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존재] 지금, 여기에 산다.

존재

by 오 영택

# 지금, 여기에 산다

우리는 시간을 보내며 살아간다. 흔히 시간 속에 살아간다고 말한다.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다"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시간은 영원하지만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시간은 유한한 시간들의 합보다 크다. 또한 수직선상에서도 무한은 유한을 포함하기에 받아들이기 쉽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예전에도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원한 시간의 일부분에 살고 있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역사가 반복된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을까? 시간은 연속적이지만 사람은 불연속적인 존재라는 게 하나의 이유라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 새로운 것 없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또한, 과거를 온전히 알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기록으로써의 역사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만 알 수 있기에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단지 참고만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변하지 않는다. 해석이 가능하기에 언제든지 참고할 수 있다. 역사를 통해서 옛 것을 익혀 추론하여 새 것을 익히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 가능하다. 만약 사람이 영원히 산다면, 실수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생생하게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역사를 참고해야만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는 이유는 과거의 사건들을 통해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훈을 얻지 못해 개선하지 못했기에 같은 역사를 반복할 뿐인 것이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아픈 경험과 기억에서 깨닫는 것 없이 그저 회상만 한다면, 같은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시간의 데자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붙잡을 수 없고, 미래는 상상하거나 예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붙잡아 앉힐 방법 없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 대해 후회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며 지내거나 다가올 미래에 안절부절하며 걱정 속에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냉정하다. 시계가 멈춰도 시간은 흐른다. 달력을 넘기지 않아도 시간은 한결같이 나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난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마주할 자세를 정해야 한다.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며 갇히는 게 아니라 그 지점에서 가치와 활용할 자신만의 도구들을 발굴하는 게 낫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주목하기보다 지금의 자신을 크게 바라보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주목하는 게 훨씬 유익하다. 미래의 두려움을 바라보면 준비해야 할 것들만 보이지만 지금의 자신을 바라보면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도구들이 보인다. 지금이라는 시간에서 과거와 미래를 향해 시선을 돌리기보다 과거와 미래로부터 지금을 향한 시선을 갖는 게 더 낫다.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과거의 시간은 가치가 달라지고 앞으로의 시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시간에는 지금이 있고 오늘에는 미래의 시간이 있다. 열매의 씨앗에 이미 그 열매가 있는 것처럼 지금, 여기에서의 결정이 맺을 열매의 품질과 맛을 좌우할 것이다. 존 러스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_존 러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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