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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Jun 23. 2023

사랑한단 말밖에 할 수 없잖아!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비평문

사랑한단 말밖에 할 수 없잖아!     


     





  ‘청춘’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 청춘이란 말은 생각보다 야박해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라는, 다소 치사한 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를 본 사람이라면, ‘청춘’에 다른 정의를 붙일 수도 있겠다. ‘좋아하는 것에 전력을 다하는 모든 상태.’라고 말이다. 물론, <썸머 필름을 타고!>의 주인공은 모두 그야말로 ‘청춘’에 부합하는 고등학생들이다. 그러나, 영화를 본 모두는 인정할 것이다. 그들이 영화 내내 반짝거리는 기운을 내뿜는 건 비단 그들이 그야말로 ‘청춘’이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게 있고 그것에 전력을 다해 뛰어들기 때문이라는 걸.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기 때문에 그들은 비로소 청춘이라는 걸.                                                                                                                                 


         



  사무라이 영화를 사랑하는 맨발은 영화 동아리 부원으로 언젠가 사무라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동아리 부원 카린의 하이틴 로맨스 코미디 영화 시나리오에 밀려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된다. 이에 친구인 킥보드와 블루하와이가 동아리와 상관없이 따로 영화를 제작하자고 하지만, 맨발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 「무사의 청춘」의 주인공인 이노타로 역에 적합한 배우가 없다며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맨발은 사무라이 영화제를 관람하러 갔다가 자신이 그린 이노타로 역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린타로. 맨발은 절대 영화를 찍을 수 없다는 린타로를 설득해 주인공으로 캐스팅한다. 그리고 고등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노안에 대사 전달력이 뛰어난 대디보이를 그 상대역으로, 화려한 조명을 치렁치렁 단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오구리를 조명 감독으로, 야구 경기의 소리만 듣고도 어느 선수가 공을 던진 것인지 알아맞히는 야구부 볼 보이 코마다와 마스야마를 음향 감독으로 데려와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영화를 찍던 중 아이들은 주인공 이노타로 역의 린타로가 사실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지만, 청춘이란 유연한 것. 영화 촬영은 계속 진행된다. 맨발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고민하기도 하고, 린타로가 들려준 미래의 이야기에 심란해하기도 하지만 끝내 영화는 완성된다. 그리고 축제 날 카린의 영화와 함께 맨발이 감독한 영화가 상영된다.






  <무사의 청춘>을 완성하기 위해 돌진하는 이 영화는 때로 어떤 부분에 대한 설명은 천연덕스럽게 넘어가곤 한다. 이를테면 맨발, 킥보드, 블루하와이는 왜 서로를 그렇게 부르는 것인지. 각자 영화부, 천문부, 검도부로 동아리도 다른 이들은 어떻게 친해진 것인지. 대디보이, 오구리, 코마다, 마스야마는 왜 맨발의 설득에 넘어가 영화 작업에 동참하게 된 것인지. 영화는 자질구레한 설명은 가뿐하게 뛰어넘고 대신 이들이 열심히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유란 하나뿐이니까. 좋아하니까. 그것뿐이다.


  아지트에서 사무라이 영화를 보는 맨발, 킥보드, 블루하와이의 표정을 보면 맨발과 블루하와이는 영화에 집중하는 반면 킥보드는 하품을 하며 지루해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영화가 더 좋냐는 맨발의 물음에 킥보드가 대답하지 못하자 블루하와이는 이렇게 말한다.


“킥보드는 굳이 따지자면 사무라이 영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우리랑 함께 있는 걸 좋아하는 거야.”

이유는 다르지만, 이들은 저마다의 좋아함으로 하나의 영화 안에서 만났다. 시대극 오타쿠인 맨발은 사무라이가 좋아서, 영화가 좋아서. sf 오타쿠인 킥보드는 맨발과 블루하와이와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 맨발의 시나리오가 좋아서. 로맨스 장르를 좋아하는 블루하와이도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 미래에서 온 린타로는 맨발의 영화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타임 패러독스를 두려워하면서도 맨발의 영화에 참여한다.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이 사라지는 미래 같은 건 끔찍하니까. 좋아하는 마음은 어떤 두려움을 앞지르고 달려나가기도 한다.      

           

 좋아하는 게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무언갈 좋아하는 사람을 너무나 쉽게 알아챌 수 있는 법이므로 맨발은 다른 스텝을 섭외할 때 그들 각자의 능력을 정확히 짚어낸다. 공 소리만 듣고도 어떤 선수인지 알아맞히는 예민한 청력이라거나 자전거에 붙인 예술적인 조명이라거나 훌륭한 대사전달력이라거나. 크게 인정받지 못했던 나의 ‘좋아함’을 누군가 발견해주었을 때의 기쁨을, 너의 그 ‘좋아함’으로 나를 도와달라는 달콤한 제안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덧붙이자면, 사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처음엔 삐거덕거리던 <무사의 청춘>팀은 영화를 완성해나갈수록 점점 정말 하나의 팀이 되어간다.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있던 좋아하는 마음은 맨발의 영화 앞에서 한순간 똘똘 뭉쳐 자라난다.          

