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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Aug 19. 2023

사랑으로 그린 아름답지 않은 풍경들 3.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비평문

사랑으로 그린 아름답지 않은 풍경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홍자





  마츠코는 사랑을 너무 간절히 바랐기에 사랑을 신처럼 믿으며 그것만을 찾아서 집을 떠났다. 하지만 그 간절함이 마츠코의 길을 밝혀주긴커녕 오히려 그녀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택한 길들이 모두 그런 식의 결말을 맞이할 순 없었던 거다. 

                           


 마츠코가 사랑을 찾아 헤매며 만났던 사람들은 다양했다. 그녀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면서 그녀를 때리는 작가 지망생, 거짓된 말로 그녀의 몸을 취하는 유부남, 그녀를 이용해 돈을 벌고선 바람을 피우는 사기꾼, 시골 마을의 이발사, 그리고 야쿠자까지. 이들은 그녀를 배신하고 짓밟고 이용했지만, 그녀가 찾는 사랑을 주진 않았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마츠코는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그 사랑은 항상 아픈 동생의 몫이었고, 이러한 사랑의 결핍은 그녀가 사랑에 집착하게 만듦과 동시에 사랑을 오해하게 했으니까. 그렇게 그녀는 확고한 믿음, 거짓된 사랑, 번번한 배신, 죽음으로 이루어진 도돌이표에 빠져서 자신이 찾는 것에서 착실히 멀어져 간다. 과거와 미래를 알면서도 현재를 관망하면서, 본인 자신도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깨달았으면서 말이다. 사실, 우리 안에는 모든 것을 망치고자 하는 어린아이가 숨어 있어서 나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확실하게 망가트리고 부셔버리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망치고 있음을 알면서도 착실하게 고통으로 내모는 데서 오는 기이한 안도감을 느끼면서, 본인 또한 사랑을 찾을수록 본인의 삶과 본인 자체가 망가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더 망가트리고 무너트리고 좌절해가면서 그렇게.              

        


  모든 손은 그들이 놓는다. 마치 마츠코가 맞잡고 있다고 생각했던 손은 그녀 혼자만 붙들고 있었던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에서 끊음은 마츠코의 몫이 아니었다. 삶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츠코는 배신을 당할 때마다 이번에야말로 ‘인생이 끝났다’라고 생각했지만 번번이 살아남았고, 그때마다 조금씩 더 고통 속으로 내몰렸지만 그래도 그녀의 인생은 이어졌다. 그녀는 아프고 또 아프면서도, 원하던 삶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가 살아야겠다고, 사랑을 좇는 삶이 아니라 진실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그녀의 삶은 끝났다. 이것도 그녀가 놓은 것이 아니었다. 여기까지가 마츠코의 일생, 마츠코가 ‘혐오스러운’ 마츠코로 불리게 된 그녀의 일생이다. 한심한 사람이 한심한 선택만 하다가 한심하게 죽었다. 그녀의 삶은 효율도 없고, 이득도 없고, 성과도 없으니 한심한 인생이라 말할 수 있다. 어쩌면 그녀가 스스로 벽에 적은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글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평생 사랑을 좇아 헤맸던 그 길에 사랑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자각하지 못해도 사랑받았고, 흉측한 모양이긴 해도 분명 그녀는 사랑을 줬다. 아마 일부는 그녀가 했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아프기만 하고, 자신을 절벽으로 몰아넣는 듯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며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사랑은 사랑일 수도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에도 자격과 기준을 부여한다면 간절히 사랑이 필요한 이들, 절박하고 외로운 자들은 평생 사랑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만다. 그러니 비록 마츠코의 사랑이 흉측하더라도 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엔 분명 사랑이 있었다고. 



  그렇다면 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그녀가 이토록 집착하게 만들고, 삶을 송두리째 갖다 바치게 했을까. 그녀만이 아니라, 우리는 왜 주위의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널렸음에도 사랑을 원하는 걸까. 사랑은 어떻게 사람들이 사는 원동력이자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왜 우리 인간의 역사에서 사랑은 죽음과 함께 논쟁의 중심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우린 확증 없는 추정과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심지어 미지의 것을 간신히 앎의 세계로 가져다 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 다시 미지의 세계로 돌아갈지 확신하지도 못하며, 세상에 얼마만큼의 미지의 것들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삶은 미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의문으로 가득 찬 이 미궁 속에 태어난 순간, 우리가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미노타우로스처럼 죽거나 테세우스처럼 사랑하거나1). 그렇게 우린 양손에 죽음과 사랑을 쥐고 태어난 이들이기에, 죽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면 사랑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니체는 말한다. 우린 삶이 아닌 사랑에 익숙한 이들이라고. 결국, 우린 사랑 때문에 자멸한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운명이다. 


  사람들은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를 갖지 못할 것이 자명해지면 그 박탈감을 지우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을 취한다. 하나는 그것의 가치를 땅에 처박아놓고 발로 짓밟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 높이 올림으로써 그것을 선망하고 마치 신처럼 떠받드는 것이다. 우린 다른 이의 삶이 자신의 삶보다 나아 보이면 시기와 질투를 도덕으로 포장해서 그 삶을 어떻게든 짓밟으려 하거나 그 삶을 마치 자신이 절대 닿지 못할 어딘가로 놓고선 자신의 삶을 비관한다. 반면 자신의 삶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금세 한심하게 쳐다본다. 우린 이렇게 쉬이 다른 삶의 가치를 평가한다. 이 기준은 모두 이들이 세상에서 무엇을 ‘받았는지’에 맞춰져 있고, 그들이 세상에 무엇을 ‘주었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언제부터 사람의 가치와 그 삶이 효율과 이득과 성과로만 값을 매기게 되었는지 역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마츠코의 인생은 한심하고 하찮고 미련하며 쓸모없어서 혐오스럽다. 비록 그녀가 보인 행동이, 항상 배신당해도 사람과 사랑을 끝까지 믿었던 그 방식이, 인간이 신에게 바라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도.     


  착실하게 자신을 불행으로 내모는 것도, 사랑을 뒤로하고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도, 당황하면 일을 더 그르치는 것도, 항상 나쁜 패를 뒤집고 잘못된 길에 들어서는 것도, 항상 배신당했으면서 거기서 배우지 못하고 사람과 사랑에 휘둘리는 것도, 모두 한심하고 미련해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결국 인간이 인간이기에 하는, 인간다운 행동들이다. 안다고 해서 모든 걸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 항상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그것 또한 인간이 아니다. 그런 인간이기에, 지금의 인류는 항상 좋은 선택과 옳은 방향으로만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지금 말하는 진보니 발전이니 하는 것들도 전부 그저 돌이 굴러가는 걸 보고 붙인 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지나온 길은 개별적 선택과 후회, 과오, 반성, 그런 것들의 총합으로서 구성되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인간이 바보 같고 미련하고 한심해 보일지라도, 지금의 인류가 바보 같고 미련하고 한심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바로 우리 존재의 특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서로를 혐오하기 쉬운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적 인간으로서 종으로서의 인류를, 그리고 총체적 인류로서 개별적 인간을 좀 더 사랑해 나가야 한다. 



1)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괴물 중 하나인 미노타우로스는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황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미노스왕은 미노타우로스를 절대 나올수 없는 미궁 속에 가두고선 9년에 한 번씩 인신공물을 바쳤다. 테세우스는자신을 사랑한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가 준 명주실을 이용해서 미궁으로 들어간 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나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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