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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이 Jun 04. 2023

감자합니다


감자를 먹는다.


아기 주먹만 한 크기의 햇감자가 적당히 익어 뽀얗고 포실하다. 한입 베어 물자 감자의 속살에서 하얀 김이 솟아오른다. 보드라운 감자가 입속을 따뜻하고 다정하게 데워준다. 햇감자는 그저 쪄서 소금에 살짝 찍어 먹기만 해도 맛나다. 담백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동네 산책을 하다 감자를 팔고 있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아파트 단지들에 둘러싸인 한적한 사잇길을 걷는 중이었다. 마실 나온 동네주민들이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사이로 스며드는 작은 공원을 지나 모퉁이를 도는 데 바닥에 늘어놓은 소박한 좌판이 보였다.

     

바구니 속 옹기종기 햇감자들, 서로의 어깨를 붙이고 망에 담긴 양파들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종이 박스를 잘라 꾹꾹 눌러쓴 가격표는 한눈에 보아도 실해 보이는 야채들에 비해 한없이 착했다. 잠깐의 망설임 사이 내 생각보다 앞선 걸음은 이미 좌판을 지나 반블록쯤 와 있었다.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길을 되돌아 좌판 앞에 섰다.

     

“감자 한 바구니만 주세요.”

간이 의자에 앉아있던 노인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이걸로 할게요.”

흠집이 없는지 요모조모 뜯어본 후에 가장 좋아 보이는 감자 바구니를 들어 올리자 할아버지는 그새 검정 봉다리를 탁탁 떨어 양손으로 벌리고는 말했다.

“확 쏟아부어요.”

     

바구니에 담긴 감자의 양이 많아 잠시 주저하다 그의 말대로 봉지에 감자를 쏟아부으니 빈 봉다리가 묵직해졌다. 할아버지가 내게 감자봉지를 건네며 고맙다 하신다. 시중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과 푸짐한 양에 감사한 건 오히려 나인데. 아마 오늘치 장사가 잘 안 되셨던 모양이다. 모퉁이 구석진 자리 소박한 좌판에 사람들 눈에도 잘 띄지 않았을 듯했다.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봤다면 좋은 감자란걸 분명 알아봤을 텐데.


"고마워요~"     

“(제가 더)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 집으로 가는 길, 봉지 속 감자들을 다시 들여다봤다. 갈색 흙을 툭툭 털어내면 보일 듯한 말간 얼굴들, 흙에서 나와 노인에게서 나에게로 옮겨온 녀석들이 빼꼼히 나를 올려다본다.

    

고맙고 뭔가 든든한 기분.




+ 봉지가 어법에 맞지만 봉다리의 말맛이 좋아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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