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글 Mar 31. 2023

사랑으로 그린 아름답지 않은 풍경들 1.

영화 <클로저> 비평문

사랑으로 그린 아름답지 않은 풍경들 1.

아름답기만 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홍자




 

 사랑은 힘이 있다. 때로 사랑은 죽음의 이유가 되고, 서로를 책임져야 하는 근거가 된다. 사랑은 어렵다. 상대와 정서적, 육체적 교류를 필요로 하는 사랑은 유독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의 세계를 구성했던 언어들은 새로운 해석으로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가 탄생한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행복하고, 딱 그만큼 고통스러운 세계가. 사랑 속에서 우리는 상대의 행동과 말에 담긴 의미와 의도를 끊임없이 추적한다. 무의미했던 것들이 유의미해지는 세계에서 서로의 감각은 민감해진다. 행복해지기 쉬운 만큼 상처받기 쉽고, 희망이 들어서는 만큼 좌절도 금세 찾아든다. “살갗이 벗겨진” 민감한 감수성의 상태가 된다. 사랑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있고, 그래서 사랑은 아프다. 따라서 사랑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아름답다. 아니, 그렇게 여겨진다. 사랑 앞에 어떤 단어를 넣든 간에 사랑이 볼품없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그 단어가 사랑이라는 단어에 의해 아름답고 낭만적인 의미로 느껴지고야 만다. 그렇다면 사랑을 가까이서 봐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일까?

 영화 ‘클로저’는 사랑을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만나 낯선 사람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친근해지는 모습을 담는다. 쉽게 상대를 속이고, 배신하고, 상처 주며 방황하는 네 사람을 보여준다. 이 중 누군가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설 것이며 이 중 누군가는 상대의 배신을 감당하고 상대의 곁에 남을 것이다. 또 이 중 누군가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신이 버린 상대에게 돌아가 공허한 사랑을 속삭일 것이다. 그렇게 네 사람은 사랑을 끝내거나 혹은 끝내지 못할 것이다. 



#1. hello. stranger “독창적인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p199     

  남자와 여자는 횡단보도에서 수많은 사람 속 서로를 응시한다. 여자는 새로운 곳의 신호에 익숙하지 못해 차에 치에게 된다. 남자는 사고를 당한 여자에게로 뛰어간다. 이것이 앨리스와 댄의 첫 만남이다. 뉴욕에서 온 웨이트리스와 부고 기사를 쓰던 기자는 완전히 ’무방비상태’로 만나 서로 이야기를 하며 처음 느꼈던 서로에 대한 이미지에 새로운 정보를 추가한다. 그렇게 이들이 서로에게 가까워진 순간, 우연했던 차 사고는 운명적인 사건으로 변모한다. 사랑의 시작은 운명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그 사람과 인연을 맺고자 하는 선택에 의해서다. 사랑하는 이들은 지나치는 일상마저 운명적 일화로 변주한다. 그런 의미에서 독창적인 사랑은 없다. 다만 모든 사랑이 유일하다고 여겨질 뿐이다.           




#2. hello. stranger “사랑하는 자만이 배신할 수 있다”

- 롤랑바르트 사랑의 단상 p269         

  여자의 사진 스튜디오에 한 남자가 찾아온다. 여자는 그 남자의 책에 실릴 그의 사진을 찍어준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끌림을 느끼고 키스를 한다. 이것이 댄과 안나의 첫 만남이다. 댄은 이미 앨리스와 동거 중이었고, 그가 쓴 책은 앨리스를 뮤즈로 한 것이었다. 댄은 안나에게 앨리스가 사랑스러워서 떠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끌린다. 그 스튜디오로 앨리스가 댄을 마중 나오고 안나는 앨리스에게 책에서 그려진 이미지완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안나에게 앨리스는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한다. 안나와 댄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고백한 앨리스는 울며 소리친다. 

   “그냥 사진이나 찍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와 방식으로 상대의 믿음을 저버린다. 사랑하는 이들 사이 ‘너 나 못 믿어?’라는 질문에 수긍하는 행위는 ‘사랑이 끝’났거나 혹은 그 직전에 단계에 있다고 시인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믿음을 저버린 순간,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상대를 사랑하는 것과 믿는 것은 공통분모가 많은 별개의 집합일 뿐이다. 그래서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상대에게 항상 솔직하고 현실적일 것이란 생각은 사랑에 대한 환상에 불과하다. 사랑하는 자만이 배신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받는 자만이 질투할 수 있다. 




