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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Nov 25. 2022

Anyway, □□□□□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 소설 <나의 아나키스트 여자친구> 비평문

Anyway, □□□□□     


토디, 땡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와 한정현 작가의 단편 소설 「나의 아나키스트 여자친구」에는 사랑-혹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지금의 일상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앞날을 덧댈수록 불안하고 힘겨워진다. 참 이상한 일이다. 너무나 사랑하는데 함께 할수록 괴로워진다니. 생각해보면 사랑이나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물은 수없이 많다. 드라마나 영화, 연극, 소설뿐만이 아니라 당장 내 주변만 둘러봐도 누군가를 사랑하며 힘들어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왜 사람을 힘들게 만들까.      






사랑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누군가에 대해 깊게 골몰하고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성애적 사랑이든 아니든 그 대상이 실존하든 안 하든 가까운 사람이든 먼 사람이든 누구건) 한 번쯤은 속으로 되뇌어봤을 것이다. 불가해하고 비효율적인 그것은 도대체 정체가 뭐길래 우리의 생활에 계속 붙어있을까. 왜 나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타인의 존재 여부로 인해 나의 하루가 엉망이 되거나 기쁨이 되는 것을, 나의 하루를 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걸 가만 보게 되는 걸까.


  알 수 없는 그것의 방향이 서로에게 향하게 되는 순간, 두 화살표는 이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선이 아니라 하나의 쌍으로 묶인 ‘연인’이 된다. (물론 모든 두 쌍의 화살표가 연인이 되는 건 아니다.) 같은 화살표를 쥐고 걷기 시작할 때,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사람의 새롭고 다채로운 면면들을 발견하게 될 때, 이제는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사랑의 힘겨움과 어려움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 이제 그들에게 닥치는 고통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로 인한 고통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으로 인한 고통이다.     


  사실 당연한 문제이다. 사람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존재이니 내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어떤 모습이 있다면, 반대로 내가 너무나 견딜 수 없는 모습도 존재할 수 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내가 아니고, 때로는 나도 내가 이해 안 될 때가 있는데 나와 전혀 다른 역사 속에서 살아온 그 사람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전혀 다른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그가 낯설어지는 경험은 예견된 일이다. 그리고 그 낯섦이 두려움과 고통으로 전환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 고통은 내가 새롭게 발견한 그 사람의 얼굴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고, 알고 있었지만, 그땐 신경 쓰지 않았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고, 처음의 불편함이 점점 커지는 데에서 비롯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내가 사랑하지 않는, 혹은 사랑할 수 없는 모습이 보인다면,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사랑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사랑의 지속.     


  앞서 서술한 <로렌스 애니웨이> 속 프레드, 「나의 아니키스트 여자친구」 속 ‘나’는 모두 연인의 변한 모습을 직면하고 사랑에 위기를 겪는다. 아니, 이런 서술에는 문제가 있다. <로렌스 애니웨이> 속 로렌스와 「나의 아나키스트 여자친구」 속 수호는 변한 게 아니다. 그들은 원래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진실한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한 것이다. 「나의 아나키스트 여자친구」 속 문장을 빌리자면 그것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그러니까, 로렌스와 수호가 ‘여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일 말이다.


  트랜스젠더란 출생 시 지정된 성별과 다른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로렌스와 수호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자신의 성과 스스로 인지하는 자신의 성이 다른 불일치를 경험했을 것이고, 그러는 동안 자신이 좀 참으면 될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게 누리는 걸 본인은 누리지 못한 채 참아야만 하는 사실이 자주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그래서 더는 못 참고 죽을 것 같고 말 안 하곤 못 배기겠는 상황에 이르렀다.


  앞으로는 여성으로, 나에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하는 로렌스와 수호 앞에서 프레드와 ‘나’는 혼란을 겪는다. 프레드는 로렌스에게 묻는다. 내가 좋아한 걸 넌 싫어한 거네?” ‘나’는 수호의 발치에 책을 던지고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런데 지금의 너는 자꾸 부정하게 돼믿고 싶지 않게 된다고.’ 프레드와 ‘나’가 겪는 사랑의 고통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에게서 내가 사랑해본 적 없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과 더불어 내가 사랑했던 그의 모습이 어쩌면 그에겐 일생일대의 고통이자 고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절망에서 기인한다.


