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소심하게 밝히자면, 나는 대학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래서 북향이 어떤 곳인지 학생 때부터 잘 알고 있다.
대학에서 과제를 할 땐 가상의 클라이언트를 정해서 공간을 디자인해야 했는데,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인테리어라도 클라이언트에게 맞지 않으면 최악의 인테리어가 되었다. 직업에 따라, 불편한 신체 부분에 따라, 가족 구성에 따라 건물 위치부터 공간배치가 확 달라지곤 했다.
전공 때문인지 나는 개개인의 생활 방식에 따라 선호하는 주거공간 형태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그 바탕이 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항상 기억했다.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환경이 누군가에게는 최적의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북향에 몇 번 살아본 적이 있다. 어릴 적의 내방도 북향이었고, 일본에서도 북향집에 살아본 적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인생의 긴 시간을, 꽤 오랫동안 북향에서 지내왔다.
어릴 적의 북향 방은 동생과 방을 나눌 때 내가 고른 방이었고, 일본에서의 북향집은 1DK(방 한 개, 다이닝룸, 키친이 있는 형태)였는데, 남향과 북향에 베란다가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그래서 여름엔 맞바람이 쳤지만, 겨울엔 정말 추웠다. (일본 북향집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해보도록 하겠다)
몇 년간 북향집을 몇 번 살아보니 북향도 꽤 괜찮았다. 특히 나 같은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에겐.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한 내가, 모두가 꺼린다는 북향집으로 오게 된 이유는 북서향은 컴퓨터로 일하는 나에게는 의외로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었다.
북서향의 장점을 크게 구분 지어 이야기하자면,
1. 직사광선이 적다.
2. 서늘한 온도로 계속 유지된다.
3. 햇빛 양이 적지만 일정하다.
4. 주변 시세에 비해 넓고 가격이 싸다.
라는 점이었다. 하나하나 생각해본다면 나에게 가장 좋은 환경이었다. 저게 왜 장점인지 이야기해 보겠다.
1. 직사광선이 적다는 건, 나와 같은 사람에겐 최적이었다.
미술도구가 많고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햇빛이 있으면 변색하거나 그림이 손상될 때가 많았다. 남향집에 살 때 창가에 놔둔 노트의 그림이 강렬한 직사광선에 사라진 적도 있었다.
SNS에서는 햇빛이 드는 창가에 책상을 두고 우아하게 작업하는 사진이 가끔 업로드되지만, 햇빛을 싫어하는 나는 햇빛 드는 창가에 책상을 붙이는 걸 한번 시도했다가 작품들 다 엉망이 된 후 다시는 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나는 체질상 햇빛을 오랫동안 쬘 수 없어 빛을 피해야 했다. 빛을 피해야 했기 때문에 남향에 살 때 남향집은 햇빛이 너무 강해 늘 블라인드를 하고 살아야 했다.
2. 서늘한 온도가 유지되는 것 또한 온도에 민감한 도구를 쓰는 나에게 딱 맞았다.
햇빛이 들지 않아 온도가 온종일 거의 일정하게 유지가 되었다. 그 덕분에 물건을 놔둬도 온도 변화 때문에 물건이 손상되는 일은 없었다. 특히 습도만 잘 관리해준다면 책도, 그림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작업 책상 주변엔 항상 온습도계를 두고 온도와 습도를 점검하는데, 햇빛이 들지 않아서인지 거의 종일 같은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고 있다.
현재 2월 초. 외출모드인 보일러 덕분에 방 안 온도 23.9도, 습도 28%. 습도가 좀 낮은 듯하지만, 곧 빨래를 말릴 예정이므로 괜찮다. 온습도계의 캐릭터에 스마일이 보인다. 괜찮은 온습도란 이야기다.
예전 남향에 살 때, 11월에도 집 온도가 35도, 여름에는 40도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늘 스트레스였었다. 하지만 지금의 북서향 집에서는 보일러를 꺼놓으면 18도, 외출모드를 켜놓으면 보통 22도에서 23도 정도로 계속 유지 중이다. 여름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여름도 살아보고 글 적어야겠다.
3. 햇빛 양이 적고 일정하다.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창가에 컴퓨터를 두어도 빛 때문에 모니터가 안 보인다던가, 컬러 확인이 안 된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남향에서는 캐노피를 사용하거나 블라인드를 내려서 작업을 해야 했다. 캐노피를 해놔도, 블라인드를 내려도 남향의 강렬한 햇빛은 결국 모니터까지 빛이 들어왔다.
남향에 살 때 방 구조 문제로 햇빛을 등지는 책상을 했는데, 오후 시간만 되면 등 뒤가 따끔따끔했다.
