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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아 Feb 10. 2021

#04 북서향 집에 미니 욕조가 생겼어요

몸을 구겨 넣어야 하지만요.




북서향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북서향 집은 한기가 스며들어 있을 때가 많다.   

  

이 추운 겨울. 웃풍이 불어 서늘해진 집에 온기를 주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보일러 버튼 하나면 따뜻한 집이 되지만, 당분간 집이 정리될 때까지 바닥에 자리 잡은 미술도구에 열기를 가할 순 없었다.


전열 기구를 늘릴까. 옷을 더 껴입을까 하다가 쇼핑몰에서 좋은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미니 욕조였다.     




아무 데나 물이 가득한 큰 욕조를 놔두면 물 무게 때문에 바닥이 위험하지만, 어린아이가 들어갈 만한 이 정도 미니 사이즈는 물이 가득해도 괜찮아 보였다.


그래도 여기가 욕조를 둬도 될 공간인지 한 번 더 확인을 해보자 싶어 검색을 해본다.

운이 좋았다. 지금은 샤워공간으로 변경되어있지만, 예전에 부동산들에서 올려놓은 사진을 보니 처음부터 샤워공간이 아닌, 욕조가 있던 자리였다.


그럼 어지간하면 물 무게와 내 몸무게는 견딜 것으로 생각하여 작은 욕조를 찾아본다.


전의 세입자가 살던 당시 화장실에서 봤던 미니 욕조를 떠올려본다. 전 세입자가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강아지를 위한 욕조인지, 세입자가 직접 쓰던 욕조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어떤 욕조를 사는 게 좋을까 찾아본다.


뒤에 샤워 용품 선반이 있어 다리 뻗을 만한 큰 욕조를 사버리면 미니 욕조가 아니면 샤워공간에 들어갈 수가 없다. 욕조를 둘 순 있어도 사이즈가 맞아야 했다. 다행히 인터넷에서 찾은 미니 욕조의 크기가 어림잡아 들어갈 것 같다. 하지만 재기 전까지는 모른다.


W730 x D560 x H545(mm)라니.

가장 작은 사이즈지만 안 맞으면 어쩌지? 걱정은 된다.

곧바로 줄자를 가지고 가 우리 집 욕실을 재어보니 치수가 얼추 맞다. 아니, 선반이 있는 뒷부분이 훨씬 남는다.


남는 공간은 사람 한 명 앉아도 될 만한 공간이다. 이 애매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했는데, 꽤 괜찮은 욕실 아이디어가 나온다.


목욕탕에서도, 일본 가정집에서 자주 보이던 좌식 샤워공간이었다.      


그래. 가장 작은 욕조 하나 사고 나머지 조그마한 공간엔 목욕 의자를 하나 둬서 좌식 샤워공간을 만들자.     


허리가 아프므로 앉아서 샤워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마음을 정했으니 필요한 도구 하나하나 검색해서 구매를 한다.


목욕 의자, 벽 흡착식 샤워 거치대.


선반 덕분에 좌식 샤워공간으로 해도 목욕탕처럼 편하게 샤워할 수 있다. 기존에 있던 샤워헤드 거치대가 나에겐 높은 편이었는데, 인터넷에 강력 흡착식 샤워기 거치대도 판다. 벽에 구멍을 뚫지 않아도 샤워헤드 고정이 가능하다. 사자.

욕조에서 일어설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흡착식 손잡이도 구매했다. 흡착식이라 튼튼할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깔끔하게 보이도록 투명한 욕실용 디스펜서도 구매했다. 물이 튀지 않도록 샤워 커튼도 구매했다. 이것저것 손보다 보니 제법 목욕탕 느낌이 난다.


욕실 꾸미려고 이것저것 사다 보니 욕조 비용보다 더 많이 드는 기분이다.

그래도 기분 좋다. 코로나 때문에 목욕탕도 못 가니 집에서라도 즐겨야지.     

문제는 욕조다. 세일해서 만원 후반대 가격이라 괜찮을까 걱정한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나올지, 혹은 가격대보다 꽤 괜찮은 물건이 왔다고 할지 가슴이 뛴다.

사진 속 강아지와 어린아이가 좀 불안하긴 했는데 일단 구입 버튼을 눌렸다.

     



덜컹     


주문하고 잊고 있었는데, 얼마 뒤 현관문 쪽에서 덜컹 소리가 난다. 살짝 나가보니 집 앞에 미니 욕조가 비닐에 싼 채 놓여있었다.     

이걸 어떻게 집안까지 옮기지? 하는 걱정과는 다르게 들어보니 덜렁 들린다. 한 손으로도 들릴 정도로 꽤 가볍다. 집에 놔두고 욕실에 넣기 전, 한번 들어가 앉아본다.     


오. 다리를 뻗을 순 없지만, 양반다리를 하니 괜찮다.

몸을 좀 구겨 넣어야 하지만 제법 괜찮다.

앉아보니 제법 깊어서 어깨 밑까지는 담글 수 있다.


키가 150대라서 다행이라 생각된 순간이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욕조야 하며 욕조를 북북 닦아준다. 그리고 급한 대로 사 온 싸구려 입욕제를 넣었다. 싸니까 대충 골랐는데 좋아하는 달콤한 과일 향이다. 이렇게 소소한 운이 좋을 때도 있구나.     


뜨거운 물을 받아 욕조에 몸을 담가본다. 미니 욕조라 그런지 물도 금방 받아진다. 반보다 조금 더 많이 받아놓고 들어가면 딱 어깨 쪽까지 물이 찬다.


북서향 집에 차가운 공기 때문에 욕실 문을 열어놓으니 꼭 노천탕에 온 기분이다. 난, 이 답답하지 않은 공기가 좋다.      


 

추운 북서향 집에 욕조가 생겼다. 몸을 구겨 넣어야 하지만.

북서향 집에서도 충분히 힐링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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