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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아 Jan 23. 2021

#00 북서향 집에 살고 있습니다.

프롤로그



      



“택배 박스 업체에 불이 나서 상자 판매를 제한합니다.”
“그럼 박스는 한 사람당 5개까지인가요…?”
“네. 4호, 5호는 모두 합쳐 5개까지 가능합니다.”     



큰일 났다. 이사가 코앞인데 상자를 한 번에 살 수 없다니. 

며칠 전만 해도 그런 말은 못 들었었는데, 잠깐 여유 부리는 사이에 택배 상자 제한이 걸렸다. 

    

왜 미리 사놓지 않았냐고 한다면, ‘집이 좁아서요’라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있는 동안 신축 오피스텔에 살았다. 비쌌지만 그만큼 안전했고 깨끗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오피스텔은 실평수가 좁아 물건을 놓기가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그림 작업을 하면 할수록 집이 점점 좁아져 갔다. 인쇄물이 쌓이고, 캔버스가 쌓였다. 일러스트 굿즈들이 가득 찬다. 이래선 다음 작업에 지장이 생긴다.


미술도구도 구석구석에 놔두자 숨 막힐 정도로 금방 가득 찬다. 이렇게 짐이 가득한 집에서 계속 작업할 수는 없었다. 컴퓨터 작업을 위해 액정 타블렛도 있었기 때문에 디지털 작업용 하나, 수작업용 하나 이렇게 책상 두 개를 둘 수밖에 없었다. 


이 좁은 집에 작업용 책상이 두 개라니.     


“좁다…. 좁아….”     

책상 두 개까지 좁은 오피스텔 안에 들어가니 잠잘 공간이 겨우 남았다.     


그래. 이사를 하자. 부산으로.


인터넷만 된다면, 택배만 가능하다면 공간적 제약이 비교적 적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나는 다시 내 고향 부산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부산에서도 작업은 가능하니까.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짐.

짐.

짐.


짐을 싸야 했지만 짐 상자를 놓을 공간이 부족했다. 구석 공간에 상자를 무턱대고 쌓아 올렸다간 무너질 것 같았다. 무너지면 피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으니 자다가 무너지는 짐에 맞지 않으려면 계산을 해야 했다.


짐을 언제 싸야 할지.

어떤 각도로 싸야 할지.


잠깐 정리를 해보자면, 서울에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장거리 이사다. 

일반 원룸 이사는 용달만 부르면 된다는 조언이 있었지만, 나는 용달로는 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삿날을 정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머릿속에서 정리가 끝났으니 집주인에게 예상 이사 날짜를 이야기하고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     

이사를 하기로 한 날짜 한 달 전, 이삿짐센터에 전화했다.

이사를 하기 전 이삿짐센터에서 방문견적을 본다고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원룸 이사여서인지 비대면으로 이루어졌다.





“그럼, 고객님 대략적인 짐은 어느 정도 되나요?”


이삿짐센터 상담원의 말에 나는 내가 가진 가구 목록을 쭉 말했다.

나는 가구 목록을 쭉 말하고 가장 중요한 말을 했다.     


“저…. 박스가 30개는 나올 것 같아요…. 가장 큰 박스로요…. 어쩌면 더 나올 수도 있어요…. 아직 싸고 있는 중이라…. 제가 잔짐이 많거든요….”


“네…. 고객님. 짐이…. 많네요….”     


원룸 이사도, 일반 이사도 하는 곳이니 짐이 많아도 이사는 어떻게든 될 테니까 잠시 걱정을 덜기로 했다.


이제 대략적인 짐은 말했으니 반포장 이사를 해야 할지, 포장이사를 해야 할지 고민을 해야 했다. 포장이사와 반포장 이사에서 고민을 했다. 몸이 편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싸주는 포장이사를 하면 되겠지만, 내 자잘한 미술도구와 작품들, 그리고 중요한 잔짐까지 포장이사를 맡기기엔 시간이 너무나도 걸릴 것 같았다. 거기다가 같은 지역 내라면 몰라도,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장거리 이사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야 했다. 


대한민국 끝에서 끝으로 이사를 하는 거니 시간이 중요했다. 내 조건에서 가장 빠르게 이사를 하려면 반포장 이사였다.     


“반포장 이사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디까지 하면 될까요?”


“부엌 쪽의 그릇 같은 잔짐을 정리해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잔짐은 제가 싸놓겠습니다.”     


그렇게 반포장 이사를 결정했고 우체국에서 박스를 사서 잔짐들을 사기 시작했다. 섞이지 않도록 짐을 구분해야 했기 때문에 박스가 제법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박스 업체의 화재로 박스를 구하는 게 어려웠다.

한 사람당 박스 5개까지. 열심히, 매일 카트를 가지고 가서 우체국에서 박스를 집까지 날랐다. 바람이 많이 불어 박스가 덜컹거리면 박스가 날아갈까 봐 조마조마하며 옮겼다. 


영차영차. 마치 일꾼개미가 된 기분이었다.     


내 짐의 문제점은 종류가 다양하고 깨질 수도 있는 물건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뽁뽁이로 열심히 감다 보니 박스를 사놓아도 사놓아도 금방 동이 났다.     


박스가 하나둘 늘어난다. 점점 자는 공간까지 박스 산이 가까워진다.

그렇다고 짐 위에서 잠을 잘 수 없는 노릇이니 잠자는 공간 외엔 짐 상자로 가득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짐이 많았지만 어떻게든 옮겨졌다. 




이사를 준비하는 동안 서울, 부산 모두 코로나바이러스로 불안해지자 외출을 최대한 줄이고 사람 접촉을 최소화했다. 손 소독제를 너무 많이 써서 손톱이 갈라지고 망가졌다. 이삿날에도 방역수칙을 최대한 지키며 짐을 옮기고 이사를 무사히 마쳤다.     

새로운 집은 마음에 들었다. 번화가에, 서울에 살았을 때보다 집이 넓어졌고, 집세도 싸졌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북서향.’     
그렇다. 난 지금 북서향 집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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