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기록] 파악하기

기록

by 오 영택

# 파악하기

기록하는 것은 분명 수고스러운 작업이다. 그럼에도 계속 기록하고 수집할 만한 가치가 있다. 기록들은 자신을 객관화하는 유용한 자료가 될뿐만 아니라 자신을 알아가는 시작점이자 자산이기 때문이다. 영향을 미친 말이나 상황, 문구, 장면 등 다양할 것이다. 이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으로 남겨두면 된다. 글이든, 만화든, 영상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기록에서만 끝나면 안 된다. 자기만족에서 그치면 안 된다. 자신을 알아가는 게 기록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기록하면서 질문하며 생각들을 서술해야 한다. 공감하는 표현이 있다면,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는지 자문해보면 좋다. 한다. 또한, 마음이 위로를 받았다면 어떤 상황에서 들은 말이었고 어떻게 다가왔는지 자문해보면 좋다. 이외에도 받은 칭찬들에 대해서도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다. 단, 인사치레의 말이나 어색함을 채우기 위한 말이 아닌,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주는 칭찬만 해당한다. 이렇게 기록하는 수고는 무의식적인 반응을 의식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자문과 기록들이 쌓인 것들을 찬찬히 보면 자신의 성향과 감정의 프로세스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규정하는 표현들에 대해서도 살펴보면 좋다. 살면서 다양한 표현을 접하고 많은 얘기들을 듣게 된다.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책, 대화 등에서 많은 정보들을 접한다. 어쩌면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의 출처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듣고 접한 말들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아직 행동으로 발현되지 않았을 뿐 생각의 저변에 축적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접한 언어들과 표현들은 스스로를 제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수저 계급론'이 대표적이다. 우스갯소리로 비관적인 상황을 수저 계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어떤 특정 표현이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이런 부정적인 성격을 갖는 표현 외에도 칭찬에 갇히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착하다'라는 표현이 있다. '착하다'라는 말은 흔히 칭찬으로 여겨지곤 한다. 한 사람의 성품에 관한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런 특성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기에 재고해봐야 한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착함' 이라는 이미지에 가두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속박되는 것이다. 흔히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착한 아이 증후군은 부정적인 정서, 감정을 숨기고 타인의 말에 순응하면서 착한 아이가 되려고 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싶지 않아서, '착한 사람'으로 남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착하다'라는 평가는 행동에 대한 인정인데, 단순히 '착하다'라는 칭찬을 받기 위해 애쓰는 것은 순서가 올바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혈액형, MBTI, 재미로 보는 점, 별자리 운세 등 역시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지금은 MBTI가 대세이지만 자기소개를 하며 혈액형을 말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혈액형별 특성이 나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덕분에 그만큼 깨달음을 얻게 됐다. 경험을 얘기하자면, 나는 27살까지 A형으로 살아왔다. 그 이후부터는 A형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혈액형이 바뀌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혈액형은 조혈모세포 이식이나 돌연변이가 있지 않은 이상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뀌지 않는다. 아마 검사 중간에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군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에서 혈액형 검사를 했을 때는 분명 AB형이었다. 1급 판정을 받고 운전병으로 지원하여 입대를 했다. 그러나 척추측만증이 발견되어 귀가조치를 받게 됐다. 때문에 재판정을 받기 위해 다시 신체검사를 진행했는데, 이때는 A형이 나왔다. 둘의 결과가 달라서 다시 문의했으나 A형이 맞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얘기지만, 당시에는 나에게는 하나의 믿음이 깨진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AB형은 주로 '도라이'라는 특징으로 소개되곤 했다. 그래서 AB형의 특징을 보며, "그렇지, 나는 도라이 기질이 다분하지" 하며 틀을 깨고 사차원처럼 보이기 위해 도전했다. 낙심할 때면, "도라이니까" 라며 밀어붙이며 다독이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표현이 생각의 기준이었고 행동하는 동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A형이라니, 지금까지의 모습은 무엇인가 싶었다.


결국, 내가 받아들이고 싶었던 표현을 믿은 것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말이다. 나를 잘 나타내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 표현 안에서도 자유롭기도 했지만 동시에 제한하는 표현이었음을 깨달았다. 이처럼 혈액형 외에도 동일한 요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MBTI 검사도 마찬가지다. 많은 설문에 응답하면 그 결과들에 대해 분석해 성향을 알려준다. 이 결과에 따라 16개의 특성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특성에 불과하다. 전부를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제한하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은 듯한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나는 P라서 철저하지 못해", "나는 J라서 계획이 없는 것에 답답함을 느껴", "너 T야?" 등의 말들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성향 검사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에 대한 분석한 자료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일 뿐이다. 결코 그 성향이 온전한 자신이라 믿으면 안 된다. 우리를 잘 소개해주는 듯 하면서도 규정하고 있는 표현은 아닌지 고심해봐야 한다. 그게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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