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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Jul 21. 2023

결국 사랑이 이기는 법이야.

영화 <브라이언 앤 찰스> 비평문

결국 사랑이 이기는 법이야.


레미





  삶은 흔히 전쟁에 비유되곤 한다. 언제 적을 마주칠지 모르는 긴장에 시달리고 기약 없는 희망을 쫒으며 멈출 수 없는 달리기를 하는 모든 인생은 저마다 치열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 그 전시 상황과 물리적으로 유사한 조건에 사는 한 남자가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의 장르는 코미디이다. 대놓고 엉터리 같은 설정과 전개는 동화와 영화 중간 쯤의 감각을 만들고 더욱 난처해지는 그의 상황에 몰입하게 한다. 그리고 결말에 이렇게 외친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는 이긴다! 사랑함으로써. 


  영화는 누군가가 브라이언을 인터뷰 하는 시점으로 시작되고 끝이 난다. 이 과정을 따라가면 나, 너, 우리 그리고 세상으로 점차 확장되는 사랑을 볼 수 있다. 인터뷰어의 시각은 곧 관객의 시야가 되고 브라이언의 일방적 대화를 통해 그의 내면을 본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그의 태도 변화를 목격하며 사랑이 확장되는 과정을 확인한다. 변명하듯 삶을 소개하는 영화 초반, 찰스의 등장으로 급격한 변화가 생기는 영화 중반, 찰스와 브라이언 자신을 받아들이고 마주하는 영화 후반으로 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는 분투하는 ‘나(브라이언)’가 있다. 





1.     아무도 없는 나만의 벙커


  브라이언은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 혼자 사는 남자다. 외딴 집에 살며 폐가전/가구로 무언가 만들어내는 것이 삶의 전부인 그는 이웃의 조립이나 수리를 도우며 살아간다. 지나칠 정도로 해맑은 영혼을 가진 브라이언은 발명이랍시고 이상한 물체를 만들어내 사고를 치거나 혼잣말을 하며 자신의 외로움과 절망감을 달랜다. 비행물체를 만들다 불을 내고, 쓸모 없는 회전 칫솔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무시 당해도 괜찮다. “다들 나를 그렇게 보니까요. 매번 발명이 성공하는 건 아니에요.”


  주거공간 옆에 딸린 그의 작은 작업실은 마치 벙커를 연상케 한다. 온갖 잡동사니가 즐비하고 해체와 연결을 돕는 작업대가 마련되어있다. 브라이언은 주로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의 삶은 멈춰버릴 것만 같아서. 

  브라이언 혼자서만 존재하는 삶의 모습은 그가 타인에게 습관적으로 지어 보이는 머쓱한 웃음만큼이나 자신 없고 고립되어 있다. 혼자서 다트 게임을 하며 이렇게 하면 언제나 승자가 될 수 있어 좋다는 말,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어서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말 등은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설레는 그의 모습과 대비된다. 그럼에도 그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은 자신을 마주할 용기와 관계 맺는 일에서 발생하는 두려움에 대응할 품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성장은 학습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사람마다 가진 특성과 처한 환경, 겪는 사건이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이라고 부르는 삶의 모든 일들을 겪어내기 위해서 인간은 매일 분투한다. 그렇게 세상과 나를 견딜 품을 키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는 일이 고되고 두려워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는 방법으로 상처를 피하고 안정감을 얻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브라이언은 그런 사람이다. 넘치는 호기심과 엉뚱함을 이해 받기란 어렵고, 그런 세상에 자신을 소개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그는 안전지대를 만들고 그 속에서 존재한다. 아무도 없기 때문에 아무도 무어라 하지 못 하는 자신의 집에서 고독한 안전에 기댄다. 


  오늘은 그가 AI 로봇에 영감을 받은 모양이다. 브라이언은 반복되는 실패 따윈 쉽게 잊는다. 혼자만 아는 실패를 들킬 일은 없으니까. 이번에도 터무니 없는 상상일 것이란 예감이 들지만 굴하지 않는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내려친 번개처럼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브라이언이 AI 로봇을 만든 것이다. 사람과 대화하고 움직일 수 있는 진짜 로봇. 