  로렌스/수호는 프레드/‘나’를 여전히 명쾌하게 사랑하지만, 프레드/‘나’는 로렌스/수호를 명쾌하게 사랑할 수 없다. 넌 남자 좋아하는 여자고 걘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야그러니 짐 싸서 안녕하면 그만이야.”라고 간단하게 말하는 동생에게 아침을 그이 곁에서 맞고 싶어그이의 팔베개가 필요해.”라고 울면서 대답하지만, 남성을 사랑하는 헤테로 여성인 자신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이제 프레드/‘나’는 새로운 고통을 느낀다. 성별을 바꾸었다고 그가 그 아닌 사람이 되는 건 아닌데 난 왜 그를 받아들이지 못할까.’ 그들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자신의 연인들뿐만 아니라 바뀐 연인을 견디지 못하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이 지점에서 프레드와 ‘나’는 다른 선택을 한다. 프레드는 로렌스에게 돌아가 다시 그의 옆에 선다. 로렌스가 화장한 얼굴에 여성복을 입고 출근하는 걸 응원하고 그에게 선물할 가발을 고른다. ‘나’는 자신의 사랑의 한계를 깨닫고 수호와 헤어진다. 여전히 수호의 모든 것에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게 되는 채로.     




명쾌하게 사랑하기     


  왜 프레드와 ‘나’는 명쾌하게 로렌스와 수호를 사랑할 수 없었을까. 정작 달라진-그것이 원래의 모습으로일지라도 우선은,-사람인 로렌스와 수호는 분명하게 프레드와 ‘나’를 사랑할 수 있는데 어째서 프레드와 ‘나’에게는 그것이 이토록 힘들까.


  왜 연인이 트랜스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은 비흡연자였던 애인이 흡연하게 되는 일이나 인디 밴드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애인이 알고 보니 멜론 top100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고민과 고통을 안기는 것일까.


  답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흡연자에게 대놓고 더럽다고 시비 걸지 않는다. 멜론 top100만 듣는 사람에게 왜 그따위로 하고 다니냐고 화를 내고 때리거나 침을 뱉지 않는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에게는 너무나 쉽게, 빈번하게 그렇게 한다. 그들은 그저 자기 자신으로 있었을 뿐인데.     


  학교에서 해고된 로렌스가 화장하고 여성복을 입은 채 술집에 가자 가게에 들어온 손님은 로렌스에게 왜 그런 꼴을 하고 있냐며 시비를 건다. 로렌스는 그 사람에게 주먹을 날리고 둘은 싸움이 붙는다. 얼굴이 엉망이 된 로렌스는 프레드와의 브런치 자리에서 다른 남성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계단에서 넘어졌다고만 말한다. 프레드는 주변에서 로렌스와 자신을 힐끔거리는 시선을 느낀다. 식당의 서버는 로렌스에게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거냐고 묻고, 프레드는 폭발한다.     


네가 뭔데 입을 함부로 놀려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해닥치고 질문도 하지 마생각 따위 속으로나 하고 신경 꺼우리 같은 사람은 밖에 다니면 안 돼우리도 숨 좀 쉬고 살자이 지랄 같은 동네에서이 사람 손톱에 칠한 매니큐어도 겁나남편을 위해 가발 사 봤어그런 적 없니길에 다니다 얻어터질까 봐 걱정해본 적 있어망신창이로 돌아올까 봐 말이야내 입장 생각해봤어나처럼 살아봤어그러니 쓸데없는 참견 마우리한테 말 걸지 말라고그리고 주둥이는 닥치라고.”     


수술을 하고 다시 나타난 수호에게 책을 던지며 화를 낸 ‘나’는 ‘나’에게 혼자 사는 여자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계속 해대며 미묘하게 불안한 감정을 심어주던 상사가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성 소수자들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생각도 안 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라고 중얼거리자 폭발한다.     


