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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Jul 07. 2023

이런 나는 되고 싶지 않았더라도

영화 <프란시스 하> 비평문

이런 나는 되고 싶지 않았더라도


토디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증명하려 한다. 의식적으로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지는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취향, 정립하는 가치관, 이루고자 하는 목표 등이 가리키는 곳에는 결국 나 자신이 있다. 그것은 현재 실존하는 나 자신이라기보다는 ‘되고 싶은 나’에 가깝다. 우리는 스스로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에 지금의 자신을 비추고 거기에 한 발짝씩 다가가면서 성장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꿈꾸는 ‘되고 싶은 나’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의 존재가 의미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꿈은 언제나 나에게서 가장 먼 곳에 있고, 방법은 늘 어렵고 과정은 항상 괴로우며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가끔 성공하기 때문이다. 실패한 모습까지 ‘나’인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늘 어렵다. 아직 피지 못한 상태,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우리를 계속해서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그 상태에 늘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 누구나 실패는 겪어야만 한다. 실패하는 나, 바보 같은 나, 바란 적 없는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보듬어 주어야 하는 것 역시 나인 것을 어쩌랴.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일은 ‘되고 싶은 나’와 거리가 먼 나의 모습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영화 <프란시스 하>는 무엇이든 멋지게 해내는 ‘나’가 아닌, 실패하고 안 풀리고 대책 없는 ‘나’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0.   존재



  영화 <프란시스 하>에서, 주인공 프란시스 도입부부터 매 장면마다 그녀의 단짝 친구 소피와 함께이다. 둘은 함께 버스킹을 하고, 지하철에서 졸고, 담배를 피우고, 세탁소에 간다. 그들은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 전부 공유하며,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아끼지 않는다.



  프란시스와 소피는 서로가 있는 미래를 상상한다. 그들의 존재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서로이다. 그들은 함께 ‘되고 싶은 나’, 그리고 ‘되고 싶은 우리’라는 그림을 그린다.




1.  위기, 존재에 대한


  죽고 못 살 것 같던 둘에게도 관계의 위기는 찾아온다. 프란시스는 소피와 함께 사는 집의 계약을 연장하고 당연하게 앞으로도 함께 살 생각으로 애인의 동거 제안을 거절하고 애인과 헤어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피는 프란시스에게 다른 친구와 다른 지역에서 동거할 집을 구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프란시스는 크게 실망하지만, 소피는 마음에 쏙 드는 좋은 조건의 집을 마다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프란시스와 소피의 동거는 그렇게 끝이 나고, 소피가 거처를 옮기며 프란시스는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집에 혼자 남게 된다. 소피에게는 아니지만 애인도, 발 딛고 살 집도, 일상의 전부였던 친구도 잃게 된 프란시스에게는 관계의 위기가 곧 존재의 위기로 다가온다. 

  프란시스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전에 소피와 같이 만난 친구인 레브와 식사를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계산을 하려는데 카드가 말썽이고, 현금을 뽑아 오려는데 현금 인출기는 너무 멀다. 서둘러 돌아오려다 넘어진 프란시스의 팔에서는 피가 흐른다. 쉽지 않던 식사를 마치고, 레브는 프란시스를 집으로 데려가 상처를 치료해 준다. 레브의 멀끔한 집에 빈 방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프란시스는 레브의 집에 세를 들어 살기로 한다.

  하지만 소피와 함께 살 때와는 달리, 레브의 집에 사는 프란시스는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월세를 내기 빠듯한 형편이던 프란시스는 자신이 속한 무용단이 크리스마스 공연을 올릴 때쯤 자신도 돈을 벌 수 있다며 자신했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무용단에서는 프란시스를 공연에 넣지 않겠다고 통보한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프란시스와는 달리, 오랜만에 만난 소피는 행복해 보인다. 소피가 애인인 패치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다음날 비행기를 탄다는 이야기를 듣던 프란시스는 홧김에 소피와 패치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다가 자기도 곧 휴가를 떠날 거라고 큰소리를 친다. 