그에 비해 북서향은 빛 양이 일정하여서 온종일 비슷한 조건으로 작업할 수가 있었다. 창가에 책상이 있어도 햇빛이 강하지 않아 빛 번짐이 적다.
책상 위 구석 부분은 다소 어두워 컴퓨터용 조명을 설치했는데, 조절되는 인공 빛이라 나에게 알맞은 작업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4. 다른 방향에 비해 넓고 시세가 싸다.
굳이 넓은 집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잔짐이 많고 공간을 넓게 쓰는 작업이 가끔 있는 나에게는 일단 일정 규모 이상의 넓은 집이 필요했다.
작업으로 집이 어지러워도 곧바로 잘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 즉, 잘 곳과 작업공간이 따로 분리된 곳을 원했다. 그런데 넓으면 비싸고, 조건이 다 좋으면 집이 좁았다.
그런 집을 찾다 보니 북향집이 눈에 많이 보였다. 선호도가 낮은 북향집이지만, 나에게는 필수조건들이 일단 맞다. 그럼 한번 살아보자.
물론 단점 또한 있다. 하지만 해결방법도 있다. 단점과 내가 해결하고 있는 방법을 나열해본다.
1. 빛이 적다.
빛이 적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집에서 일하는 나의 경우, 집에서 햇볕을 쬘 일일 거의 없다. 하지만 집에서 햇볕을 쬘 수가 없으니 일부로라도 밖에 나가서 햇볕을 쬐고 오게 된다. 집안에 햇빛을 들이기는 힘들지만, 햇빛을 들이기 힘들면 내가 나가면 된다.
집에서만 계속 생활하는 것보다 햇볕 쬔다는 명목으로 밖에 나가 세상 구경을 하고 온다. 가끔 지나가다가 발견한 동물들 옆에서 오후의 햇볕을 같이 쬐기도 한다. 그러다가 괜찮은 소재를 발견하면 메모를 해본다.
빛이 적기 때문에 작업하기엔 좋은 환경이지만 생활환경으로서는 다소 문제가 생겼다. 빨래를 햇빛에 말릴 수 없다든가 하는 문제였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고층에, 주변이 뻥 뚫려 있어서 바람이 많이 불었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불어 빨래가 덜 마른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남향에 비하면 빨래 마르는 속도가 느리다. 이건 고려하며 빨래를 돌린다.
빨래를 말릴 만한 베란다도 있지만, 습도 조절 때문에 일부분은 집안에서 말리고 있다. 섬유유연제도 종류가 많아져 집안에 말려도 냄새가 안 나는 섬유유연제도 있어 그걸 사용하고 있다.
2. 춥다.
춥기는 정말 춥다.
내가 추위를 많이 타서인지 방 온도가 19도로 내려가면 매우 춥게 느껴진다. 햇빛이 들지 않아 온도가 낮으므로 집안이 추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북서향이라도 베란다가 있으면 바람이 한층 걸러져서 들어온다. 북서향을 살게 된다면 반드시 베란다의 유무를 확인하자.
부산이라서 한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많이 없는데, 그래서인지 외출 난방이라도 켜놓으면 견딜만하다.
한겨울에 이사 와서 한겨울을 북서향에서 지냈다. 춥긴 해도 옷 따뜻하게 입고 핫팩을 붙이니 좀 낫다. 집안에서 핫팩을 붙이고 있는 모습이 우습긴 한데, 사실 재택근무하면서 찌뿌둥한 몸 지진다고 여기저기 핫팩을 붙여서이다. 북서향에 사는 재택근무 인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 핫팩을 사놓자.
물론 난방 틀면 집 전체가 따뜻해지기는 한다. 그래도 집안 온도가 너무 올라가 버리면 도구가 상할 수도 있으니 당분간 자제하고 있다.
온종일 일정 온도가 유지되니 추우면 좀 더 두툼한 옷을 입고, 더우면 한 겹 벗는 식으로 생활한다.
3. 습도가 낮다.
여름은 모르겠다. 일단 겨울 기준으로 우리 집 습도가 18~30%다. 북향에 습도가 높으면 곰팡이가 낄 수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습도가 낮은 편이다.
그런데 습도가 너무 낮기 때문에 피부가 퍼석퍼석. 입술에서는 피가 났다.
낮아도 너무 낮아서 자기 전에 빨래건조대 위에 젖은 수건을 올려놓거나 가습기를 켠다. 최근엔 매일 가습기 통 씻기 귀찮아서 가습기보단 젖은 수건을 이용하고 있다.
어느 집이나 다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당장 짐 싸고 나갈 것이 아니라면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