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기록]

기록

by 오 영택

# 골격 형성

기록은 단순히 쓰는 작업이 아니다. 그저 높이 쌓기만 하는 수고가 아니다. 보여주기 위한 수고가 아니라 드러날 순간을 위한 꾸준한 투자이다. 기록은 아로새기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삶이 방향을 설정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기록을 통해 과거의 순간들을 단순히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들을 되살리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가능케 한다. 무엇보다 기록의 목적은 적립에 있지 않고, '정립(定立)'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로 서기 위해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록들만으로는 정립할 수 없다. 벽돌만 있다고 해서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정립하기 위해서는 상고(詳考)의 시간이 필요하다. 숙성시켜야 한다. 숙성은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되는 과정이 아니다. 기록은 읽히고, 재해석되고, 다시 쓰이며 깊어진다. 때로는 과거의 기록을 돌아보며, 스스로의 변화를 감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록이 단순한 적립이 아니라 정립의 과정이 되려면, 자신과의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 기록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남기는 노동이 아니다. 성장하기 위한 마중물과 같다. '마중물'이란 큰 흐름이나 변화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작은 첫걸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수고를 흐르려면 마중물 한 통을 먼저 붓고 나서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록 역시 처음에는 작고 미약한 순간들일 수 있지만, 그것이 쌓이면서 큰 의미와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또한, 기록한다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라 말할 수 있다. 무수히 많은 사건과 시간을 보냈음에도 선별하여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록을 통해 의미가 부여된 순간,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나열이 아니라 삶의 골격을 형성하는 것이 된다. 삶의 골밀도를 높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골밀도가 높다는 것은 단순히 많은 지식이나 경험을 축적하는 것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혜와 깊이를 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기록을 통해 우리는 지나온 시간들을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재조명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더 큰 인식의 구조를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기록된 모든 것은 '아전인수(我田引水)'가 될 수도 있는 우려가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과거를 왜곡하거나 기억을 편집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편향된 기록은 현재와 미래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 결국에는 자신을 정체시키는 족쇄가 되는 것이다. 반면, 올바른 기록은 단순한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성장과 변화를 촉진시키는 재료가 된다. 기록이 과거의 생각과 감정을 단순히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재조명하고 새롭게 바라보는 촉매제가 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기록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성장의 틀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기록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고, 때로는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삼으며, 삶의 골격을 형성해나가는 자료가 된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예전과 지금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대조하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록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면서 새롭게 표현하고 연결하며 정립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이처럼 기록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동시에, 나아갈 방향성을 설정하는 나침반이 된다. 단순히 과거를 되짚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순간의 감정과 결심이 기록되지 않으면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다면 다시금 결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자신의 방향성을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변명의 연속을 끊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분명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동일하지 않다. 같은 존재이지만 다르다. 과거의 자신에 대한 설명이 지금은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예전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리곤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초심을 잃어버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록은 자신의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통찰을 얻기 위한 자료이다.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읽기 위한 수단이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정립하기 위한 수고인 것이다. 기록을 통해 자신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면, 보다 명확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시작점이 된다. 나의 감정을 온전히 알고 인정할 때, 타인의 감정에도 보다 진실한 공감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고 항상 성실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습성을 갖고 있으며
어떤 반응을 보이는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야 하다.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랑을 사랑으로 느낄 수 없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정확히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
자신조차 모르면서 상대를 앍란 불가능한 일이다.

_ 니체, 「아침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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