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그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실제로 평가와 경험에 의한 판단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왜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게 되는 걸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의 뇌가 불확실함을 좋아하지 않는 특성 때문이다. 불확실함을 해소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것, 먼저 들어온 정보들을 우선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한다. 분류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 멀리하고 싶은 사람, 배울 점이 많은 사람, 신뢰할 수 없는 사람 등 자신만의 기준으로 분류하면 그 사람에 대한 입장을 한결 수월하게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분류의 과정은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명 한 명 분류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대개 '첫인상'과 지금껏 경험하며 쌓여온 직관, 그리고 태도 등 보이는 모습들로 순식간에 결정된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평가받고, 판단받는다는 인식은 그리 내키지는 않지만 나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 효과적이기도 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생존 방식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를 활용할 수도 있다. 보고 듣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의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거나 가치 있는 존재로 평가받고 싶다면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존재됨은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좋은 사람이자 안전한 사람이라고 판단되기 위함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좋은 사람,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실수를 범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정욕구만큼 존재의 목마름을 해갈시켜주는 것이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완벽주의'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결과를 의식하느라 시작조차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느라 실행조차 못하거나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과정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 할 뿐만 아니라, 결과물이 없다고 치부될 뿐이다. 평가라는 수단이 목적 자체가 되어버린 순간, 완벽을 추구하게 된다. 완벽하면 확실히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 생각한 탓이다. 하지만 완벽함은 어디에도 없다. 완벽함은 누군가에게서 받는 평가에 달려 있지 않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갈 때, 무엇보다 자신이 그렇다고 여겨줄 때 완벽함이 완성되는 것이다.
평가가 목적이 되어버린 모습은 다른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어떤 도전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모습에서도 동일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이 없다. 평가받을 일도 없다. 평가받지 않으면 마음 상할 일도, 들 뜰 일도 없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겠다는 측면에서 완벽주의의 다른 모습이라 말할 수 있겠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평가와 판단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순간은 없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평가하는 게 사람이니까. 타인의 평가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을지언정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불확실한 평가를 피하려다 인생에 불확실성을 더해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평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이 그만큼 불확실한 존재라는 반증이다. 구분하고 파악하기 위해 기준을 세워 평가하는 것이다. '평가 받는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평가는 하나의 기준을 배워가는 수단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가는 중간과정에 불과하다. 평가를 통해 모호함을 파악할 수 있다. 동시에 자신만의 기준이 어떠한지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수많은 평가를 거치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기준'은 사람의 수만큼 많고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어느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되는 깨달음이다. 평가받는 게 피할 수 없는 거라면, 이것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평가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고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통제할 수 없지만, 평가 결과를 분석하고 개선여부는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평가 앞에서 떨기보다 평가를 통해 떨어버릴 것을 분류하는 게 훨씬 유익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