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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아 Feb 20. 2021

#05 북서향은 베란다가 필수입니다.

베란다 밖은 냉장고거든요.


창문에 달아놓은 커튼이 흔들린다. 문을 닫았는데도 커튼 너머 살랑거리는 바람이 느껴진다.


북서향은 바람이 잘 들어오는 것 같다. 보일러 온도를 좀 낮추니 집안이 차갑게 느껴진다. 바닥부터 따뜻해지는 난방이라 바닥에 둔 미술도구들이 상하지 않도록 일정 온도로 안 올라가도록 온습도계를 보며 온도를 관리한다.



겨울에도 집안 온도가 25도가 넘어가지 않도록 보일러 온도를 외출모드로 놔둔다. 다음엔 책장이라도 하나 더 사서 미술도구를 관리해야겠다.      

바람이 들어와서인지 환절기 때마다 몸이 으슬으슬 추워진다. 국밥이 생각나는 겨울이다.     


부산은 타지방과 비교하면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적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실내복을 입은 채 베란다로 나가보니 살을 에는 추위가 느껴진다.

서둘러 두꺼운 가디건을 입고 다시 밖으로 나가본다. 입김은 나지 않지만 서늘한 추위가 느껴진다.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아. 뜨끈한 돼지국밥 먹고 싶다.”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오늘따라 밥을 하기 귀찮다.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게을러지는 기분이다.


집 근처 돼지국밥집에서 돼지국밥을 먹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아직 돌고 있으니 포장을 해오기로 한다.     


“돼지국밥 포장되나요?”


“2인분 이상부터 돼요~”


“그럼 2인분 주세요!”     


2인분 이상부터 포장이 된다는 말에 2인분을 주문했다.    

 

“밥은 안 들어가요~”


“네…! 아! 소면도 넣어주세요!”


나는 깜박할까 봐 소면을 말한다. 국밥에 소면. 얼마나 침 고이는 조합인가.


“몇 개 넣어줄까요?”


몇 개 넣어줄까요?라는 말에 나는 잠시 생각한다. 보통 돼지국밥집에서 1인분 당 1개의 소면이 나오니까 2인분을 시킨 이상 2개가 마지막일 것이다. 그럼 두 개.     


“두…. 두 개…. 요!”


아차. 두 개라고 말해놓고 손가락이 꼬여 손가락 세 개를 보였다.


“세 개 넣어줄까요?”


어리숙한 내 모습에 국밥집 아주머니가 웃으시며 말한다.


“네!”


소면 세 개라니. 나는 뜻밖의 행운에 웃음 지었다. 오늘은 밥 대신 소면 잔뜩 넣어서 고기 국수를 먹어야지.


그런데 받아 든 봉지가 묘하게 무겁다. 국밥 2인분이 이렇게 무거웠던가.     


“소면 4개 넣었어요.”


“네?! 와! 감사합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인심 좋은 집은 푸짐하다. 그런데 소면이 4개 넣었다고 해도 뭔가 묵직하다. 국밥 봉지를 조심스레 장바구니에 넣어 어깨에 메니 어깨가 아플 정도다. 소면 무게가 이렇게 나가진 않을 텐데.     


집에 돌아와 냄비에 부어보니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냄비가 꽉 찬다.

2인분을 시켰는데 한 4인분은 되는 것 같다.     


기분 좋은 것도 잠시, 퍼뜩 현실감각이 돌아온다.


큰일 났다. 우리 집 냉장고는 이번에 받아온 반찬으로 꽉 차 있는데……! 냄비가 들어갈 자리는 전혀 없다. 소분해도 들어갈 곳이 없다…!     



국물 가득한 냄비를 바라보다가 베란다가 눈에 보인다. 베란다 문을 벌컥 여니 아직 겨울이라는 걸 몇 번이나 깨닫게 해 주듯 찬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그래. 여기다.     


나는 국밥을 펄펄 끓인 뒤 내가 먹을 만큼 덜고 소면을 퐁당 넣었다. 집안에 돼지국밥 냄새가 솔솔 하다. 추운 겨울인데 후끈해지는 기분이다. 환기를 위해 베란다 문을 살짝 여니 차가운 바람이 느껴진다.

드라마 사극에서 봤던 주막의 야외 밥상에서 국밥을 먹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돼지국밥 맛이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남은 국밥은 냄비째로 베란다에 놔두니 훌륭한 냉장고다. 이럴 땐 베란다가 있어서 참 좋다. 내가 생각하는 추운 북향 베란다의 장점이다.


냄비를 두고 문을 닫으니 집과 베란다 온도가 꽤 차이 난다. 베란다가 없었다면 집안도 추위로 와들와들 떨었겠지?     


그 후에도 가끔 냉장고가 없을 땐 베란다를 애용한다. 북서향이다 보니 빛이 들지 않아 좋다. ‘직사광선을 피해 서늘한 곳에 두세요.’라는 문구가 어울릴만한 식자재들을 놓아두고 있다. 과일도, 국밥도, 채소도 슬금슬금 가져다 둔다. 다음엔 작고 깊은 식재료 상자를 놔둬야겠다.      


베란다는 유사시에 대피공간으로도 쓸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다닐 만큼의 충분한 공간을 두는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

     

2월의 끝자락을 향해가는 지금도 베란다가 제법 춥다. 처음엔 북서향은 춥다! 너무 춥다! 하면서 불만이 조금 있었는데, 이 베란다가 있어 준 덕분에 당분간 냉장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렇게 사람은 여러 환경에도 소소하게 적응해나가나 보다.     


다음엔 시원하게 마실 차들을 사놓아야겠다. 베란다에 두면 오랫동안 먹을 수 있으려나.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함께 먹으면 이 북서향 베란다에서도 훌륭한 티타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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