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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Oct 28. 2022

공간, 삶

토니 타키타니 자세히 보기






공간, 삶   

  

글을 쓰기에 앞서 문득 내 공간을 돌아봤다. 공부와 취미생활을 동시에 하는 책상 위는 물건들의 구역은 나누어져 있지만 그 구역 안의 물건들은 정리되지 않고 널브러져 있어 어딘가 산만하다. 반면에 침대는 깔끔한 편이다. 바디필로우와 충전기, 안대, 인공눈물은 늘 정해진 자리에 있다. 책상은 시험기간에만 정리하면서 침대는 주기적으로 먼지도 털고 커버도 세탁하고 탈취제도 자주 뿌린다. 맞다. 나는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다.

책장은 또 나름대로 정리가 되어 있다. 책을 둘 공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책을 계속해서 사들이기 때문에 나는 다 읽은 책 중에서 오래 소장하고 싶지 않은 책은 주기적으로 중고책방에 팔아버린다. 그렇다. 나는 채우기 위해 비운다. 맥시멀리스트가 되기 위해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공간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











영화 <토니 타키타니>에서의 공간의 대비     



   영화 <토니 타키타니>에는 매우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인물이 등장한다. 둘의 공간은 둘의 성향만큼이나 명확하게 대비를 이룬다. 우선 토니의 공간을 살펴보자.


                                                        ▲ 토니의 집 / 작업실



   토니의 직업은 기계 일러스트레이터로, 일러스트 작업을 위한 작업실을 따로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집’이라는 공간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모습보다는 지극히 사적인 모습을 반영한다. 이것저것 작업 도구가 들어차 있는 작업실과는 달리, 그의 집은 매우 미니멀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특별하게 애착을 보이는 물건도 보이지 않고, 식탁과 냉장고는 초라해 보일 정도로 비어 있다. 그의 공간에서는 삶에 대한 충만한 애정과 열정보다는 고독함이 더 잘 묻어난다.







   한편 늘 혼자였던 토니의 삶에 에이코가 나타나면서, 공허하던 그의 공간도 변화하게 된다. 에이코와 함께 살게 된 그의 공간에는 생기가 감돈다. 정원은 푸릇푸릇해지고, 옷방은 가득 찬다. 에이코의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공간이 바로 에이코의 옷방인데, 그곳은 이미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새로운 옷을 계속해서 사들인다. 에이코에게 있어서 옷은 신체를 보호하는 도구이자     자기표현의 수단이라는 일반적인 기능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에이코에게 옷은 유일한 취미이자 일상 그 자체였으며, 그녀의 삶에서 토니를 빼면 남는 것은 옷 말고는 없었다.(적어도 영화에서는 그렇게 그려진다) 에이코는 자신의 전부와도 같은 옷을 자신의 공간에 가득 채웠다.






   두 사람의 공간은 각자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둘 사이의 관계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토니의 삶에 에이코가 들어오면서 토니의 공간에 에이코의 공간이 들어오게 되고, 에이코가 사라졌을 때 토니는 에이코를 놓지 못하고 그녀를 대신할 사람을 찾느라 그녀의 공간을 비우지 못한다. 하지만 토니는 결국 고독해질 운명이었던 걸까, 에이코의 공간은 마치 그녀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하게 비워지고, 토니는 평생 간직해오던 아버지의 유품마저도 전부 비우면서 온전한 고독 속에 남고 영화는 끝난다.     



   사람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간에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대로 공간을 구성하고, 공간에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래서 공간은 삶을 담고, 삶은 공간을 닮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다시 더러워지는 내 방처럼, 아무리 채우려고 해 봐도 다시 텅 비어버리는 토니의 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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