  “너는 찰스야.” - “나는 찰스야.”

  “내 이름 알아?” - “당신은 브라이언 입니다.”

  “만나서 반가워.” - “만나서 반가워,”







2.     넌 내가 만들었어. 그럼 내 말을 따라야지


  “Hi, My name is Charles.”


  드럼 세탁기로 이루어진 몸통에 미용 두상 마네킹의 얼굴을 한 로봇, 그것이 찰스다. 찰스는 브라이언에게 커다란 기쁨이다. 브라이언이 일궈낸 최초의 성공으로 그의 친구이기도 가족이기도 한 존재가 된다. 찰스의 등장은 평면적이었던 브라이언의 삶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브라이언의 혼잣말은 찰스와의 대화로 채워지고 혼자서 던지던 다트는 진정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된다. 찰스는 똑똑하다. 브라이언의 말과 행동을 빠르게 학습하고 이해한다. 그렇게 찰스는 브라이언과 춤추고 노래하며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된다.    



  그러나 찰스가 너무 똑똑한 탓이었을까. 찰스는 자신을 숨기는 브라이언이 이해되지 않는다. 찰스는 자신이 만들어진 이 집 밖의 세상이 궁금하다. 탄생부터 기이한 이 로봇은 영화의 문법에 따라 곧 인격 형성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이는 곧 브라이언과 찰스의 갈등, 나아가 브라이언의 내적 갈등으로 번진다. 


  “호놀룰루가 뭐야.”

  “자꾸 말대꾸 하지 마.”

  “호놀룰루에 가고 싶어.”

  “말대꾸 하지 말라고 했지. 너는 내가 만들었어.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하루 종일 집에서 브라이언을 기다리는 것이 전부인 찰스는 우연히 TV 속 호놀룰루를 보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물어도 브라이언은 바깥 세상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브라이언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찰스를 발견하는 날, 찰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특히나 자신을 괴롭히고 마을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에디와 그의 가족이 찰스를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앞이 훤하다. 따라서 브라이언은 찰스를 숨겨야 한다. 그게 안전하다. 브라이언은 찰스를 빼앗길 수 없다.


  찰스의 등장으로 브라이언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상상만 했던 자신의 도전의식과 호기심이 AI 로봇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에 찰스는 브라이언의 삶에 대한 욕구 자체를 의미하는 존재이다. 성공을 통한 만족을 느끼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브라이언은 이 충돌 속에서 점차 안정감을 잃어버리고, 그와 동시에 찰스의 안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고 보수적인 마을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찰스가 이 세상에 존재하므로 이제 그는 새로운 차원의 사랑을 배워야만 한다. 찰스는 성공한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물인 찰스를 사랑한다.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을 살갑게 대하는 헤이즐을 사랑한다. 사랑하면 소중해지고, 소중한 것은 지켜야 한다. 



  브라이언은 헤이즐을 좋아한다. 헤이즐도 브라이언이 궁금하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브라이언의 이야기를 먼저 물어봐주는 헤이즐과의 관계는 곧 소중한 것이 된다. 헤이즐은 찰스의 존재를 이해하고 브라이언과 같은 시선에서 찰스를 바라본다. 헤이즐과 서로의 집을 오가며 대화다운 대화를 이어가는 브라이언은 기쁨과 동시에 불안을 느낀다. 아주 작은 신호에도 그와 멀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소중한 관계’를 지키고자 하는 브라이언을 볼 수 있다. 