절대 너에게 반항할 수 없는 나 같은 부하 직원 괴롭히며 사는 네가 대체 뭘 알아정말 한 번이라도 나 자신으로 살고 싶은 게 뭔지 네가 알기나 해?”     


점원에게 화를 내는 프레드도, 상사에게 화를 내는 ‘나’도 그 화가 온전히 점원과 상사에게만 향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속에는 자신에 대한 혐오와 사랑하는 그를 향한 미움과 그를 둘러싼 폭력적인 사회에 대한 원망이 한 데 뒤섞여있었을 테다. 또한, 그를 욕보이는 사람에게 화를 내면서도 프레드/‘나’ 또한 그를 온전히,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레드/‘나’에게 그건 이해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중요한 건 그를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였기 때문에, 그를 위협하고 모욕하는 사람이 있으면 화를 내게 됐을 것이다.     

그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 미래를 택할지라도.     




Anyway, 아나키스트     


이토 노에세상의 모든 규정과 그로 인한 혐오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사람. 수호는 그런 사람의 평전을 ‘나’에게 선물하고 책의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너의 당당함이 멋있다나 자신으로 살지 못하게 막는 곳에서는 차라리 백치가 되어 모든 걸 불살라버리자.’

나중에 우는 ‘나’ 앞에서 수호는 말한다. "나도 아나키스트는 아니야그렇게 거국적인 걸 생각한 건 아닌데나도 그냥 나로 살아보려고 했던 거였는데그래도 너에게 정말 미안해."


내가 나로 사는 게 어째서 너에게 미안한 일이 되어야 할까. 내가 나로 사는 게 어째서 사랑하는 너를 울게 하고, 신경 쇠약에 걸리게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내가 나로 사는 게 어째서 그렇게 거국적인 움직임으로 읽혀야 하는가. 이상한 걸 골라보자면 나를 나로 살지 못하게 하는 사회, 나를 아나키스트로 만드는 그 사회 아닌가.


‘나’는 이야기의 말미에 수호를 이렇게 부른다. 나의 아나키스트 여자친구 이수호.’ 여성복을 입고 출근한 날, 반항하는 거냐는 동료의 말에 로렌스는 이렇게 답한다. 아니요혁명이에요.” 로렌스와 수호의 혁명은 의도된 것일 수도 의도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저 본래의 모습을 찾고자 했을 뿐이므로. 하지만 나를 나로 살게 하지 못하는 이 폭력적인 사회에서 내가 나로 사는 일이 거국적으로만 가능하다면, 그들은 기꺼이 거국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반항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혁명이라고 답하면서.     


끝내 여느 연인들처럼, 로렌스와 프레드, ‘나’와 수호는 이별한다. 누구도 나쁘지 않았고, 모두가 자신에게 진실해지고자 헤어짐을 택한다. 언뜻 보면 이들이 사랑 대신 혁명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랑과 혁명은 대척점에 있지 않다. 그들의 혁명을 살짝 들춰 보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맹세해,

건강을 지킬 것과 위험을 피할 것과 과거를 잊고 희망을 가질 것을 자기 이름을 걸고.”     

모르는 남자한테 문 열어주지 마마르지 말고 밥 챙겨 먹어빵도 먹어못 먹어서 마르지는 말란 말이야책 읽으면서 걸어 다니지 마무엇보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안녕을 바라던 마음, 그 사람의 평온하고 안온한 일상을 바라는 마음이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치열하게 누군가를 받아들이고자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것에 실패해 슬퍼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누군가를 대신해 화를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헤어짐은 사랑 대신 혁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원동력 삼아 혁명을 선택한 것이다. 사랑 없는 혁명은 불가능하다.     


한 사람을 사랑해본 사람은 모두를 위한 혁명도 말할 수 있다고, 한정현 작가는 말했다. 그러니 프레드와 로렌스와 ‘나’와 수호의 헤어짐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혁명의 한가운데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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