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인 여러 명의 이야기를 참고해 쓴 것으로 픽션에 가깝습니다.
잊을 만하면 ‘살아있냐.’ 안부를 전해오는 몇 안 되는 친구. 9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학교 축제에서 서태지의 컴백홈을 열심히 따라 추던 9는 지금은 14살 10살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 소녀 같은 데가 남아있어 그녀가 깔깔 환하게 웃으면 속수무책 따라 웃게 된다.
9가 나를 만나면 레퍼토리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 그때 진짜 창피했던 거 알아? 너 진짜…”
9는 아직도 울분이 남은 듯 툴툴댄다. 그때 금방이라도 울 것 같던 9의 표정을 떠올리며 나는 앞으로도 얼마간 9의 투정을 받아주겠다 다짐한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수업이 있던 날, 9는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왔다. 수업시간 10분 전이었다. 9가 교실 중간쯤 앉아있던 내게 다가와 옆 자리가 비었냐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오리엔테이션 때 만났던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자리(임자)가 있다고 말했다. 빈자리를 찾지못한 9는 결국 교실 뒤에 홀로 서있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수업종이 울렸다. 내가 기다리던 친구는 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9가 교실 뒤에 서있는 것을 의아해하며 비어있던 나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저기 빈자리 있으니까 앉아.”
9가 쭈뼛거리며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나는 졸지에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 올 친구가 있었다는 나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알게되었다. 교실 앞쪽 자리에 내가 기다리던 그 아이가 앉아있는 것을.
9에 대한 미안함과 다른 자리에 앉은 친구에 대한 서운함 같은 여러 복잡한 감정 속에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고개를 숙인 채 교과서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난 후 나의 그런 불편한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9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들어 9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었다.
9의 넓고 반듯한 이마와 단정한 이목구비는 동양화속 옅고 고운 선을 가진 여인들을 떠올리게 했다. 알면 알수록 그 참한 이미지와는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말이 없고 주변에 별 관심이 없던 그 시절의 나와 다르게 9는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다. 서태지의 오랜 골수팬으로 춤과 노래를 사랑했고, 문학을 좋아하고 글쓰기에도 소질이 있어 학교 교지편집부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던 9. 모든 앞장서서 하던 그녀의 주위엔 늘 친구들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9는 또래 아이들보다 통이 크고 품이 넓었던 것 같다. 9를 보면 그냥 천성이 저렇게 다정한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볼수록 신기한 사람, 내가 9에게 그렇게 말하면 9는 내게 ‘넌 볼수록 골때린다’며 농을 친다. 그래서 너랑 나랑 친한가보다고 우리는 깔깔댄다.
거절과 당황으로 시작한 우리 사이,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된 9의 첫째 아들, 호는 엄마를 빼닮았다. 얼마나 똑똑하고 다정한지,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흐뭇하다. 9는 호가 사춘기가 되었다며 힘들어한다. 방문 쾅 닫고 잠가버리기를 시작했다나. 그래도 학교에서는 의젓한 척을 하는지 회장도 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다며 9는 은근슬쩍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이번에 담임선생님이 반에서 꼴등 하는 친구를 호의 짝꿍으로 정해주었단다. 옆에서 친구를 잘 도와주고 챙겨주라는 당부와 함께.
그렇게 다정하던 호가 어느날은 짝꿍에게 수업을 설명해주느라 필기도 놓치고 공부도 못한다며 ‘짝궁이 밉다’고 했단다. 오죽하면 그 아이 입에서 밉다는 말이 나왔을까. 친구를 챙기고 돕는 건 좋지만 호에게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9는 나의 걱정을 불식시키듯 하하 웃는다. 호가 밉다고 솔직히 표현하니 괜찮은 거라며. 호도 언젠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면 짝궁의 마음을 저절로 알게 되지 않겠냐면서.
9는 언제나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많이 한다고 한다. 명상을 하거나 멍 때리기를 하는 건 좀 어떻겠냐며. 작년에 두통으로 꽤나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며칠째 이어지던 두통에 새벽에 119에 실려 응급실에 실려간 나는 뇌에 작은 혹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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