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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May 12. 2023

날 너에게 줄게, 널 나에게 줘.

영화 <해피투게더> 비평문

날 너에게 줄게, 널 나에게 줘.


레미





  두 개의 물이 담긴 독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모양이 다른 두 독은 모두 조금씩 금이 갔다. 두 독의 주인이 만나 서로의 금을 발견한다. 그것을 매개로 둘은 사랑에 빠진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처를 주면서 사랑한다. 상대 독의 물을 가져다 자신의 독을 채운다. 동시에 금은 점점 굵어져 구멍이 되고 서로를 갈구하며 물을 채워도 결국 독 안은 텅 비고 만다.

  여기, 아무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오로지 서로에게 의지한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두 사람이 있다. 보영과 아휘의 이야기이다. 서로를 갈망할수록 공허해지는 두 독의 주인은 끝내 서로의 이름을 놓아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홍콩을 떠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온 보영과 아휘는 그곳에서 서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아휘는 신경질적인 건물주를 둔 작은 아파트에 하숙하며 힘든 식당일에도 변변치 않은 월급을 받지만 나름의 목표가 있다. 반면 거처와 행방을 알 수 없는 보영은 자신이 아쉬울 때만 아휘 앞에 나타나 그를 흔든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도 모자랄 판에 두 사람은 불 같이 사랑했다가 언성을 높이며 헤어지기 일수다. 한 쪽이 관계 회복을 위해 손을 내밀면 다른 한 쪽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 침을 뱉고 상처를 준다. 그리고 그 마음의 기저에는 홍콩을 떠나왔듯 언젠가 서로를 완전히 떠나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아휘는 자기 좋을 때만 찾아왔다가 눈을 뜨면 사라져버리는 보영이 싫다. 보영은 자신을 챙겨주고 사랑해주는 아휘의 품이 그립지만 언젠가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불안에 그를 완전히 껴안지 못 한다. 그럼에도 아휘는 보영과 함께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보영이 자신을 떠날까 염려하는 일상을 보낸다. 연락이 끊긴 기간이 오래되어 마음이 초조해질 때쯤 어김없이 보영이 등장한다. 얼굴에 피멍이 들었거나, 가장 바쁜 시간에 무턱대고 전화하거나, 늦은 밤 인사불성인 채로 말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보통 사랑에 기대하는 모습과 다르다. 전혀 다른 두 삶이 만나 사랑하는 일에는 당연히 수많은 부딪힘이 발생하지만 함께 하는 법을 배우고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얻는 것이 대게 사랑으로 이룰 수 있는 모습이겠다. 그러나 아휘와 보영의 반복되는 다툼은 서로를 지치게 하고 더 나은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저버리게 만든다. 둘을 보고 있자면 저것보다는 나은 말과 행동이 있을 것임에도 서로를 할퀴기 위한 자성라도 존재하듯 상처투성이인 사랑의 불편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질깃한 사랑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해결하지 못한 스스로의 불안정과 결핍이 보인다. 안전함과 안정감, 그 두 가지가 결여된 삶에 익숙해져야 했던 노동자 계급의 두 홍콩 청년은 그런 식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운듯하다. 나를 위해 얼마나 망가지고 아파할 수 있어? 라는 식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나의 존재를 사랑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관계 맺는 것인데 두 사람의 사랑은 이 모두를 실패했다. 





  영화는 아휘의 시점으로 서술되기에 보영의 서사는 상대적으로 드러난 바가 없다. 정착을 원하면서 방황하는 모습만이 그려질 뿐이다. 보영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결국 아휘와 같은 결핍이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다. 아휘만큼 스스로를 돌볼 능력도 의지도 없는 보영은 어떤 말싸움을 해도 결국 자신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아휘의 눈빛, 그것 하나만으로 스스로의 빈틈을 채운다. 이러한 등장과 행방불명이 반복되며 뚜렷해지는 한가지는 보영이야 말로 아휘를 떠나지 못 한다는 것이다.

  아휘의 언성과 자신의 실수에 지친 보영은 이번에야 말로 아휘를 완전히 떠나버리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아휘가 자신의 여권을 훔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영은 아휘를 찾아가 여권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아휘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매일 이렇게 싸우고 사라져버릴 바에야 보영이 더 이상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던 말은 사실 그 반대의 마음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영이 자신을 떠나지 못하도록 여권을 숨긴 아휘는 이렇게 말한다. 


“몇 번을 말해, 절대로 돌려주지 않을 거야.” 


  여기서 한 가지 작은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해피투게더>의 메이킹 필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제로디그리>(2000)에서는 본편에서 편집된 아휘의 이후 대사이다. 아휘는 말한다.


“사실 니가 아휘고 내가 보영이잖아.”

  그리고 보영이 찾던 자신의 여권에는 보영이 아닌 아휘라는 이름이 보인다. 즉, 본래 장국영이 분한 보영은 사실 아휘였고 양조위가 분한 아휘는 보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름을 바꿔 자신을 버리고, 동시에 함께 존재하고자 했던 두 사람의 끝은 그들이 원했던 반대로 흘러간다. 불안을 전제로 한 사랑의 등가교환은 밑 빠진 독의 물 붓기였다. 





   결국 그 관계를 완전히 놓아버린 것은 아휘(양조위)였다. 자신의 독이 점점 비워진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보영(장국영)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아르헨티나를 떠난다. 그리고 뒤늦게 아휘의 텅 빈 아파트를 발견한 보영은 아휘의 옷과 침대를 끌어 안고 울부짖는다. 두 사람의 마지막은 서로에게로 도피한 사랑에 완전한 정착이란 없음을 보여준다. 어느 한 사람도 서로를 지우지 못한 채 그저 다음 걸음을 내딛기 위해 멀어지는 것 뿐이다.


  해피투게더 속 사랑은 결핍을 통제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겨우 회피했을 뿐인 경우의 어떤 사랑을 보여준다. 다만, 그 속에서도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아휘와 보영을 통해 사랑 다음의 인생을 본다. 아휘는 불편한 사랑이 주는 비뚤어진 안정감에 안주하지 않는 법을 배운 사람이 되었고, 보영은 결핍이 만들어낸 이기적인 관성에 무너진 사람이 되었다. 한껏 사랑할 때의 관계뿐아니라 그래서 그 사랑이 다음 단계의 인간을 만드는 과정을 보며 사랑이란 어떤 경우에 실패한 거름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춘광사설], ‘구름 사이로 잠깐 내비치는 봄 햇살’

  이라는 뜻의 원제는 서로에게 빛이 되었던 관계와 먹구름이 잔뜩 드리운 하늘까지도 함께 보여주는 영화임을 복합적으로 의미한다. 그러니까 어떤 사랑은 잠깐 비추는 햇살을 잊지 못해 하늘을 보며 아무리 기다려도 오늘은 햇살을 볼 수 없다는 절망을 안겨주고, 그렇게 그가 떠난 자리를 이제야 더듬는 햇살만이 남는 것과 같은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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