                   

                

                                     

          

 린타로에게서 미래엔 영화가 사라진다는 말을 들은 맨발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고민한다는 이유로 촬영을 피한다. 팀원 모두의 마음이 술렁일 때 바닷가 앞에 앉아 있는 맨발을 발견한 린타로는 자신을 피해 달리는 맨발을 쫓아 뛴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영화가 사라지는 미래를 견딜 수 없었던 맨발은 피하고 싶었던 거다. 결국엔 사라지고 마는 무용함을 사랑하는 자신을. 그래서 맨발은 어차피 사라질 거 무슨 의미가 있냐고 소리 지르며 달린다. 이미 명작은 널렸는데, 어차피 사라지고 말 이것을 내가 굳이 더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너무 좋아해서, 그게 사라질 바에야 차라리 도망치고 싶은 맨발의 마음을 붙잡은 건 다름 아닌 린타로의 당신의 영화가 나의 인생을 바꿨다는 한 마디이다. 자신 또한 어릴 때 본 영화 하나로 인생이 바뀌었으므로, 영화 한 편으로 그 세계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그 영화를 본 감동을 이어 미래로 연결하고 싶었으므로. 린타로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맨발은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간다. 



                                                   

                

  상영을 앞두고 영화를 편집하던 맨발은 마찬가지로 부실에서 편집하던 카린과 함께 카린이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를 감상한다. 카린이 찍는 영화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맨발이었지만, 영화의 라스트 씬에서 맨발은 카린과 함께 눈물을 흘린다.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도 아름다워.”

“마음을 전하지 않는 게 나을까?”

“내 영화였다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아름답지 않아도?” 


어느새 린타로를 좋아하게 된 맨발은 영화의 내용을 빌미로 카린에게 묻지만, 카린은 대답한다. “응. 승부 하지 않는 주인공은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영화를 상영하지 않고 없앨 거라는 맨발에게 카린은 말한다. “승부해보자.”


카린의 권유로 영화부와 함께 영화를 상영하게 된 맨발은 강당에서 <맨발의 청춘>팀 모두와 함께 영화를 감상한다. 그렇게 영화가 마지막 장면에 다다를 때 맨발은 벌떡 일어서 달린다. 영화를 틀고 있는 학생에게 달려간 맨발은 말한다. 영화를 멈춰달라고. 결국, 이노타로와 네노스케(대디보이의 역할)가 서로를 죽이지 않는 결말을 찍은 맨발은 깨달은 것이다.      


사무라이 영화도 사랑 영화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건 제가 원했던 결말이 아닌 것 같아요.


사무라이 영화에서 주인공과 그 상대는 서로밖에 없다. 최고의 라이벌이 곧 최강의 적인 세계관에서 상대는 곧 주인공의 운명일 수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이건 또 다른 러브 스토리라고. 사랑한다는 대사만 가득한 카린의 영화를 안 좋아했던 맨발이지만 결국 맨발은 카린이 했던 말로 깨닫게 된 것이다. 정말 사랑한다면, 제대로 승부해야 한다는 걸. 사랑하기 때문에 더 확실히 칼끝을 겨눠야 한다는 걸. 좋아하니까, 물러설 수 없다는 걸.

영화를 멈추고 맨발은 즉석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찍는다. 이 순간은 그들이 영화를 찍던 그 어떤 순간보다도 가장 엉성하다. 장소도 바닷가가 아니라 학교의 강당이고, 시대를 고증하는 기모노 복장이 아니라 교복 차림이다. 칼이 없으니 빗자루를 들고 서로를 겨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느 순간보다도 진지하고 엄중하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영화의 모든 장면 중 가장 엉성하지만 가장 빛난다. 그러니까 사랑 앞에선 철저한 준비가 무력하다. 그저 계속 고민하고 내가 진짜 보고 싶은 라스트 씬을 그리는 것. 그리하여 어떤 정수에 다다른 순간엔 준비된 정도와 상관없이 그 어느 순간보다도 빛난다는 것.





   좋아하는 마음은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도 능숙할 수 있게 해준다. 카린의 영화에 특별 출연해 아름다운 연기를 선보인 블루하와이처럼. 좋아하는 마음은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다. 린타로가 미래에서 왔다는 걸 가장 먼저 눈치채고 린타로에 대한 맨발의 마음을 맨발보다 먼저 알아챈 sf 오타쿠 킥보드처럼. 좋아하는 마음은 사람을 용감하게 만든다. 미래에 없어질 영화더라도 절대 타협할 수 없이 제대로 만들어야만 했기에 상영 중에 영화를 멈추고 즉석에서 결말을 찍은 맨발처럼.


  청춘의 미덕은 아름답지 않더라도 승부할 것. 으스러지더라도 돌진할 것. 그러니 사랑하는 게 있다면 겁내지 말고 뛰어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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