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 [존재] 매일 죽지만, 사랑받기 위한 존재

존재

by 오 영택

# 매일 죽는 존재

우리는 매일 죽음을 경험한다. 매일 잠에 드는 것은 죽음의 시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무의식의 영역이다. 의식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레 잠을 청한다. 당연히 내일이 있을거라 생각하듯 눈을 감는다.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내일도 일어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이렇게 매일 죽음을 경험하며 연습한다. 의식의 죽음 뿐만 아니라 몸의 세포들 역시 매일 죽는다. 그리고 다시 만들어져 유지한다. 피부세포는 시간당 3~4만 개가 죽고, 그 결과 매년 3.6kg의 피부 세포가 떨어져 나간다. 이 피부 세포가 쌓이면 허연 먼지가 되는 것이다. 창자세포는 2~3일에 한 번 바뀌고, 허파 세포는 2~3주에 한 번, 적혈구세포는 4개월에 한 번, 간 세포는 5개월에 한 번 바뀐다. 다시 말해, 몸의 모든 세포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100퍼센트 바뀐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생명이 있는 한 죽음이란 불가피한 숙명이다. 매일 죽음과 가까워진다. 회복력이 더뎌지는 이유이기도 한다. 밤새며 놀던 젊음의 체력은 추억으로 남는다. 금방 회복하던 체력은 어느 새부터인가 하루뿐만 아니라 길게는 일주일동안 피곤함을 느낄 만큼 떨어진다.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우고 유지할 수 있고, 의료 시술을 통해 피부 나이를 실제 나이보다 젊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이 드는 것은 막을 방법이 없다. 육체적 죽음에 대한 저항은 가능하지만, 본질적인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시간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영원하지만 사람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만 영원할 뿐이다.


매일 잠에 들고 다시 눈을 뜬다. 그리고 하루를 살아간다. 하루들이 쌓여 세월이 된다. 참 단순해 보이는 흐름이지만, 그 하루에도 많은 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어떤 날은 쳇바퀴 도는 듯한 하루이지만, 또 어떤 날은 평생 잊지 못할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지겹게 느껴지는 시간도 있지만 하루가 충만한 날들일 때도 있다. 빨리 지났으면 하는 하루가 있는 반면 "오늘만 같아라" 하는 날들도 있다. 24시간이라는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다른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런 다양한 날이 쌓여 인생을 형성한다. 체험을 넘어 경험이 되기도 하고, 어느 한 순간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지내온 하루들의 누적과 영향력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이다. 이와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잠에 들고 다시 일어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짧은 죽음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단절이 지속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무언가를 결심하고 움직이기에는 항상 내일보다는 오늘이 좋다. 매일 죽음과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은 해석만 가능하고 내일은 아직 사용할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


소포클레스가 한 말이다. 시간관리 명언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다. 그러나 잘 와닿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내일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문맥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는 뒤이어 이렇게 말했다.

단 하루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멸망시킬 수 있고 다시 소생시킬 수도 있다.

경험적으로 공감되는 말이다. 어떤 하루는 말 그대로 지옥 같고, 어떤 하루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이 다른 시간을 선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생물학적으로는 세포가 죽고 생성됨에 따라 몸을 유지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재생력이 줄어들면서 노화를 맞이한다. 약해지는 사실을 몸소 실감한다. 또한 의식적 죽음을 지나 내일이라는 시간을 맞이한다. 잠이 들어야 원활한 내일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짧은 죽음 통과해야 힘을 회복할 수 있다. 이처럼 매일 죽기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비록 반복적인 하루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시간을 만드는 것은 본인에게 달려 있다. 매년 해오던 새해다짐(year)이 아니라 새 해(day) 다짐을 해보면 어떨까.




# 사랑받기 위한 존재

우리는 잠과 세포의 죽음 외에도 죽음에 관한 소식들을 심심찮게 접한다. 이를 통해, 죽음이 산재해 있음을 알게 된다. 때로는 무뎌지기도 한다.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이 아니면 일상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때가 많다. 반면에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죽음들이 있다. 가족과 가까운 이의 죽음, 혹은 반려동물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마음이 답답해지고 공허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눈물이 쏟아진다. 있을 때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더 잘 해주지 못한 미안함, 못되게 했던 말들이 떠오르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죽음의 소식을 접한 순간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도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그런 날이면 눈물이 고이고 눈물을 훔치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이처럼 가까운 존재의 죽음에 대해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안함을 넘어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준 존재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더이상 사랑의 표현을 들을 수도 없고, 해줄 수도 없다는 사실, 그리고 볼 수조차 없다는 사실에 눈물이 흐른다.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눈물보다는, 받은 사랑의 기억이 눈물 흐르게 만든다.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다는 슬픔, 같은 시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더 이상 미워할 수조차 없다는 마음에 눈물이 샘솟다. 그 무엇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터져 나오는 눈물의 이유는 '사랑'에 있다. 한없이 사랑을 준 존재와 그 대상을 향한 마음이 '사랑의 기억'을 소환하는 것이다. 하염없는 눈물은 소환된 기억인 셈이다.


무엇보다 '사랑의 기억'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행동양식마저 바꾸게 만든다.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순간을 앞당기기도 한다. 흔히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스스로 사랑할 만한 가치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 놓여 있더라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재에 대해서는 안다.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진심에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사랑이 자신을 향한 냉소와 불신을 뚫는다. 냉소와 불신이 걷힌 자리에는 자신을 향한 웃음과 믿음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자신만을 향한 노려보던 시선과 생각에 틈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을 귀하게 여겨주는 대상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씩 발전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사랑을 받기만 하던 존재가 누군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존재로 변해가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때가 많다. 이는 자신감을 되찾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기꺼이 움직이게 만든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비밀이나 계획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얘기가 어떻게 와전될 지, 언제 배신할 지 모른다는 경험적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을 믿을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알지 못하기에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신뢰는 시간이 쌓이는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인격을 알아갈 때 형성된다. 머릿속 계산이 줄어들 때 얻는 자유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늘 조심스럽게 말을 선별하지 않아도 되고,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몸을 움추리지 않아도 된다. 그렇기에 누군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받아 본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신뢰를 누려본 사람만이 누군가를 믿어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준 대상의 죽음 앞에 눈물을 쏟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고 특별한 기억을 남긴 존재를 더는 볼 수 없다는 슬픔과 계속 재생하게 되는 '사랑의 기억'에 표현할 길이 없는 마음이 눈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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