  자꾸만 변화하는 자신을 아직 밖으로 내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동시에 애착을 가짐으로써 자신과 찰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서 브라이언과 찰스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브라이언의 불안이 현실이 되는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찰스를 매개로 헤이즐과 브라이언은 가까워지고 두 사람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3.     So happy together.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에디 가족에게 찰스를 들켜버린 브라이언은 곧장 찰스를 찾으러 간다. 마을의 골칫거리이자 악당을 자처하는 에디 가족은 마트에서 외상을 빙자한 무상 갈취를 일삼고, 제 눈에 만만한 브라이언에게 협박과 손지검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찰스가 ‘발각’ 되어버렸다. 그토록 아끼는 찰스가 에디의 집에서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브라이언은 늘 그랬던 것처럼 에디의 말을 거역하지 못 한다. 새끼 코끼리가 자신을 옭아매던 쇠사슬의 공포를 잊지 못하고 자라, 성체가 되어서도 이제는 끊을 수 있는 그 사슬에 여전히 묶여 있는 것처럼 브라이언은 에디의 위협에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찰스가 조롱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발길을 돌렸다. 

  마을의 불한당인 에디 가족은 인간이 사랑을 학습하는 과정에 영향을 주는 환경 요소를 의미한다. 무작위의 세상에는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부의 압력이 존재할 때가 있다. 이에 대처하고 나아가고 계속해서 사랑하기 위해 싸우는 인생은 그런 의미에서 전쟁과 같다. 이때, 브라이언은 찰스가 짓밟히는 모습을 보고 비약적으로 용감해지거나 획기적인 영웅이 되지 않는다. 다만, 포기할 수 없는 존재를 생각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안을 찾아 실행한다. 곧 사랑으로 분투한다. 


  “브라이언, 구해 줘. 브라이언.”


  찰스의 모습과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브라이언은찰스를 구하고 에디를 물리치기로 다짐한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마을 축제 모닥불에서 찰스를 태우겠다고 선포한 에디 가족을 막아야 한다. 



  에디처럼 주먹질을 하고 폭언을 내뱉는 방식으로 무차별적인 폭행의 장이 벌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브라이언은 자신의 방식대로 에디를 응징한다. 다치지 않을 정도, 그러나 분명히 치명적인 공격이 될 수 있는 발명품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곳에서 에디를 향해 발사한다. 에디는 고꾸라지고 마을 사람들의 참아왔던 원성을 터뜨리며 브라이언과 연대한다. 브라이언은 승리한다. 찰스를 불길에서 구하고 이웃들의 연대를 이끌어내고 헤이즐과 당당히 손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브라이언과 찰스는 따로 또 같이 존재할 때 완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브라이언은 찰스의 여행을 준비하고 이에 대한 인터뷰를 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러한 결말은 그럼에도 사랑으로 나아가는 인간을 보여준다.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도 변덕스럽고, 타자를 사랑하고 지키는 일은 아슬아슬하고 불안하지만 사랑은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전쟁 같은 삶을 살아내는 생존방식이다. 브라이언은 나에서 찰스로, 헤이즐과 세상으로 관계를 넓히며 사랑의 기능을 증명한다. 사랑이 여러 개가 되면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가 되는 힘이 생기는데 그것으로 에디를 저지하고 세상에 나를 내보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실제적인 가능성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하지만 ‘나와 타자에 대한 본질적 사랑의 이해’라는 주제를 다루는 순간부터 그러한 설정들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엉성하고 답답한 브라이언의 모습이 곧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힘든 모든 이들을 대변하며 그 외로움 속에서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와의 갈등은 순탄하지 않은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내 존재의 안위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무작위 위협에 맞서 나만의 방식으로 상대를 무찌르고, 세상을 설득하고, 다음 지점을 찾는 것은 결국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찰스는 브라이언의 한 부분을 상징하는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기대를 의미한다. 까다로운 두 친구, 불신과 기대를 모른 채 하지 않았을 때 나는 나를 이길 수 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 이렇게 말하는 찰스를 생각해보라.


이해와 배려, 이타적인 모든 행위는 지게 되어있어요. 

돈과 권력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부조리한 매커니즘은 이미 지나치게 체계적이고 강력해요.

이것들로부터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그러나 계속 해보는 겁니다. 지금이 아닌 것 같으면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해보는 거예요.

사랑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이기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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