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리멘탈> 비평문
왜 어떤 사랑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만들고 또 어떤 사랑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까. 왜 어떤 사랑은 전혀 의심받지 않는데 어떤 사랑은 도무지 이해 받지 못할까.
영화 <엘리멘탈>은 다양한 ‘어떤 사랑’들을 물, 불, 흙, 공기라는 4가지 원소들이 살고 있는 ‘엘리먼트 시티’라는 세계를 배경으로 그려낸다. 주인공인 앰버의 가족들은 그곳에서 ‘파이어플레이스’라는 가게를 운영한다.
일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인 ‘레드 닷 세일’ 날, 앰버가 화를 참지 못하고 지하실에서 불을 뿜어내는 바람에 노후된 파이프관이 터지면서 지하실에 물이 들어차고, 시청 감독관인 웨이드가 그곳으로 빨려 들어온다. 예정에 없던 점검으로 폐업 위기에 처한 ‘파이어플레이스’를 지키기 위해 앰버는 웨이드를 따라간다.
앰버가 웨이드의 상관을 만나게 된 곳은 다름아닌 에어볼 경기장. 부진하던 선수 러츠에게 야유가 쏟아지자 웨이드는 앞장서 “사랑해, 러츠!”를 연호하고, 러츠는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 그 덕에 성공적인 경기를 보게 된 웨이드의 상관은 앰버와 웨이드에게 최근 엘리먼트 시티에서 일어나고 있는 누수를 해결하면 파이어플레이스의 폐업을 없던 일로 하겠다고 약속한다. 앰버와 웨이드는 이를 위해 함께 일하다가 곧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다른 원소끼리 사랑하는 것, 특히 상극인 물과 불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금기시되어왔기에, 그들은 손을 맞대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앰버의 불꽃이 웨이드를 증발시킬까 봐, 웨이드의 물결이 앰버를 꺼뜨릴까 봐. 하지만 둘의 손이 맞닿은 순간, 약간의 수증기가 발생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이상 반응이 없었고, 둘은 서로가 서로의 성질을 바꿔놓았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둘의 사랑은 순탄하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웨이드는 앰버의 재능을 알아보고 다른 미래를 제안하지만 앰버는 부모를 위해 원치 않는 가게를 물려받겠다고 말한다. 둘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은 깊어간다. 그러던 중, 누수를 막기 위해 설치해둔 둑이 터지면서 파이어플레이스가 완전히 물에 잠기고, 앰버는 모든 것을 잃을 뻔한 위기 끝에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게 된다.
왜 어떤 사랑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만들고 또 어떤 사랑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외치는 사랑한다는 말이 절망했던 러츠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앰버의 숨통을 조여왔던 이유는 뭘까.
사랑은 아주 힘이 세다. 사랑만큼이나 다른 감정에 쉽게, 또 많이 영향을 미치는 감정은 없을 거다. 어떤 사랑은 용기로, 어떤 사랑은 두려움으로 모습을 바꾸고, 우리는 자주 영문을 모른 채로 거기에 이끌려간다. 이유를 붙이자면 끝도 없이 거창해지겠지만, 지금은 그냥 원래 사랑이라는 건 그런 거라고만 말하고 싶다.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만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게 사랑이니까.
왜 어떤 사랑은 전혀 의심받지 않는데 어떤 사랑은 도무지 이해 받지 못할까.
앰버와 웨이드가 서로를 만나도 되는지 수십 번을 고민하는 동안, 영화 속에는 수많은 연인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처럼 두려워하고 눈치를 살펴야 하는 연인은 어디에도 없다.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앰버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시할 수 없었다. 불과 물은 상극이니까. 집안 대대로 그렇게 여겨 왔으니까.
그런데,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빠져드는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라면 우리 모두 아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록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두 가문은 자식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화해를 약속한다. <엘리멘탈>에서 앰버와 웨이드는 아마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고, 두 집안은 앙숙이 아니라 친구가 될 거다.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다. 수도 없이 반복해온 사랑 이야기를 우리는 왜 아직도 반복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여전히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사랑은 존중 받지 못하고, 어떤 사랑은 손가락질 당한다. 누군가는 퀴어 영화를 보고 눈물지을 때 누군가는 동성애 반대를 외치고, 누군가가 길에 사는 생명을 위해 음식을 내어줄 때 누군가는 그를 해코지한다. 어떤 사랑들은 존재만으로 공격의 대상이 된다. 세상이 복잡하고 다양해질수록 혐오는 구체화되고 보편화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사랑 이야기를 해야 한다. 혐오를 혐오로 되돌려주지 않으면서 사랑을 지켜내는 방법은 더 지독하게, 질리도록, 지겹게 사랑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힘에 기대어 이겨낼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될 거라고 믿으면서.
이 글에 가득한 물음에 언젠가는 썩 마음에 드는 답을 할 수 있을까, 답을 해도 될까, 답이 있긴 할까. 우린 어떤 사랑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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