창밖을 보며 딴청을 피우거나 배낭을 문지기 삼아 잠을 청한 사람이면 그냥 그려려니 할 수밖에 없다. 퇴근길까지 복불복 낯선 이의 체취를 맡으며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루종일 사람에 치인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 다 살자고 그러는 거 아니겠나. 숨 쉴 곳이 필요한 건 다 같은 마음이겠지. 원망을 하자면 출퇴근길 사람이 많은 탓이겠지. 그런데 많아도 너무 많다.


10년 전쯤, 출근길 지하철에서의 일이다. 지하철이 역에 멈춰서고 사람들에 밀려 쏟아지듯 전동차 밖으로 나오는 중에 옆 출입문 쪽에서 한 남자의 고성이 들려왔다.

“아 씨, 내린다니까!”

찢어지듯 날카로운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남자에게로 향했다. 남자는 출입문 가까이에 서 있던 한 여성을 신경질적으로 밀치며 내리고 있었다. 호리한 체형의 젊은 여자는 남자의 힘에 속수무책 밀려 플랫폼으로 미끄러졌다. 구두를 신은 여자의 몸이 앞으로 쏠리며 저러다 넘어지겠다 싶은 와중에 다행히 균형을 되찾는다. 출입문 쪽에 서 있던 그녀 때문에 못 내릴 뻔했다는 듯 남자는 여자를 쏘아보며 씩씩대고, 여자는 어쩔 줄 몰라하더니 붉어진 얼굴로 다시 전철에 올라탄다.  남자는 그래도 화가 안 풀리는지 혼잣말로 불평을 쏟아대더니, 바빠죽겠다는 듯 출구 쪽 계단을 향해 간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기함이 나올 정도로 당당한 남자의 태도. 잠시 남자를 향하던 사람들의 관심은 출근이라는 공통된 목적에 의해 흩어져버리고, 남자가 시야에서 멀어진 후에야 나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남자를 저토록 화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분노에 서린 남자의 표정과 목소리가 잔상처럼 남아 나를 따라왔다.



만약, 전동차에 함께 탄 사람이 방해물처럼 느껴지고 환승통로에 가득한 사람이 내가 앞질러가야 할 장애물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당연한 일일까?


뒤이어 생기는 의문

극심한 출퇴근 스트레스가 정신적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면, 그건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할까?


1.  본인의 선택이니 오로지 개인의 탓?

2. 직원의 주소지를 고려해서 인사한 것이니 회사에도 일부 책임? 산업재해에 포함 가능할까? (출퇴근 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 가능 여부)

3. 수도권 중심의 일자리와 출퇴근의 혼잡을 분산하지 못한 사회기반시설의 부족 등 국가와 지자체의 정책구조적 문제?

4.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논의할 가치 없다?

5.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


요즘엔 선택근무제를 하는 회사들도 많아지고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도 종종 하니, MZ세대들의 출퇴근은 이전과는 좀 달라졌을까?

취뽀(취업 뽀개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취업이 어려우니 출퇴근의 어려움은 배부른 소리일지.


만원 버스가 답답해서, 해보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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