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영아 Jan 29. 2021

#01 힘들게 이사를 합니다.

부산으로요.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하기 전부터 부동산과 삐걱거렸다.

갱신한 계약 기간 전에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 세입자가 구해질 때까지 부동산 중개료와 월세를 내가 부담을 한다는 조건이었는데, 여기까진 괜찮았다.     



“제가 이사 간 후에 집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사를 간 후에 집을 보여주는 걸 원했기 때문에 내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집주인도, 방을 내놓은 부동산 대부분에서는 모두 이해를 해주었다. 다음 세입자가 오기 전까지 월세와 부동산 중개료를 내가 다 부담하기로 했으니 돈만 제대로 내면 문제가 없을 듯했다.


집을 빨리 빼려면 바로 보여줘야 하는데, 왜 그랬는가?

나는 집에서 일해야 했다. 집에 있는 건 맞지만 집중해서 일하는 중간에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오게 되면 곤란했다. 밤낮이 바뀔 때도 있기에 자고 있는데 사람이 오면 더욱 곤란했다.


짐 상자가 점점 많아져서 사람이 들어오기도 힘든 데다가, 들어와도 짐 상자 때문에 볼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집을 보여주려면 짐 상자를 치워야 했지만, 슬프게도 집이 좁아 치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사람이 들어오면 짐 상자와 같이 다닥다닥 있어야 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을 불특정 다수에게 수시로 보여준다는 것도 힘들었고, 공모전 기간도 겹친 데다가 작업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밤새 작업하다가 뻗어있을 때도 있었기 때문에 집에 있어도 시간 맞춰 집을 보여주는 건 힘들 것 같아 내건 조건이었다.    

 

더군다나 코로나바이러스가 계속 돌고 있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을 계속 집에 들이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나는 평소 호흡기가 약해 굉장히 조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의 접촉을 되도록 피하려고 했다.      


부산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집을 보던 당시, 세입자가 있던 집을 볼 때 불편했던 점이 떠올랐다. 제대로 보기 어려운 데다가, 혹시라도 감염 문제가 생길까 봐 문을 열어보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보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부산에서 구한 집은 넓은 편이라 서로 멀찍이 거리 두기는 가능했다는 것.     

하지만 서울 집은 달랐다. 거리 두기는커녕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오면 꽉 찰 예정이었다.     


지역 간의 이동인 데다가 자가격리라도 하게 되면 일정에 크게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부동산에 내 사정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집을 보겠다고 부동산에서 전화가 오면 이사를 간 후에 집을 보여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삿짐이 많아 집을 보여주기도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물건을 다 치운 후 깔끔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부동산인데요~”
“네. 저…. 제가 이사 간 이후에 집을 보여주고 싶은데요….”
“네~. 알겠어요~그럼 기다렸다가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요~”     



이삿날이 가까워졌기도 했고, 앞에 말한 대로 부동산 대부분은 수긍했다. 



모두 기다려주겠다며 협조를 해주었지만, 유독 한 부동산과 트러블이 생겼다.


“XX 부동산입니다. 집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이사를 가기 약 3주 전 문제의 XX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제가 11월 30일이 이사라서요. 이사 간 이후에 집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여러 부동산의 같은 전화를 받게 된 시기였기 때문에 평소처럼 이사 간 이후에 집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XX 부동산은 처음엔 대부분의 부동산처럼 그럼, 이사 후에 보겠다는 말을 하였고, 그 말처럼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이사 가기 일주일 전,


“XX 부동산입니다. 지금 집에 계시죠? 집 좀 보겠습니다.”


작업 중에 XX 부동산에서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다. 분명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집에 온다고?


“제가 나간 후에 집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미리 이야기했었습니다. 지금은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나는 평소처럼 지금 못 보여주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아니, 왜요? 지금 집 근천데 좀 보여주면 안 돼요? 지금 사람도 있는데?”


부동산 중개업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불쾌함을 내비쳤다.     


“지금 일 중이기도 하고, 짐이 많아 보여드리기 힘듭니다. 거기다가 지금 시기에 모르는 사람을 계속 집에 들이기가 힘들어요. 일주일 뒤에 이사하니까 그 이후에 와주세요.”


“아니, 왜요? 집 좀 보여주세요.”


몇 번을 설명해도 XX 부동산 중개업자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끈질기게 말을 하려고 했다. 내 말을 계속 자른다. 

