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기록] 재정의

기록

by 오 영택

# 재정의

흔히 여행을 가서 사진 찍으며 이런 말을 한다. "남는 건 사진 뿐이야."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할 수 없고, 일정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더구나 같은 장소를 동일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남는 건 사진 뿐이야" 라는 말은 현실적이다. 우리는 지난 사진을 보며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사진을 보는 순간 기억이 소환되기 때문이다. 사진이 있기에 추억팔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진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추억팔이가 가능한 이유는 공통된 기억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까? 사진은 '특정한' 시간으로 안내하는 이정표와 같다. 당시의 모든 상황을 기억하지는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억나는 것은 여전히 존재한다. 당시의 감정, 느낌, 상황 등이 남아 있다. 향수(鄕愁)에 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사진만 남게 된다면, 과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을까.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기록이다. 사진이 과거를 잇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기록 역시 현재와 과거의 특정한 순간을 연결시킨다. 사진은 당시의 순간을 기록한 형태라 말할 수 있다. 사진에는 어떤 글도 없지만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특정한' 시간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록 역시 동일하다. 기록은 이미 지나온 시간에 대한 서술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흔적이기에 더욱 그렇다.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 있다. 이어져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둘 이상이 연결됨을 의미한다. 사람은 시간 속에 살아가기에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항상 연결되어 있다. 사건은 불연속적이지만 존재는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이 지금에도 유효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간을 벗어날 수 없다보니 우리는 '나이'를 상당히 많이 신경 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신경 쓰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바라봐 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일까. '나이'라는 표현에 갇혀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거나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려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이를 따지는 사회도,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어떤 메시지도 아니다.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관건이다. 나이는 단순히 살아온 시간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나이는 우리 삶에 새겨지는 흔적과도 같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가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기록하듯이, 우리의 경험과 기억 또한 축적되어 가는 것이다.


나이테는 단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기는 게 아니라, 나무가 겪은 환경과 성장의 과정이 반영된 결과다. 비가 많았던 해에는 넓고 선명한 나이테가 남고, 가뭄이 들었던 해에는 촘촘하고 얇은 나이테가 새겨진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그 흔적이 남고, 병충해나 상처를 입은 해에는 불규칙한 모양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모든 흔적이 모여 나무의 생애를 이루며 단단하고 거대한 줄기를 만든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때로는 풍요로운 시기가 찾아와 마음껏 성장할 수 있고, 때로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며 한 뼘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진과 기록은 우리 삶의 나이테와 같다. 사진이 특정한 순간을 기억나게 만드는 시각적인 흔적이라면, 기록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보존하는 '언어적 나이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흐려질 수 있지만, 사진과 기록은 그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다. 마치 나이테를 보면 나무가 지나온 계절과 환경을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의 기록 또한 우리가 지나온 길을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야' 라는 말은 단순히 이미지만 남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온 삶의 흔적을 바라보고, 시간 속에서 계속 이어져 왔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말로 표현한 문장이다. 나이테가 쌓일수록 나무가 더욱 단단해지듯이, 우리의 삶도 경험이 더해질수록 깊이를 더해간다. 나무가 살아온 시간을 나이테로 흔적을 남기듯, 우리는 살아온 흔적이 '나이'라는 말로 표현될 뿐이다. 우리는 나이테를 가진 나무처럼, 시간 속에서 우리의 태도를 새겨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우리의 '나이태'는 어떠했는지 돌아보면 어떨까. 나무는 주어진 환경에 따라 나이테가 새겨지지만, 사람은 어떤 태도를 가지며 살아갈 것인가에 따라 다른 나이태를 새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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