#3. hello, stranger “충족될 수도 자살할 수도 없는 나는 숙명처럼 방황한다.” 

- 롤랑바르트 사랑의 단상 p150     

 댄은 안나인 척을 하고 한 남자와 음란채팅을 한다. 그리곤 그 남자를 안나가 있을 장소로 불러낸다. 그 장소에 도착한 남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홀로 앉아 있는 안나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말을 건다. 이후 그들은 댄의 짓궂은 장난에 걸려들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래리와 안나의 첫 만남이다. 이상한 계기였지만 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서로를 알아간다. 래리는 안나의 완벽함과 그런 그녀를 선택한 자신에 만족감을 느낀다. 안나는 래리야말로 자신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사랑이 언젠가는 자신을 충족시켜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충족될 수도 끝낼 수도 없는 사람들은 숙명적으로 이 사람과 저 사람 사이를 방황한다.           



     

#4. hello. stranger “아름답게 왜곡된 모습을 진실한 모습이라 믿는다” 

             

  안나의 사진 전시회에서 안나와 래리, 앨리스와 댄이 서로 만난다. 래리와 앨리스는 댄과 안나 사이에 감정이 있음을 눈치챈다. 앨리스는 자신의 사진 앞에서 래리에게 이야기한다. 

  “전부 거짓말이죠. 남의 슬픔을 너무 아름답게 찍었어요.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슬프고 외로워요. 근데 사진은 세상을 아름답게 왜곡시키죠. 따라서 이 전시회는 사기극인데 우습게도 사람들은 거짓에 열광하죠” 

  사진과 사랑의 공통점이 있다면 비추는 사람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늘 그렇듯 아름답게 왜곡되어 보인다. 그리고 순진하게도, 우린 그 모습을 진실한 모습이라 믿는다.                   



#. closer “아름답기만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댄은 앨리스와, 안나는 래리와 같이 살고 있다. 댄은 앨리스에게 안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댄의 고백에 앨리스는 말없이 집을 떠난다. 한편 안나도 래리에게 댄과의 관계를 고백하고, 그는 그녀를 무서울 정도로 몰아붙인다. 한차례의 언쟁 끝에 결국 안나는 집을 나선다. 그러나 결국 안나는 다시 래리에게로 돌아가고, 댄은 다시 앨리스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앨리스는 그의 행동 속에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며 완전히 그의 곁을 떠난다. 자신의 진짜 이름인 ‘제인’으로.     

 래리는 인터넷채팅에서도 본인의 진짜 이름과 직업을 밝힌다. 그는 항상 진실을 원하고, 그것이 사랑이라 생각한다. 반면 앨리스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거짓을 말하면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나는 사랑보단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상대를 찾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이혼과 결혼을 반복하고 있다. 댄은 혼자됨을 견디지 못한다. 그는 쉽게 흔들리고, 쉽게 이별을 말하며 쉽게 이전의 사랑으로 되돌아간다. 끊임없이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어 한다. 이들은 사랑하는 순간에도 서로의 믿음을 쉽게 저버린다. 가끔은 잔인할 정도로 상대를 몰아붙이기도 하며 노골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상대를 잘 안다고 확신하지만,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지 혹은 상대에 대해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사랑하고 있는지 구별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네 사람은 사랑하고 있다. 시작된 이유도, 지속하는 방법도, 끝내는 이유도 다르지만. 때로는 사랑이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와의 운명적 만남을 그린다. 그 상대는 완벽하진 않아도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며 그런 상대를 찾기만 한다면 그와 함께 서로에게 충실하고 진실하게 사랑해나갈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사랑이야말로 진실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단지 사랑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그 유난히도 두꺼운 포장지를 벗겨내고 나서야 비로소 온갖 상처와 오해와 거짓이 점철된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아름답고 이상적인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만큼 희귀한 감정은 없을 것이기에. 만약 한없이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면, 그건 사랑일 리 없다. 










#영화비평 #영화리뷰 #영화후기 #영화클로저 #클로저 #클로저리뷰 #클로저후기 #클로저비평 #주드로 #나탈리포트만 #영화클로저후기

이전 12화 어떤 사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