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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엔걸 스즈코를 꿈꾸는 여행

다들 가끔 백만엔걸 스즈코가 되고 싶잖아. 일단 저는 그래요.

by YOUNG

여행이 좋다. 여행이 좋은 점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낯선 장소에선 내게 부여되는 지위가 없다. 그저 '여행자' 정도. 어디로 걸을 지도, 무엇을 먹을지도 다 내게 달렸다. 평소에 먹고 싶은 대로 못 먹고 일방통행만 한다는 건 아닌데, 여행지의 낯섦은 설렘에 가깝다. 모르는 장소, 모르는 사람들이 안정감을 준다.

(참고;영화 <백만엔겔 스즈코>는 전과자가 된 스즈코가 출소 후 백만엔이 모이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강릉에 갔다. 이번 여행은 바다, 순두부 젤라또 보다 강릉의 온정이 담긴 작은 가게, 다정한 사람들이 더 좋았다.(바다, 순두부 젤라또도 좋았어요) 우연히 방문한 와인 가게 사장님은 주변 맛집을 소개하며 이곳에서 같이 먹어도 된다고 했고, 이 와인은 어디에서 왔고 어떤 맛이 나는지 매우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와인 한 잔에 긴 여정이 담겼다. 꼭 여행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바쁜 날이라면 살짝 길다고 느꼈을 사장님의 설명이 여행자에겐 너그럽고 유쾌한 추억으로 남는다.


두 시간 남짓 작은 와인 가게를 빌렸고, 여유로운 한낮의 시간이 지나갔다. 여행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강릉의 작은 가게와 동네 사잇길은 감상에 젖기 충분했고, 서점과 와인 가게 사장님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낭만가에 가까웠다. 그들이 어떤 서사를 가졌는지 알지 못하지만, 얇은 여행자의 시선은 차가운 세상에 온정을 느끼기에 매우 적합하다. 낭만을 떠올리는 것조차 스스로를 검열하는 요즘이다. 현실가가 될지라도 여행지에선 낭만을 찾을 수 있다. 낭만은 귀한 에너지가 된다. 여행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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