2.   회피, 위기에 대한


  뉴욕을 떠난 프란시스는 가족들에게로 향한다. 가족의 품에서 프란시스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보인다. 사람들을 만나고, 즐겁게 파티를 하고, 소피가 아닌 다른 친구와 어울리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같은 무용단 소속인 레이첼의 가족 식사에 초대받은 프란시스는 그 자리에서 소피가 애인을 따라 일본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존재의 위기가 다시금 덮쳐 오자, 프란시스는 또다시 충동적으로 파리로 떠난다.

  무턱대고 파리로 온 프란시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자꾸만 찾아오는 좋지 않은 상황들을 피하려고 도망쳐왔지만, 파리에서의 프란시스도 그가 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처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프란시스에게 소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고, 소피는 프란시스에게 자신의 송별 파티에 와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이미 파리에 있는 프란시스는 당장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소피의 이주 소식을 듣고 홧김에 파리까지 와 버렸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던 프란시스는 소피에게 또 거짓말을 한다. 공연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말이다. 뉴욕으로 돌아온 프란시스는 무용단의 콜린으로부터 사무직 일자리를 제안받지만, 이번에도 역시 다른 무용단에서 일할 거라고 거짓말을 한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앞에 닥친 주거와 금전 문제 등 현실적인 위기와, 자신의 전부와도 같았던 소피와의 관계로부터 오는 정서적인 위기 앞에서 자꾸만 거짓말을 하고 도망치려 한다.




3.   직시, 현실에 대한


  이어지는 장면에서 프란시스는 무용수 옷이 아닌 유니폼을 입고 행사 보조 일을 하고 있다. 여전히 무용수의 꿈은 놓지 않은 그는 졸업한 대학의 기숙사 조교 일을 하면서 무용 수업을 청강하려 하지만, 학부 조교가 아닌 기숙사 조교에게는 청강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프란시스는 소피에게 순회공연을 도는 중이라고 둘러댄 상태였지만, 학교의 큰 행사에서 예상치 못하게 소피와 재회하게 된다. 다시 만난 소피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소리를 지르는 소피가 프란시스는 어쩐지 낯설다. 블로그를 통해서 봤던 소피는 잘 사는 것 같았는데 말이다. 소피가 보는 프란시스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소란스러웠던 만남이 정리되고, 소피는 패치와 함께 프란시스를 기숙사로 데려다준 뒤 예정대로 시할아버지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날 밤, 소피는 프란시스에게로 돌아와 일본에서 유산을 겪었고, 패치와 결혼해서 도쿄에 살기 싫다고 고백한다. 소피는 패치와 헤어지고 다시 뉴욕에 돌아올 거라고 다짐하고 프란시스와 예전처럼 한 침대에서 잠들지만, 다음날 새벽 프란시스가 깨기 전에 짐을 챙겨 예정대로 장례식장에 간다. 뒤늦게 잠에서 깬 프란시스는 맨발로 소피의 뒤를 쫓아가지만, 그를 잡을 수 없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삶도, 소피의 삶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고,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4.   준비, 사랑을 위한


  프란시스는 더 이상 무용수 옷을 입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이 만든 안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공연을 올린다. 여전히 무용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전보다 확실히 행복하고 편안한 모습이다. 더 이상 ‘되고 싶은 나’에 가까운 모습, 가능성이 있는 ‘나’에 대한 증명을 할 필요가 없어진 소피는 한결 편안해 보인다. ‘되고 싶은 나’가 아닌 진짜 ‘나’를 사랑할 준비를 마친 사람처럼 말이다.



  프란시스는 새로 이사를 들어간 아파트의 우편함에 자기 이름이 적힌 종이를 끼우려 한다. 그의 이름은 ‘프란시스 할라데이(Frances Halladay)’이지만, 긴 이름 탓에 한 칸 안에 이름이 다 들어가지 않자 그는 종이를 칸에 맞춰 대충 접은 뒤 칸 안에 넣는다. 칸 안에는 ‘프란시스 하’라고 적혀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프란시스는 당당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선다. 


  포기하고 타협하는 것을 누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으랴, 그건 사랑하는 자신을 돌보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나’는 되고 싶지 않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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