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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아 Feb 03. 2021

#02 북서향 집을 골랐습니다.

남향은 너무 더웠거든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힘들게 이사를 한다.     


“짐은 여기에 두면 될까요?” 
    

새집에 짐이 차곡차곡 쌓이고 이삿짐센터의 잔금도 완료했다. 

이제 서울 집의 세입자가 들어오는 날짜에 맞춰 보증금만 받으면 끝난다.    

  

“좀 춥네….”     


온습도계가 아직 짐 속에 있어 지금 집 온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는 상황이지만, 남향과 비교하면 확실히 서늘하다. 그래도 힘들게 이사를 했기 때문에 이 서늘한 한기도 푸근하게 느껴진다.   

  


“일단 넓다…. 짐 다 넣어도 자리가 남네……!”     

짐 상자도 놓기 어려울 정도로 작았던 서울 집에 비하면 부산의 집은 넓디넓었다. 서울의 집에서는 짐 상자 때문에 움직이는 것, 자는 곳도 없어서 힘들었는데, 부산의 집은 짐 상자가 가득해도 아직 움직일 공간이 많이 남아있다. 자는 곳도 따로 있으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가 사는 곳은 거실과 방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런 형태를 요즘 투룸이라고도 하고, 어디에서는 1.5룸이라고도 하므로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애매하긴 하다. 애매하니 1.5룸이라고 부르자.   

  

서울에서도 1.5룸을 살았고, 부산에서도 1.5룸에 들어왔다. 같은 1.5룸이라지만 실제론 원룸을 반 나눈 것만 같은 서울의 옛날 자취방과 그래도 거실과 방 하나가 있는 부산의 자취방을 비교하자면 넓이 면에서는 부산의 자취방이 훨씬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여러 번 언급했듯,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북서향이었다.


햇빛 하나 안 든다는 정북향은 아니지만, 오후엔 그래도 햇빛이 살짝 비춘다는 북서향.     


속은 건 절대 아니다. 부산에서 살 집을 고를 때 충분히 설명을 들었고 직접 방문까지 했기 때문에, 내가 살 집이 북서향인 걸 잘 알고 있었다. 북서향이기 때문에 넓이와 비교하면 가격이 쌌다.     




부동산을 통해 부산에서 집을 구하게 되었을 때, 보게 된 집은 다행히도 대부분 빈집이었다. 빈집은 사람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데다가, 살림살이가 없었기 때문에 방 구조도 더 잘 보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니 조금 오래 머물려도 괜찮은 데다가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어 좋았다. 햇빛이 어느 정도 들어오는지, 수압은 어떤지, 집에 하자는 없는지 꼼꼼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가장 보고 싶었던 집이 빈집이 아니었다.     


“... 이 집은 지금 세입자가 살고 있어요…. 이사 시기가 좀 꼬여서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민감한 시기였기 때문에 부동산은 나에게 조심스럽게 지금 보는 집은 세입자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원래라면 빈집이었을 텐데, 이사시기가 꼬여버려 잠깐 더 사는 듯했다.


‘그래도 세입자가 있으면 집을 보는 게 좀 곤란하지 않나…? 특히 이런 시기에…….’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세입자에게 허가를 받았는지, 집 근처에 도착했다.     

집 안쪽에서 왈왈!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귀여운 웰시코기가 반겨주었다. 이 북서향 집은 전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귀여운 웰시코기와 함께.     


빈 집인 줄 알았는데, 세입자가 살고 있어서 집을 꼼꼼하게 보진 못했다. 혹시라도 감염문제가 생길까 봐 앞의 빈집에서는 꼼꼼하게 보았던 수압 확인도, 경치 확인도, 벽지 확인도 하지 못했다.     

 

‘역시 사람이 있는 집은 보기가 어렵네….’     


그래도 다행인 건, 집이 넓은 편이라 서로 거리를 두며 보는 건 가능했다. 서로 멀찍이 떨어진 상태로 집을 둘러보았다. 대충 눈짐작으로 빠르게 방을 봤다.     


‘채광은 약하지만, 창문이 커서 북서향 치고 밝은 편이고…. 베란다가 있으니 바람도 한층 막아주고….’


‘가스레인지 2구, 세탁기 옵션….’


‘화장실 크기는 미니 욕조가 들어가 있으니 대략 이 정도…….’     


눈짐작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 몇 개만 훑어보고 집 구경을 마쳤다. 이런 코로나바이러스 시기에 사람 사는 집에 오랫동안 머무는 건 힘들었다. 하지만 이 집이 좋았다. 이 집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일단 크기도 넓으니 나머지는 살면서 어떻게든 되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며 이 북서향 집으로 결정을 했다.      

         



내가 서울에서 살았던 집은 남향이었다. 햇빛이 많이 비춘다는 남향.


하지만 햇빛을 싫어하는 나에게 남향은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다소 어두웠지만, 오후에 빛이 살짝 들어오는 북서향이 더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집을 고를 때 가장 인기 없다는 북향(북서향) 집이지만 매매로 산 집도 아니고, 한번 살아보기로 한다. 이 집을 나갈 땐 내가 욕을 하며 나갈지, 오히려 마음에 든다며 계속 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1년도 안 살아봤다. 집을 평가하려면 최소한 사계절은 다 살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2월의 겨울 끝자락. 나는 지금 북서향 집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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