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화와 조화예요.
꽃을 좋아하긴 하지만 꽃을 잘 키우진 못한다.
몇 년 전, 키우기 쉽다던 토피어리마저 죽이는 날 보며, 식물을 키우는 건 잠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집에 생기가 없어 보여. 꽃이라도 사 올까.”
북서향 집은 어두컴컴할 때가 많다. 햇빛이 들지 않는 탓이다.
꽃을 두면 칙칙해 보이는 이 분위기가 좀 더 화사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집에 꽃이 과연 자랄 수 있을까?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보니 가짜 꽃. 조화가 생각났다.
어디선가 들었던 “집에 조화를 들이는 게 아니다.”
하는 말도 동시에 생각났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출처가 불분명하다.
미신이라도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때. 내가 기분 좋아지면 되지 뭐.
검색해보니 진짜처럼 보이는 조화 식물들이 많다. 진짜 같을수록 가격대가 높아진다.
그런데 막상 구매했는데 별로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자 구매하려던 손이 망설여진다.
그럼 직접 나가서 사 오면 되지! 하는 간단한 해결책이 생기자 슬금슬금 외출복을 입어본다.
조화를 파는 가게에 들러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하기로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모여있다.
꽃에 대해 큰 지식은 없지만, 감상은 가능하다.
꽃은 모여있으면 참 예쁘다.
꽃이 작으면 1000원, 많으면 2000원. 좀 예쁘면 3000원.
마음에 드는 꽃들을 바구니에 이것저것 담아본다.
작품 때문에 사진 촬영할 일이 많아 사진용으로 쓸 꽃송이 큰 꽃들도 골라본다.
파란색, 노란색. 보라색. 백합 형태의 꽃.
여기서도 취향이 보인다. 색도, 모양도 내가 좋아하는 취향대로 담아본다.
죽지 않는 꽃이니까 마음의 부담도 적다.
잊지 않고 꽃을 꽂아둘 유리 꽃병도 산다.
조화지만 꽂아두면 진짜처럼 보이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 꽃들을 정성스럽게 닦고 꽃병에 꽂아본다.
와아. 그저 꽃만 뒀을 뿐인데 집에 생기가 도는 기분이다.
더 자라지도, 더 꽃송이를 피울 수도 없는 가짜 꽃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상태로 피어있는 모습을, 긴 시간 동안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조화도 생화 못지않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뒤, 생일이 되었을 때 친구로부터 꽃을 선물 받았다.
촉촉한 꽃잎이 살아있는 장미 생화였다.
핑크와 오렌지의 색 조화가 몽환적인 꽃이다.
살아있다는 게 이렇게 예쁘구나.
사이즈 맞는 꽃병이 없어 페트병을 하나 잘라 꽃병 대신 꽂아주었다.
동봉된 설명서엔 매일 깨끗한 수돗물로 갈아주라고 되어있다.
비싼 꽃병은 아니지만, 꽃이 예뻐 작업공간에 놓으니 단번에 분위기가 바뀐다.
우리 집에서 햇빛을 못 본다는 게 다소 아쉽지만,
이렇게 꽃과 함께 생활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쩌면 북서향이기 때문에 꽃이 오래 못 갈 거라는 건 내 생각일지도 모른다.
있는 힘껏 오랫동안 살려봐야지.
조화와는 또 다른 매력이다.
그렇게 화사한 룸메이트가 생겼다.
이렇게 좋은 계기가 생겼으니
기회만 된다면 또 꽃을 살지도 모르겠다.
봄의 첫 자락을 맞이하는 3월.
꽃과 함께 북서향 집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