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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Jul 15. 2021

“혼자 서울다녀올게요”...넌‘장애아’잖아!!



게임을 좋아하던 큰 아들은 장래희망란에 항상 “게임 크리에이터”라고 적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게임중독’ 걱정만 앞섰다.


아이는 고1 때부터 ‘게임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고, 시작할 즈음만 해도 아이 게임방송의 ‘부끄러움은 나의 몫’으로, 나는 그저 아이가 무엇인가 ‘의미 있는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그러나 1여 년이 지나고 유튜브 구독자가 ‘5천 명’으로 훌쩍 뛰어넘어, ‘어쩌면 이것이 이 아이 자립에 ’ 자신감’으로 작동할 수 있다 ‘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방송을 녹화하고 편집하는 그 어려운 작업을 남들 10배의 노력으로 이뤄내는 ’ 지적장애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아이에 대한 성급한 평가에 ’ 미안함‘과 ’ 부끄러움‘도 느꼈다.     


’ 게임방송용 장비‘가 필요할 때마다 아이가 ’꼬박꼬박 모은 용돈‘에 나의 ’ 돈‘을 일부 합쳐 장비를 마련해주었고, ’ 5천 명 구독자‘달성 기념으로 나는 ’ 방송용 컴퓨터(매우고가다)‘를 구입해  축하파티를 열었다. 나도 신이 났다. 늘 주눅만 들어있던 아이가 ’ 자신감‘으로 차오르는 과정은 나에게도 ’ 무엇이든 재미있게 열심히 하면 된다 ‘라는 신념을 주어, 지금 나도 글을 쓴다.(글에 무지한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아들 덕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 서울‘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 게임 유튜버‘들과의 만남의 장소에 가야겠다고..     


“서울???”     


그 복잡하고 지하철도 십여 개의 노선이 있는 ’ 서울‘은 ’ 대구경북‘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그래도 부산까지 두 번 ’게임 박람회‘를 다녀온 경험은 있었지만, 그 역시 ’ 친구 따라 강남 다녀온 경우‘라 아이의 ’ 서울행‘의 허락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연차 내고 내가 데려갈까???”

“혼자서 가는 것은 안된다고 혼을 낼까???”     


고민하던 중 내 생각의 중심이 무엇인지 알았다. ’ 불안‘ 이였다.      


평소 ’ 네이버 지도보기‘, ’ 네이버 길 찾기‘ ’ 버스 타고 다녀보기‘ ’ 지하철 타보기‘ ,... 등등 수없이 연습했지만 서울은 '왠지' 다를것 같았다. 그리고 친구도 없고, 엄마도 없이 가는 서울길이란....     


나의 불안과는 다르게 아이는 ’ 자신감‘을 내 비췄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고, 길가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되는 거잖아”     


세상의 ’ 장애에 대한 편견‘을 원망하면서, 정작 부모인 내가 아이에게 편견을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두서없이 진행하는 자신의 유튜브‘ 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지만, 정작 나는 그것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아이의 서울행에 ’ 아이가 위험하지 않을까 ‘ 하는 나의 ’ 불안함‘과 함께 ’ 장애 아이혼자‘ 서울길을 찾아 헤메는 것을 주변에서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나의 '열등감'도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나와는 다르게 ’ 모르면 물어볼 수도 있는 일‘이라는 대수롭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아이에 대한 편견은 내 걱정과는 다르게 ‘5천 명의 구독자’가 아이의 방송을 즐겨 시청해주었고, ‘유튜버’ 친구들도 아이의 ‘다름’보다 아이의 ‘게임 실력’을 우선시해 준 것이다.     


장애아이는 ’ 혼자서 무엇을 하면 안 된다 ‘는 나의 편견부터 걷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 나의 불안으로 아이의 경험을 막아서는 안된다 ‘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 봐야 ’ 대한민국 안‘이고, 안되면 ’ 경찰서‘에 연락이라도 해야지’ 하는 심산으로 아이에게 ‘서울행‘을 허락해 주었다.     


그 후 아이와 같이 ’ 서울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 서울 지하철 지도‘를 캡처해 아이 휴대폰 메인 화면에 깔고, 가는 노선과 길을 ’ 그림‘으로 그리고 색칠하여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당일날 아침에는 ’ 서울행‘으로 떠나는 아이에게 학교에 보내듯 현관에서 “잘 다녀와”한마디로 끝을 냈다.     

내심 ’ 역까지는 데려다줄까? ‘ 하는 마음도 올라왔지만, 스스로 해 보기로 한 여정이니 만큼 혼자 출발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불안’과 싸우고 아이는 ‘모르는 길’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그날은 아이에게는 비밀리에 연차를 냈다. 만약의 순간에 대비하기 위해 씻고 옷 입고 ‘똥차’에 기름을 ‘가득’ 채워 넣었다.)          


“엄마 경산역 도착했어, 여기는 엄마와 자주 오던 곳이라서 잘 알아”     

“(흐뭇)”     

“엄마 동대구역에 도착했어”     

“그래 이제 다시 서울행 기차표를 사야겠지??”     

“엄마 그런데 ‘표 파는 창구’는 없고 기계만 있어”     


요즘은 ‘기계 단말식’으로 기차표를 매입할 수 있지만, ‘복지카드’가 있는 아이는 그 단말기를 이용할 수 없다. 창구에서 ‘장애인 할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 아무리 찾아도 표 파는 곳이 없어”     


그 넓은 ‘동대구 역’에서 ‘표 파는 창구’를 알려줄 방법이 없었다. 엉덩이가 들썩대며 ‘지금이라도 갈까?’ 하는 마음을 내심 가라앉혔다. 그리고 ‘역사’에 전화를 걸어 ‘표 파는 창구’의 위치와 근처에 ‘상호’ 같은 것을 물어보고 아이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길을 설명해 주었다.     


서울에 도착해서도 ‘지하철’이라는 관문이 있었다.

실시간 ‘카톡’으로 묻고  ‘검색’해서 알려주며, 아이는 이내 도착하여 '일행'을 만났다는 말을 건냈다.  


물론 오는 길에도 ‘좌충우돌’ 했다. 갔던 길 반복이라도 아이의 ‘인지’가 그만큼 따라주지 않으니 처음부터 다시 반복하면서 ‘길 찾기’를 했다.


돌아올 시간에 연락이 닿지 않아, ‘112’에 신고할 뻔도 했지만, 아이가 기차에서 (긴장한 탓에) 잠을 자 ‘동대구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칠곡역’에서 내렸다는 연락을 해 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는 스스로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반대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다시 ‘환승’, ‘경산역’으로 안전하게 돌아왔다.     


잠깐 서울 보내는 것도 이리 불안하고 힘이드는데, 아이가 앞으로 자립해서 생활하는 순간순간 마다 나는 불안해 할 것이고,  나의 ‘중심’을 잡기 위해 아이만큼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는 늘 주장했다. ‘장애인’또한 지역사회 구성원이고 그들도 충분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그러나 ‘우리 아이는 달라야 한다’는 나의 편견이 있었고, ‘우리 아이는 다른이의 도움이 필요없어야 한다’는 나만의 ‘차별’이었던 것이다.     


아이의 자립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충분히 '실패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경험'하는 과정을 거쳐야 ‘성취경험’또한 쌓일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아이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립'을 완성할 것이다.


인정받고 성공하려는 욕망과 자아 성취 욕구는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더 알고 싶어 하는 시기가 있는데 이 시기에 부모가 아이에게 자신감을 줄수록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란다.

(열등감 부모 최원호)     


혼자 서울 다녀온 아이에게 말했다.


“그래!!! 너는 할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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