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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Nov 18. 2022

나에게 ____을 줘.

<로렌스 애니웨이>의 색.








  자비에 돌란의 영화는 다채로운 미장센으로 유명하다. 그의 표현방식 중 하나인 상징적인 색의 활용은 미장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는 색의 상징을 전면에 내세워 보는 이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건다. 이에 영화 속 몇 가지 장면들에서 눈에 띄는 색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제목은 작중 프레드가 빈칸에 ‘빨강’을 채워 말하는 대사이지만 프레드는 점점 빨강과 멀어진다. 이처럼 인물들이 접하고 있는 색을 짚어봄으로써 대사 넘어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이 글은 장면을 따라가며 색의 의미를 짚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영화에서는 원색의 사용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며 그 중 빨강, 파랑, 보라가 두드러지게 반복된다. 이는 보편적인 색의 의미 표현하는 동시에 <로렌스 애니웨이>만의 함의를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영화 속 색의 사용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일반적인 은유에 고정되지 않는다.  이에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색을 중심으로 <로랜스 애니웨이> 속 색의 언어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1. 빨강



“35년이나 이렇게 산 건 죄악이나 다름없어.”     


  로렌스는 위의 대사를 시작으로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의 삶을 온갖 색으로 채워나간다. 붉은색, 보라색, 초록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을 넘나들면서 로렌스의 삶을 남자에서 여자로, 그리고 로렌스 자신 자체로 변화시킨다. 특히 붉은색은 로렌스가 여성이 되고 싶은 욕구와 열정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준다. 예를 들면 로렌스가 남자로서의 삶을 살던 시점에서 한 달이 지난 후, 로렌스는 붉은색 셔츠를 입고 교실 안에 앉아있다. 그리고 그는 빗으로 머리를 빗거나 긴 파마머리를 만지작거리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주시하며 혼란스러운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그의 손톱에는 마치 네일 팁을 붙인 것처럼 클립이 끼워져있다. 로렌스에게는 혼란이 찾아온다. 이 혼란은 그가 여성이 되고 싶어하는 갈증을 의미한다. 그는 프레드와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도 그 욕구를 감추지 못한다. 이 욕구는 붉은색 조명으로서 로렌스가 여성이 되고 싶은 욕망의 절정을 드러낸다. 붉은색은 로렌스가 여성이 되려 하는, 이제 막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하는 로렌스의 씨앗 같은 강렬한 욕망에 주목한다.















2. 파랑



  영화 속 파랑은 불안정, 혼란, 충돌, 긴장을 말하는 또 다른 신호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관계가 흔들리거나 체념의 단계에 진입하는 인물들을 묘사할 때 어김없이 푸른 배경 혹은 조명이 인물들을 감싼다. 아래 두 장면은 불안정한 심리 혹은 상황이 파랑으로 표현되는 대표적인 예이다.     




“잠시 떨어져 있어야겠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로렌스의 고백 후 프레드에게서는 점점 붉은 색이 사라진다. 동시에 파랑이 그에 몸에 하나씩 달라붙기 시작한다. 결국 프레드는 짙은 파랑과 가까운 사람이 된다. 로렌스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프레드는 파란색 외투를 걸친 채로 파란색 벽에 기대어 충격과 혼란을 삼키고 있다. 마치 파랑에 잡아 먹힌 것 같은 모습이다. 이는 로렌스의 고백을 기점으로 프레드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후 그는 로렌스의 정체성에 대해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며 파란 니트를 입고 있거나, 파란 외투를 입고 마트를 들르곤 한다. 나아가 인물을 표현하는 배경 외에도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1990의 글씨 역시 파란색으로 타이핑된다. 식당에서 언쟁을 할 때 그 모습이 가장 부각되는데, 빨간 머리를 묶고 파란 스웨터를 입은 프레드의 모습에서, 그만의 빨강이 무너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식당을 나와 자신에게 붙어있던 파란색 옷들을 전부 벗어 던지고 샤워하는 프레드의 모습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의 혼란을 보여준다.     





  영화 속 파랑은 로렌스 입장에서 겪는 혼란을 표현하기도 한다. 정확히는 사회적 시선으로 말이다. 로렌스가 바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을 겪는 장면은, 붉은 조명아래 존재하는 로렌스에게 푸른 조명으로부터 걸어 들어온 방문객과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로렌스는 여장을 하고 바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그런 그의 공간으로 가게 문을 열고 어떤 남성이 들어온다. 무지불식의 남성은 로렌스의 행색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으로 그를 자극하고 로렌스의 안정상태는 순식간에 파괴된다. 이때 두 인물을 비추는 조명의 색은 명백히 대비되는 구도를 보인다. 로렌스가 존재하는 곳은 새빨간 빛 아래에 있으며, 외부의 시선을 의미하는 손님은 푸른 조명이 비추는 가에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는 로렌스 개인과 대립하는 사회의 시선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성이 붉은 조명 안으로 들어와 로렌스에게 시선을 주는 장면에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은 로렌스가 느끼는 사회적 긴장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3. 보라     



  젠더정체성을 다루고 있는 영화의 관점과 연결하여 보라의 보편적인 의미를 먼저 살펴보자. 보라는 여러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색으로 표현되곤 한다. 이를 확장하여 영화에서는 로렌스가 스스로 추구하는 정체성과 그에 대한 확신을 보라로 표현하고 있다. 일종의 자유와 (자기)인정,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프레드와 로렌스가 재회하고 도망치 듯 떠난 블랙섬에는 오로지 서로만 존재한다. 이때 하늘에서 총천연색의 옷들이 떨어지는 장면은 그들만의 사랑방식 중 하나였던 과거의 빨랫감을 뒤엎는 장면과 오버랩되는 동시에 다양한 색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로렌스는 형형색색의 빨랫감을 배경으로 보라색 코트를 입은 채 걷는다. 이는 변화를 기반으로 한 온전하게 둘만이 존재하는 순간 로렌스가 느끼는 자유를 느끼게 한다.




“땅으로 내려오라고? … 나는 내려가기 싫어.”     


 영화의 끝에서 로렌스와 프레드는 바에서 재회한다. 빨강이 삭제된 채 파랑에만 둘러싸인 프레드와 파란 바에서 다시 만난 로렌스는 보라색 옷을 입고 있다. 이때 애써 관계를 진심이 아닌 말로 덮어두려는 프레드와 프레드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로렌스는 서로 다른 안정상태에 있다.

  프레드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프레드는 끝내 로렌스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별을 택한다. 돌아오지 않는 프레드의 행동이 둘의 관계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을 깨달은 로렌스는 보라색 스카프를 두른 채로 정문을 열고 나선다. 반면, 프레드는 자신이 잃어버렸던 붉은 색으로 둘러싸인 화장실에서 스스로와 싸우다 이내 뒷문으로 도망치듯 바를 빠져나간다. 따라서 로렌스의 보라색은 안정을 예측할 수는 없으나 변화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해소를 느낀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은 그들의 헤어짐에서 첫 만남으로 돌아간다. 로렌스가 프레드에 소개한 자신의 이름은 “로렌스 애니웨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존재하든 로렌스는 어쨌든 로렌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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