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만과 편견> 비평문
“오만함이 단점일까요, 아니면 미덕일까요?”
오만함은 미덕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간은 태생이 오만하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과 말에 마음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나름대로 맥락에 끼워 맞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인간이 의사소통하는 기본적인 방식이다. 그러니 인간에게 오만함은 숙명과도 같다. 사랑에 빠질 때에도 마찬가지다. 나의 오만함으로 상대에게 덮어 놓았던 편견의 베일을 한 꺼풀씩 벗기거나,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허락된 달콤한 오만함으로 상대의 허물을 눈 딱 감고 덮어 버리면서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게 된다.
“언니는 너무 쉽게 마음을 열잖아, 누구나 좋게만 보고.”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 롱본의 딸부잣집 베넷 가의 장녀 제인은 롱본을 방문한 젊고 부유한 신사 빙리와 첫눈에 반해 아주 쉽게 사랑에 빠진다.
빙리는 제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제인과 그의 여동생 리지가 던지는 질문에 어색하지만 최선을 다해 답한다. 누가 봐도 서툴게 꾸며 낸 모습이었지만 제인은 기꺼이 그를 사랑하기로 한다. 빙리 역시 제인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조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간단하게 건너뛰어 버린다.
물론 이들의 사랑에도 이런저런 위기가 찾아오지만, 이들은 사랑에 빠질 때만큼이나 쉽게 그 위기를 극복해 버린다. 빙리는 여동생에게 이끌려 롱본을 떠나고, 제인은 그가 있는 곳과 가까운 런던으로 향한다. 그러나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가 그 사실을 빙리가 알지 못하게 하여,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한다. 그 일로 제인과 빙리는 상대가 자신에게 진심을 다하지 않는다고 오해하지만, 그 후 다시 돌아온 롱본에서 재회하며 여전한 사랑을 확인한다.
둘의 사랑은 단순하다. 이들은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넘겨짚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은 자기 앞의 상대를 그대로 믿으면서 시작되고, 가장 믿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여주는 것을 믿음으로써 위기를 맞고, 결국 서로가 보여 주는 것을 온전히 믿기로 하면서 결실을 맺는다.
“그럼 사랑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 “춤이죠. 비록 파트너가 별로라 해도요.”
반면, 제인의 동생인 리지와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는 훨씬 복잡한 과정을 통해 관계 맺는다. 훗날 연인이 될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긴다. 다아시는 조신하지 못해 보이는 베넷 가 자매들과 그들 어머니의 무례한 태도를 보고 그들의 수준이 낮다고 생각한다. 한편 리지는 우연히 다아시가 자신을 평가하는 듯한 말을 듣게 된다. 그는 그런 다아시가 파트너 없는 여성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춤을 신청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가 고고하고 재수 없다고 생각한다. 리지는 춤을 추지 않는 다아시에게 사랑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춤이라고 말한다.
“저는 한 번 돌아서면 영원히 돌아섭니다.”
서로에게 편견을 가진 상태로 나누는 대화는 상대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미 그에게 가지고 있던 인상을 강화시킨다. 빙리의 집에 방문했다가 독한 감기에 걸려 발이 묶인 리지를 찾아간 제인은 빙리의 집에 함께 머물고 있던 다아시와 다시 한 번 대화를 나누게 되고, 둘 사이에 자리한 편견의 벽은 더더욱 두꺼워진다. 다아시는 리지 앞에서 자신은 누군가에게 “한 번 돌아서면 영원히 돌아선다” 고 말한다.
