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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Jul 13. 2021

“엄마!!!!!참.... 아빠결혼한대!!!”



멋진 외식을 시켜주고 싶어서, ‘맛집을 검색’해 ‘리스트’를 쭉 뽑아줘도 아이는 항상 같은 곳만 가자고 말한다. ‘그 집’이 젤 편하고 맛있단다.

그곳에 가서도 아이는 매번 시키는 ‘메뉴’만 고른다. 이번에도 ‘같은 스파게티’와 ‘같은 피자’ 그리고 ‘같은 필라프’......

같은 곳, 같은 음식을 시키는 것도 ‘불안해서 그러나’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이혼 후 아이의 혼란하고 불안했을 마음에 대해 늘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나름의 아이 데려올 준비(양육권 소송)를 하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받을 혼란과 상처가 내심 걱정되었다.

큰 아이는 엄마가 소송을 걸게 되면 자신이 중간에서 ‘입장’이 곤란한 게 싫다고 내년(본인 20살)이 되면 ‘동생’만 데려가라고 말했다.

자신은 20살이 되면 독립해서 살겠다고 했다.


평소 ‘장애아이’의 ‘자립생활’을 위해 “20살이 되면 나가서 살아봐라”라고 말해뒀는데, 그 결실을 맺는 것인지, 엄마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생각인지.... 힘들고 고난했던 이 ‘가정’이란 곳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것인지..... 그 마음은 알 수 없지만, 일단 그렇게 한다고 본인이 말하니 아이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겠다고 마음먹으며 나는 ‘또 다른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는 6개월 남은 기간 동안 독립생활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눈치였다. 스스로 밥을 차리며, 한 달에 생활비는 얼마큼 드는지, ‘월세’는 어느 정도 드는지 혼자 계산해 보고 나에게 종종 물어온다.)          


자립이 혼자 힘으로 나가는 것이겠지만, 조금만 더 안전하고 편리한 곳에 집을 구하고 그곳 ‘월세 보증금’이라도 마련해 주려고 나는 아이 앞으로 넣어둔 적금에 박차를 가했다. 은근히 내 집 근처로 왔으면 싶었지만, 아직 그것까지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은 왠지 ‘강요’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주문을 넣어놓고 엄마 먼저 콜라는 챙겨주는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호야(둘째)는 매일 엄마 집에서 자고 싶지 않아?”     

“그러면 좋은데... 엄마 입장도 있고....”     

“(감동).....”     

“사실 엄마가 이혼하면 자주 못 볼 것 같다고도 생각했는데

우리는 자주 보고, 매일 전화 통화하니... 이게 가족이지..”     


아이는 지금의 가족형태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중이었다.     


“그때는 우리 호야 힘들었겠네”     

 “......... 형아랑 엄마가 준비될 때까지 잘 있을 수 있어. 지금 딱히 불편한 것도 없고”     


8할은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지만, 법적으로도 엄마의 품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고 싶은 나의 마음을 물어봤는데. 둘째 아이(중3)도 어느새 훌쩍 컸다. 엄마의 ‘입장’ 그러니까 지금 엄마의 처지를 먼저 걱정해 주는 ‘어린 아들’이 안타깝고 대견했다.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고, 스파게티를 한 바퀴 돌려 말아 올리는데 갑자기 생각났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큰아들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참.... 아빠 결혼한대!!!”     


별 놀랄 것도 없던 이야기였지만,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이 궁금한 나는 

태연하게 스파게티를 입에 넣으며 물어봤다.     


“새엄마 생기네?”     

“음..... 엄마라고 부르는 건 어려울 것 같아”     


그래 갑자기 새엄마가 생겨도 엄마라는 말이 쉽게는 나올까...     

아이들의 혼란과 불안을 내심 느끼면서도, 엄마 믿고 지금껏 따라와 주는 아이들에게

내색할 수는 없어 최대한 별일 아니라는 어투로 말을 했다.     


“네 아빠 결혼하면, 당분간 너희 밥걱정 반찬 고민은 이제 안 해도 되겠다.

아니다! 엄마란 밥하고 반찬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다정한 사람이면 참 좋을 텐데....”     


아빠가 결혼한다는 말을 해놓고 ‘엄마 기분’이 궁금했던지, 피자 한 조각을 크게 베어 물며 큰아들이 말을 꺼낸다.     

“엄마도 잘 못해줘서.... 이혼했는데.... 누구 만난다는 게 좀 웃겨”     

“아빠도 이제 달라졌을 수도 있지 ”     


그러자 둘째 아이도 옆에서 돕는다.     

“나도 엄마라고는 못할 것 같아.”     


이런 이야기를 그래도 자연스럽게 하기까지 1년 하고도 6개월이 걸렸다.

처음에 아이들이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장난치는 듯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사춘기 아이들 앞에서 ‘이혼도장’ 찍은 죄책감이 목구멍에 걸려 물도 못 삼켰는데

어느새 훌쩍 큰 아이들은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          


이혼의 필수 요건이 있다면 경제적인 것을 빼고(경제적인 요건은 너무나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상대방 배우자에 대해 아이들 앞에서 나쁘게 말하지 않을 '마음가짐'이다.

배우자로써 어떤 사람이었든지 간에, 아이들에게는 '아빠'일 그 사람을 엄마가 나쁘게만 몰고 가면 아이들은 아빠를 미워하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이것은 '이혼가정'이라는 충격만큼이나 아이들에게 '자기 열등감'만 주입시키는 행동이다.     


이혼 후 부모가 가지는 지나친 '죄책감' 또한 아이에게 결코 좋지 못하다. 부모가 가지는 죄책감으로 아이는 '자기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 죄책감은 자기 위안이다. 자기 처벌, 자기 면죄부, 자기 위로, 자기 안심, 자기 사랑일 뿐이다. 아이 위로, 아이 위안, 아이 사랑이 아니다. 툭하면 “얘야 미안해~”하는 엄마가 사랑의 엄마 같지만 사실은 자기 마음 달래는 이기적인 엄마일 뿐이다. 죄책감 엄마가 가장 히생적인 엄마 같지만 가장 나쁜 엄마다. 왜?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자기 위안을 위해 아이를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엄마 심리 수업 윤우상)     


또한 이런 것은 결국 이혼 후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혼 전’에 삶에서 ‘이혼’이란 것을 대입하지 않고서는 내 삶을 이어갈 수 없었던 나만의 '절박함'이 있었으므로 나는 아이 들에게 ' 당당한 엄마'이고자 했다. 그러니 ‘아이 아빠 욕’을 해 가면서 아이들에게 이해받을 이유가 없었다.     


전남편에게 새로운 아내가 생긴다니, 결혼에 실패했지만 이제는... 이전 것을 답습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멋진 아빠'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꼭 법적으로 주민 등록부상에 함께 사는 것이 가족은 아니다. 소소한 일에도 함께 소통하며, 같이 결정하는 과정이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나의 아이들이 남들이 말하는 “정상가정”에 틀에서 벗어나도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알아주어서 고맙다.     


“정상가족”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방식을 말한다. 바깥으로는 이를 벗어난 가족 형태를 ‘비정상적’이라 간주하며 차별하고, 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가 가족을 지배한다. 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가족이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아이들에게 충분히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역할이고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임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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