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존재] 규정할 수 없는 존재

존재

by 오 영택

4. 존재됨의 정체성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사람, 이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살면서 한 번씩 마주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나 지쳐서 쉬고 싶을 때 묻게 되는 질문이다. 이렇게 묵직하게 찾아오는 질문은 마음이 공허하거나 힘들 때 찾아온다. 굳이 힘들 때 찾아온 질문은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정체성에 대한 답변이 준비되어 있다면 혼란스러워지는 일은 줄어든다. 정체성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중심이 잡혀 있기에 흔들려도 쉽게 넘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오뚜기처럼 다시 중심을 되찾기 쉬워진다.


# 규정할 수 없는 존재

열정 페이를 강요하던 시대를 지나 워라밸 시대가 도래했다. 비록 업무환경과 조건으로 인해 모두가 워라밸을 누릴 수 없을지라도 워라밸을 알고 있고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광고나 SNS를 통한 확산으로 인한 자연스러움이다. 예전에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시간을 일하는 게 하나의 자랑이었다. 심지어는 인정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야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양상이 달라졌다. 주5일 출근이 확대됨에 따라 금요일을 기다리게 된 것처럼, 워라밸 문화가 퍼져나가면서 정시퇴근 후의 일상을 기다리게 됐다. 학창시절 점심시간에 급식실로 뛰어가는 학생시절처럼, 퇴근시간이 가까워오면 일을 마무리하고 짐을 정리하는 모습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이제는 야근보다는 정시퇴근, 아니 정상퇴근이 당연시되고 있는 추세이다.


정시퇴근이 보장되면서 자신만의 시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은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평일에도 약속을 잡는 것이 가능해졌다. 다른 활동을 위한 시간 할애도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퇴근 후 씻고 자면 일어나서 다시 출근하며 일주일을 버텼다면, 이제는 퇴근 후 다른 활동까지도 도전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독서모임을 찾아가기도 하고, 음악학원이나 운동을 배우기도 한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취미활동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피곤한 몸은 퇴근과 동시에 새로운 몸이 된다. 묶여 있는 시간과 달리 자신이 설계한 시간을 위해 기꺼이 움직이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모습과 퇴근 후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도 존재한다. 회사에서는 미숙한 신입사원일지라도 속한 모임에서는 프로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평소에는 과도한 긴장으로 내성적이던 사람도 자신만의 분야에서만큼은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한다. 분명 같은 사람임에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반전매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매일 보는 사람일지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좋은 측면의 다른 모습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SNS나 동네 주민들에게는 동물이나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여주기 위해 그저 도구화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회사에서는 성실하고 친절한 사람이지만 온라인에서는 악플러인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사회적 분란을 야기하는 특정 커뮤니티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평범한 학생처럼 생활했지만 알고 보니 성착취 영상을 만들고 유포하며 협박을 일삼았던 경우들도 있다. 주변 사람에게는 친절해서 성격 좋다고 알려졌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폭력적인 사람도 있다. 약자를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구축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남을 속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좋은 모습이든 나쁜 모습이든 모든 사람에게는 이면(裏面)이 존재한다. 누군가에게서는 반전매력처럼 보이기도 해서, 멋을 더해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반면 인면수심(人面獸心)인 사람도 존재한다.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마음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 말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실망을 넘어 배신감마저 들곤 한다. 때로는 소름끼치기도 한다. 나아가 다른 사람을 섣불리 믿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믿음마저 들게 만든다. 한 사람의 평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반전매력의 모습이나 평가를 뒤집는 모습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누군가를 겉모습만으로는 사람을 규정할 수 없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자주 보는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함부로 규정하거나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동시에, 누군가의 평가만으로 자신을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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