리지가 다아시에 대해 키워 가던 편견은 위크햄이라는 인물을 통해 정점을 찍는다. 다아시와는 달리 첫인상이 좋고 말주변이 뛰어난 그는 리지에게 다아시에 대한 모함을 늘어놓는다. 리지는 그의 말을 믿고, 다아시를 인정 없고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한편 우연히 위크햄과 리지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한 다아시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번 돌아서면 영원히 돌아선다” 는 그의 말은 위크햄의 경우에는 사실이지만, 리지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한 듯하다. 그는 이후에 열린 무도회에서 만난 리지에게 춤을 청하며 위크햄에 대해 경고한다. 리지는 자신에게 춤을 신청한 다아시의 속내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하지만, 곧 교회에서 우연히 제인과 빙리 이야기를 듣게 되며 자신의 언니와 그녀의 연인을 갈라 놓은 사람이 다아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한다.
“당신의 오만과 자만심, 이기적이고 남을 무시하는 태도는 이 세상에서 최악의 남자로 느끼게 되었고 그런 남자와 결혼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아시는 무도회 이후, 리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사랑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춤이라고 리지가 말했건만, 함께 춤을 춘 이후에 다시 만난 리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잔인하기만 하다. 싹튼 적이 없으니 지킬 수 없음이 당연하다.
리지 역시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고 다아시와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다아시는 청혼을 거절당한 것과는 별개로 리지가 자신에 대해 하고 있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곧 다시 찾아온다. 리지는 위크햄이 했던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사실과, 제인과 빙리를 만나지 못하게 한 사람이 다아시가 맞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진다.
리지가 이전까지 알던 다아시는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인정 없는 사람이었고, 지금 리지가 알고 있는 다아시는 여전히 오만하지만 아량이 넓고 성숙한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면적이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어떤 부분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도 오만한 일이다. 위크햄의 어떤 좋은 부분과 다아시의 나쁜 부분을 보게 되었다고 해서 위크햄이 좋은 사람이고 다아시가 나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는 오만하지 않아요, 제가 잘못 봤어요.”
리지와 다아시의 관계는 리지의 동생 리디아가 위크햄과 함께 도망치면서 변화를 맞는다. 위크햄은 베넷 씨에게 동생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약간의 돈을 요구한다. 이 결혼이 틀어지면 베넷 가 딸들의 혼삿길이 막히는 것은 시간 문제이므로, 베넷 씨는 이를 수락하고 둘의 결혼을 허락한다. 베넷 씨는 위크햄이 협박 치고는 너무 작은 돈을 요구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데, 리지는 곧 리디아를 찾은 것이 다아시이며 그가 위크햄에게 먼저 돈을 주고 문제를 거의 해결해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리지는 자신의 가족을 무시하던 다아시가 곤경에 처한 자신의 가족을 구하면서도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한 꺼풀씩 벗겨내면서 이해할 수 없던 그의 행동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인다. 리지를 찾아온 다아시의 이모가 그를 모욕하며 다아시와 결혼하지 말 것을 강요할 때, 그는 비로소 스스로의 감정에도 솔직해진다. 둘은 복잡하고도 어렵게 사랑에 도달한다.
한편 리지는 다아시에 대한 편견을 떨쳐낸 뒤에도 그가 저지른 과오를 전부 없던 일로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아버지 앞에서 그의 잘못까지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대의 모습에 자신이 원래 알던 상대의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무리해서 끼워 맞추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관계는 더욱 성숙한 사랑에 가까워진다.
자신의 오만함을 인정할 때 우리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타인이 보여 주지 않는 부분을 넘겨짚는 일도, 타인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일도 모두 오만한 일이라서 타인과 관계 맺는 과정은 늘 오만함의 연속이며 그것을 인정할 때에야 우리는 타인에게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다시 말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오만한 나에 대한 인정이며 미지의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어렵지만 오만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무조건 가까워지는 것이 사랑인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 건지, 오히려 멀어져야 사랑인 건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조차도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마음껏 오만하고 기꺼이 인정하고 충분히 사랑하자.
#영화비평 #영화리뷰 #영화후기 #영화오만과편견 #오만과편견 #오만과편견리뷰 #오만과편견후기 #오만과편견비평 #영화오만과편견후기 #제인오스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