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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아 Mar 23. 2016

로봇 407의 여름 (12화)

6. 박사님의 사정(2)


리안 부인의 안내로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산속에 있는 집이지만, 아늑하고 멋진 집이었다. 


리안 부부는 별을 좋아해서 천문대를 짓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조사를 하고, 조언을 얻으러 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분이 대 박사님이었다. 대 박사님은 멀지 않은 마을에서 기상을 연구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대짝이를 보았다고 한다.


부인의 말을 듣다 보니 대짝이의 능력이 이해가 갔다.


“그런데 기억을 못한다니, 대 박사님이 많이 걱정을 하고 계시겠는걸.”

“대... 박... 사... 님 이요?”

“그래. 널 무척 아끼시는 것 같았는데.”

“그런 인연이 있다니, 대단하구먼. 그렇지 않니, 얘들아?”


표정이 어두운 우리와는 다르게 척 박사님만 신이 나 있었다. 


“걱정할 것 없다. 내가 다 고쳐줄 테니 말이다. 곧 돌아갈 수 있을 거다. 게다가 기억이 돌아오기도 전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되다니, 엄청 좋은 징조야.” 


박사님은 언제나처럼 기운이 넘쳤다. 단지 다리가 똑하고 부러진 것만 빼면 평소보다도 더 건강해 보였다. 천문대를 만드는 걸 도와주겠다며 마을에 따라 들어와서는 그날 바로 산길에서 굴렀단다. 평소에도 운동이란 걸 딱 싫어하는 분이니 이런 높은 산을 몇 시간만 올라도 다리가 풀렸겠지.


도움을 준다고 와서는 이 집에서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죽을병은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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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실 웃고 있는 박사님을 보니, 일부러 다리가 부러진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집 밥이 맛있나?

박사님의 등 뒤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리안 부부의 아들, 우리에게 돌멩이를 날렸던 미로라는 아이였다. 슬금슬금 가까이 오더니 바로 내 옆에 앉아있던 척 박사님의 등 뒤에서 나를 관찰하는 것 같았다.


“보다시피 작은 문제가 생겼다.”

“작은 문제인가요? 마을은 아주 큰 문제가 곧 생길지도 몰라요.”

“아, 맞다! 바로 그거야.”

“네?”

“내가 급히 여기 온 이유 말이다. 장마, 장마 소식을 받았거든. 그런데 여기 와서 이 모양이 되었으니 엄청나게 곤란했단다.”


박사님은 약간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따라오너라. 보다시피 여기는 무전기도 없고, 내가 구하러 온 부품들이 없다면 연락을 한다고 해도 다 소용없단 말이지.”


척 박사님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작은 창고였다. 리안 아주머니의 멋진 집을 박사님이 아주 못쓰게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했다. 이미 박사님의 연구실같이 너저분했다. 


“자, 이걸 보거라.”


그리고 내 머리통만 한 크기의 기계를 꺼내놓았다. 기다란 선이 있지만 전체적으론 공을 반으로 잘라놓은 것 같은 모양의 괴상한 기계였다. 하긴 박사님이 내놓은 물건 중에 괴상하지 않은 것이 별로 없지.


“박사님, 시간이 없어요. 이런 걸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요.”


박사님은 조금 날 흘기더니,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여기서 놀고만 있는 줄 아느냐? 다 뜻이 있어 온 것이다. 잠깐, 아주 잠깐 잊어먹긴 했지만... 그래서 이걸 만들고 있었다.”

“이게 뭔데요?”

“수문을 열 수 있는 비장의 열쇠지.” 

“열수 있다고요? 그럼 어서 가요!”

“그런데 문제가 약간 있어. 조금 손을 봐야 한다. 이틀만 기다려.”

“이틀이요? 대짝이 말로는 장마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어요. 여기서 전속력으로 걸어도 일주일은 걸릴 텐데, 박사님 다리가...”

“이걸론 완벽하게 고칠 수 없어. 필요한 부품은 도시에 있는 장에게 부탁을 해 놓았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돼버렸으니 내가 가지 않아도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단다. 하하하!”


박사님은 부러진 다리를 내려다보면서 자랑을 이어갔다.


“염치없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려 했는데, 네가 딱 나타나 주지 않았겠니. 역시 난 뭔가 느낌적으로 대단해.”


박사님은 짧은 자화자찬을 마치고 대안은 내놓았다. 


“딱 이틀만 있으면 기계가 완성된다. 내가 직접 갈 수 없으니 더 완벽하게 만들어한다. 너는 이틀 뒤에 출발해도 늦지 않고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그럼 이틀 동안 기다리면 되나요?”

“아니, 밥값을 해야지.”

“네?”

“내 밥값.”


박사님은 웃으면 우리를 천문대 공사현장으로 내몰았다. 그래도 다행은 스스로 민폐인 건 아나보다. 덕분에 나와 대짝이는 이틀 동안 돌을 날라야 했다. 어딜 가도 공짜 일꾼이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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