집을 빨리 빼려면 보여주는 게 맞지만, 평소와 다른 이런 코로나 시기에, 이사를 앞둔 시기에, 이 좁은 공간에 모르는 사람을 계속 들일 수는 없었다.     


“안됩니다.” 

    

집을 보고 싶다는 말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이미 새 세입자가 들어올 때까지 비용 부담을 하기로 했고, 집주인에게도, 연락 온 부동산에도 모두 양해를 구한 상태였다. 

     

“그럼 사진이나 동영상이라도 찍어줘요. 15초 정도로요. 문자로 보내요.”   

  

이 부동산은 굉장히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나와 통화하는 내내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가 연속된 작업으로 수면 부족에, 이삿짐 준비까지 하던 나는 하마터면 폭발할 뻔했다. 나는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거로 일단 통화를 끝냈다.


사진을 찍으려면 방 가득한 짐 상자를 치워야 했다. 그러기엔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아 나중에 찍겠다고 생각하고는 계속 작업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잠깐 흐른 뒤, 다시 XX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손님이 다른 방 보고 지금 그 방 계약하셨어요. 집도 안 보고 계약하셨어요. 아니, 집은 왜 안 보여주시는데요?”


또다시 불쾌한 티를 팍팍 내는 목소리였다. 당장 집을 못 보여주는 사정을 여러 번 설명했는데도, 내 사정은 듣지도 않는 그 태도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여유 있고 이해심 많았던 타 부동산들과는 달리 XX 부동산은 공격적으로 고객을 잡으려는 것 같았다. 내 사정과 코로나바이러스 시국을 몇 번 이야기해도 더는 말도 안 통하니 진이 빠졌다.   



  

이삿날 아침부터 짐을 다 옮기고 이삿짐 트럭을 먼저 부산으로 보내고 나는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가기로 했다. 보증금은 새 세입자가 들어오는 날 받기에, 나는 나머지 공과금 정산을 하고 잊은 게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아침 일찍부터 이사 준비를 하느라 몸이 지쳤지만, 아직 부산에 내려가서 다시 이삿짐 정리를 해야 하므로 KTX 안에서 좀 쉬기로 했다. 


하지만 부산으로 향하는 KTX 안에서도 XX 부동산 중개업자의 불만은 계속되었다. 열차 안에서 쉬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객실 내에서 받을 순 없으니 통로로 나갔다. 

    

“지금은 집에 들어가도 되죠?”


“.... 네. 짐 다 뺐습니다.”


나는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사를 마치자마자 집 앞에 온 것 같았다. 그 후에 불만이 이어졌다. 왜 집을 안 보여주냐느니, 다음 세입자는 집도 못 보고 들어갈 뻔했다느니, 왜 이 집은 도면이 없는 것인지, 사진은 또 왜 없는 것인지. 도어락 비밀번호가 틀렸다느니.      


이삿짐 옮기느라 지친 나는 KTX 통로에서 중개업자의 짜증 섞인 불만을 들어야 했다. 도면 이야기는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도 받은 적 없으니까. 

지쳤기 때문에 대꾸하기도 힘들었다.      


“도어락 비밀번호가 틀린 것 같은데요? 0 네 개 아닌가요? 왜 번호가 다르죠? 안 들어가지는데요? 여기 관리실 분도 모른다고 하시고.”


마지막까지 머리가 지끈 아파질 정도로 트집을 잡았다. 분명 비밀번호는 집주인에게 문자로 보냈지만, 잘못 전달받은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잘못 가르쳐줬다는 식으로 또 짜증을 낸다.


“비밀번호는 집주인분께도 문자로도 이야기했습니다. 000000입니다. 0이 여섯 개요. 다시 확인해보세요.”


“아…. 0이 여섯 개. 4개가 아니었네요. 아 열린다. 네. 그럼.”

  

갓 이사 나간 집을 보러 왔는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통화 종료인가 싶었는데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아직 통화연결이 되어 있다. 기다려야 하나 싶어서 몇 초 기다리다가 내 쪽에서 종료 버튼을 눌렀다.

통화가 끝났다. 어렵다. 어려워. 이 코로나 시기에 사람 접촉을 최대한 피하고 이사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통화가 끝난 후 다리의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끝났다….”     


이렇게 힘들게 이사를 하였기 때문일까. 정신도 몸도 다 지쳐버렸다. 부산에 빨리 도착해서 새 집에서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들게 이사했으니 북서향 집이지만 그 집은 따뜻할 거야. 하는 엉뚱한 생각과 함께.


이전 01화 #00 북서향 집에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