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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Aug 05. 2023

사랑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영화 <초행> 비평문

사랑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틸다





  영화 ‘초행’은 7년 차 커플 지영과 수현이 결혼을 약속하고 양가 집안을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지영은 방송국 계약직, 수현은 미술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안정적이지 못한 현실 속, 그들은 ‘결혼’이라는 초행길을 걷기 시작한다. ‘초행’이라는 제목은 말 그대로 ‘처음 가는 길’을 뜻하기도 하고, 그들의 결혼이 초행길처럼 미숙하고 두려운 과정임을 내포하고 있다.        


   

나 생리 안 해.”     


  지영은 2주째 생리가 미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수현에게 말하고, 이를 기폭제로 둘은 각자의 부모님들을 뵈러 떠난다. 지영의 부모는 인천의 번듯한 아파트에 살고 있고, 그녀의 엄마는 딸이 오랫동안 연애를 하면서도 결혼 생각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언제 결혼을 할 것이냐며 채근한다. 지영은 이에 답을 미루기만 하고, 결국 모녀는 언쟁을 벌이게 된다. 지영도 결혼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둘과 자신들의 상황이 결혼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나설 수 없었을지 모른다. 비정규직 직장과 아이를 키우기에는 턱없이 좁은 원룸, 넉넉지 않은 경제 상황은 그들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삐걱거리는 이 만남은 어쩌면 수현과 지영의 이별을 상상하게 하고, 수현의 부모를 찾아가는 일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지영은 휴가 중에도 업무를 해야 할 만큼 균형 잡히지 않은 워라밸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수현도 대학원 진학을 위해 지도 교수를 찾아가 아부는 물론 돈까지 갖다 바쳐야 한다는 선배의 말을 듣곤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탄식한다. “대학원 가려면 이렇게까지 해야 해?” 어쩌면 이 대사는 이런 뜻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서까지 미래를 만들어야 하지만 정작 그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이렇게 둘은 앞으로 나아가기도 힘든 여정을 이어나가며 수현의 고향, 삼척으로 향한다. 지영은 처음 만난 예비 시어머니와 음식을 만들며 각자의 집안 사정을 알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부동산을 하고, 아버지는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고, 수현의 부모는 삼척에서 횟집을 한다. 그렇게 지영은 살아온 배경도 환경도 달랐다는 걸 조금씩 천천히, 인지하게 된다. 수현의 엄마는 지영을 앉혀놓고 이런 말을 한다.     



결혼이라는걸 이렇게 생각해보면 그래.

수십 년 동안 한 사람이랑...한 집에서 같이 자고...같이 일어나고...같이 밥 먹고...

수십 년을 하잖아.

좋은 사람하고 그러고 살아도 지겨울 판에 웬수 같은 사람하고 같이 살아봐.

지옥이 따로 없지.     


  그녀는 자신의 불행한 결혼사를 얼핏 내비치고, 카메라는 그런 둘은 핸드헬드로 담아낸다. 이는 결혼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며, 한다 할지라도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될 거라는 현실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수현의 엄마는 다시 말한다.     


살아보고 해.

그래그래도 이 사람이랑 죽을 때까지 

같이 이렇게 살아도 되겠구나 싶으면,

그때 해그때해도 늦지 않아.  

   


  이에 지영은, ”살아보고도 모르겠으면요? “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영은 수현과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음에도 여전히 결혼에 대한 확신을 내릴 수 없다는 속마음을 내비친다. 여전히 결혼은 그녀에게 어렵고 혼란스럽기만 한 선택이다. 그들은 삼척을 떠나 집으로 향하고, 폭설을 만난다. 수현과 지영이 가려는 길은 계속해서 순탄치 않기만 하고, 이는 촛불 시위가 일어나는 광화문 광장을 걸어가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길목에 서서 길을 헤메고, 카메라는 그들의 뒤를 묵묵히 따라간다. 시종일관 이어지던 막연한 두려움은 이곳에서 나름의 희망을 보여준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나선 사람들, 그 희망을 은유하는 불꽃, 수많은 이들의 분주한 발걸음은 수현과 지영을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결혼이라는 큰 관문을 앞둔 그들의 두려움이 미약하게나마 사그라들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비단 한 커플의 로맨스만을 다루지도, 아름답게 표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현 세대 청년들의 모습과 가장 맞닿아 있다. 이제 ‘결혼’은 마냥 낭만적이고 로맨틱하지 않다. 날이 갈수록 치솟는 물가, 그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 형태, 위태로운 고용시장, 얄팍한 복지 제도 등은 청년들의 목을 조르고, 그들의 자리를 빼앗다 못해 없애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삭막한 현실 속에서 사랑을 꿈꾸고 결혼을 계획한다는 게 상당히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지금, 청년들의 초행길은 언제쯤 끝이 날 수 있을까. 그들의 정착지는 과연 어디일까. 그리고 사랑의 끝은 무엇이 돼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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