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쥐> 비평문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랑’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가. 연대, 존중, 결합 등 갖가지 명사를 통해 설명할 수 있으나 오늘은 ‘욕망’이란 감정을 통해 사랑을 말하려 한다. 우리는 내 안의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내면의 자아를 건드린다. 그러나 그 자아는 현실의 자아와 거리가 있기에 간극이 생기고 만다. 이 간극, 그 곳에서 ‘욕망’이 발현된다. 오늘은 욕망을 통해 ‘상현’과 ‘태주’에게 다가가고 싶다.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상현은 독실한 천주교인으로서 신부다. 그는 성당 신부로 일하며 죽기 직전의 환자들을 돌보고 기도하며 살아간다. 고해성사와 기도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인지, 노신부를 찾아가 아프리카에 보내달라 사정한다. 결국 그는 아프리카로 떠나 비밀리에 진행되는 백신 ‘이브’ 실험에 참여한다. 상현은 그 곳에서 살아남지 못했으나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고 ‘뱀파이어’가 되어 돌아온다. 인간의 욕망을 누르며 평생을 살아오던 그가 이제는 욕망을 누르면 살 수 없는 자가 되버렸다. 상현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다 우연히 동창 ‘강우’를 만나게 되고 그의 아내 태주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요, 살인은 안 해요.”
“이거만 하면, 우리, 행복해지는 거야?”
그에게 있어 ‘사랑’은 유아처럼 맹목적이었다. 처음으로 이성을 사랑하게 됐고, 그러면서 찾아오는 온갖 도파민과 유혹들...남의 것을 탐하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참지 못 하는 충동, 태주를 탐하려 하는 마음까지. 극 중 상현은 아이러니의 종지부를 찍는 듯 그의 직업적인 윤리관과 함께 사회적 통념을 뒤엎는 인물이다. 신부가 살아있는 것의 피를 탐하고 유부녀를 원한다는 것, 그건 상현의 삶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그가 태주를 위해, 사랑을 위해 억눌러왔던 욕망을 하나씩 터뜨리기 시작한다. 부모처럼 따랐던 노신부의 피를 마시고, 태주를 위해 강우를 죽이며 첫 살인을 한다.
“난 부끄럼 타는 사람이 아니에요”
태주는 한복집에서 상현과 사랑을 나누기 전에 옷을 벗으며 자신은 부끄럼 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극 중 태주는 그 누구보다 부끄러워 한다. 가슴을 보이자마자 부끄럼이 확 몰려오는 듯 금방 몸을 가린다. 이렇게 태주는 양면성 있는 인물이다. 그는 강우와 라 여사의 핍박으로 인해 억눌러왔던 욕망을 한 겹씩 벗겨내고, 유아처럼 본능을 향해 곤두박질 치는 ‘흡혈귀’가 된다. 상현의 사랑을 무기 삼아 강우를 죽이고 피를 위해 상관없는 자들을 해치며 자신의 죄에 대해 가장 부끄럼 타지 않는 사람이 된다. 태주도 상현을 사랑했으나 어느새 그녀의 사랑은 태주만의 맹목적인 욕망으로 변한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기에 어떤 것도 가지게 될 수 있을 때의 그 쾌락...그것이 태주를 망가뜨렸다.
“태주씨를 사랑했지만...지옥에서 만나요.”
“죽으면 끝. 그동안 즐거웠어요.”
상현은 무자비한 태주의 살생과 자신의 잘못된 사랑으로 인해 서로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 죄를 면하고자 천주교 교리에서 금기된 자살을 택한다. 그는 태주를 데리고 동해안으로 향하고, 열쇠를 부러뜨린다. 다시는 어떤 곳으로도 도망칠 수 없도록. 가지고 왔던 여행가방과 피가 담긴 락앤락 통도 전부 버린다. 태주는 그런 상현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고, 그를 차로 대피시키려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거부하고 죽음을 받아드린다. 결국 태주도 체념한 듯 그런 상현 옆에 앉아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서로를 탐하고자 했던 욕망? 아니면 구원? 상현은 죽음 앞에서 생각한다. 무엇이 태주를 이렇게 만들었고 자신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을까,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태주와 상현이 불에 타며 서서히 죽어가는 장면에서 흘러나온다. ‘이난영’의 ‘고향’...
정들은 고향 길에서 순정에 어린 그대와 나는
언제나 변치 말자고 손잡고 맹서했건만
그대는 그 어데로 갔는가,
잊지 못할 추억만 남기고 정들은 고향 길에는 구름만 흘러갔고나...
이제 상현을 사랑했던 태주는 가고 태주만을 사랑하는 상현만 남았다. 사랑을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있었던 그와 사랑을 등지고 어떤 것도 할 수 있었던 그녀와의 삶에 막이 내린다. 끝까지 사랑을 외쳤던 상현과 죽으면 끝이라며 사랑을 말하지 않았던 태주. 그들은 지금쯤 지옥에 있을까, 천국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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