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쓰백> 비평문
미쓰백을 처음 본 때는 이번 연도 2월 초였다. ‘여성 주연’ 키워드 하나로 왓챠 DB를 탐색하던 중, 한지민 주연의 ‘미쓰백’을 발견했다. 처연한 눈빛에 뺨에는 깊은 상처가 나있는 한지민 배우가 어린 여자아이를 손으로 끌어안고 있는 포스터가 시선을 이끌었다. 개봉 당시 호기심을 일으켰던 영화였지만 어떤 이유로 타이밍을 놓쳐버리고만 작품이었다. 간략한 영화 소개와 스틸컷을 보아하니 내 기획안과 유사한 부분이 있어 보였고, 5년이 흘러서야 감상하게 되었다.
극 중 한지민 배우는 ‘백상아’라는 여성으로 나오며, 등장인물 대부분은 그녀를 ‘미쓰백’이라 부른다. 미쓰백은 동네에서 세차 일을 도맡으며 약간의 보수를 받는다. 시종일관 담배를 입에 물고 있고 거친 욕설도 스스럼 없이 내뱉는 캐릭터로 보인다. 하지만 강인한 모습 뒤에는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과거를 안고 있다. 그 과거를 알고 있는 형사, ‘장섭’은 그녀를 종종 찾아가 안부를 묻거나 함께 밥을 먹는다. 둘은 가까운 사이처럼 보이지만 알 수 없는 벽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듯, 미쓰백은 장섭을 계속 밀어내기만 한다. 상아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아이, ‘지은’. 이 소녀는 부모나 어떤 보호자에게도 전혀 돌봄 받고 있지 않다. 아버지는 매일 집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지은에게 폭력을 일삼는다. 동시에 그의 애인 ‘주미경’은 지은을 무차별적으로 학대한다.
영화 ‘미쓰백’은 여타 상업영화의 기폭제, 즉 인물들에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지는 뚜렷한 사건이 극 초반부에 등장하지 않는다. 상아와 지은은 서로 얼굴과 이름을 트고부터 부쩍 가까워진다. 그들은 ‘아동학대’라는 같은 고통을 겪었고, 그 상흔을 매개체로 삼아 서로를 보듬는다. 연대의 방식은 함께 간 놀이공원 장면에서 크게 두드러진다. 지은은 미쓰백이 사준 두툼한 겨울옷을 겹겹이 껴입고 월미도 놀이동산으로 향한다. 지은은 이곳이 처음 와보는 장소인 것처럼 생경한 눈빛을 띠고 있다. 미쓰백은 과거에 와봤으나 어떤 기억이 그녀를 힘겹게 만들기라도 하는 듯 시종일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어린아이가 이런 곳을 처음 왔다는 것에서도 마음이 아려왔으나, 동시에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쉽게 꺼내기 힘든 고통을 서로 나눈 장소가 어린아이들의 동심인 ‘놀이공원’이라는 점이었다. 미쓰백은 어머니로부터 버려진 장소가 여기였으며, 지은에게는 상처로 점철된, 겨우 9년 남짓의 인생에서 생애 첫 ‘행복’을 느낄 수 있던 곳이다. 그들은 붉은 노을을 두고 마주 본다. 마치 ‘한 마디 말없이도 나는 당신의 아픔을 안다’고 말하듯이. 오직 눈빛 하나로만 둘은 소리 없는 연대를 시작한다.
종국에 이르러서 미쓰백은 지은을 자신의 딸처럼 여기듯 그녀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아이를 지속적으로 학대하고 끝까지 본인만의 소유물로 여기는 주미경을 향해 분노를 참지 않는다. 미경은 지은을 때리다 보니 정이 들었다며 뻔뻔한 태도를 취한다. 결국 상아는 돌부리를 쥐어잡고 마지막 반격을 하려 한다. 그 순간 장섭이 달려와 상아를 말리고, 미쓰백은 끝내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린다. 그는 그녀를 지은에게 보내주고, 미쓰백은 지은에게 달려가 꼭 끌어안는다. 상아는 지은에게 정말로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유년 시절 자신을 투영하며 구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구하려 했던 걸까. 나는 그 두 가지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지금껏 살아오며 어린 상아를 구출해 내지 못했다. 그 과거가 매우 고통스러웠고, 펼쳐보기라도 하면 몸을 칼로 베는 것처럼 그녀를 괴롭혔으니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힘든 시간을 마음 깊숙이 묻어두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열어보는 순간부터 현실을 직시해야 하기에, 회피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미쓰백은 이제 회피가 아닌 마주 보기를 선택했다. 그것도 처지가 같은 어린아이 ‘지은’을 통해서. 지은을 위해, 미쓰백 자신을 위해, 이제 그녀는 자신만의 장롱에서 나와 비로소 어른으로서 성장한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이지원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을 고민했다.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는 없으나, 하나만은 알 것 같았다. 어떤 고통일지라도 이제 더 이상 혼자서만 아파하지 않고, 나누어 가며 살아간다면 무거운 그 고통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tilda의 한줄평: 이런 게 ‘연대’가 아닐까?가 아닌 마침표를 찍고 싶게 만드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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