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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Jul 22. 2021

’ 성폭력‘피해자들의수치심은’ 가해자‘들에게나던져

주자



어린 ‘영서’의 말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라는 책을 읽으며, 무릎을 치며 분노했고, 눈물을 흘리며 같이 슬퍼했다.     


주인공 “영서”는 ‘친아버지’에게 9년간 ‘성폭력’을 경험했다. 그러면서도 학교로, 공부로 자신을 잃지 않았고, 멋지게'영어발표'도 하는 내면이 강한 아이였다.     


성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의 문제로 성폭력을 바라보는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는다면, 성폭력 피해자들이 좀 더 마음 편하게 신고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치유의 과정을 걸어가는 길도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36p)     


뉴스나 인터넷 기사에 나오는 ‘성폭력’의 이야기를 접할 때 나조차도 ‘폭력’ 이전에 ‘성’을 먼저 떠올린 것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을 이야기할 때, 이미 그 단어 자체에 피해자의 ‘수치심’이라는 것을 포함해서 이야기했던 것은 아닐까??

또한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한 자극'에 우리들도 그것을 단지 ”가십“같은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폭력의 형태는 다양하다. ‘신체적인 폭력’, ‘언어적인 폭력’, ‘집단적인 따돌림’, ‘성적인 추행과 성폭력’.... 그러나 우리는 앞의 것을 ”폭력“이라는 단어로 이야기하지만, 성적인 학대나 추행은 ”성추행“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쓰며 ”성“을 강조한다.     

‘성폭력’의 이야기도 그저 ‘폭력’으로 바라봐 준다면, ‘성폭력 희생자’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상처를 드러내며 공감받고 치유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영서’와 같이 ‘친족에 의한 성폭력’을 당한 이들에게도 ‘아주 은밀한 공간’에서 벗어나  그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보호할 수 있는 ‘공적인 사회적 장치’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예쁘다 이리온~“ 하면서 자신의 무릎에 나를 안춰놓고 뒤에서 나를 꼭 껴안은 ‘늙은 남교사’에게 나는 ”싫어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중학교 시절, 자습시간에 졸고 있는 내 팔 안쪽을 쥐고 만지면서 ”졸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야지~ “라며 굳이 내 귀에 자기 입을 대고 말했던 ‘수염이 까칠 거린 남선생님’에게 ”왜 이러세요? “라고 묻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만원 버스’를 탔을 때 우리 학교 옆 남자고등학교 교복을 차려입은 키 큰 남자아이가 내 뒤에 바짝 붙어 내 몸을 만졌을 때, 나는 그저 ‘두정거장’이나 남은 곳에서 내려야만 했다.


그것뿐이겠는가? 학급에 에어컨도 없던 시절, 여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다리 좀 벌리고 앉아 있었다고, 수업에 들어온 ‘얼굴이 번질 거리는 남자 선생님”이 ”너희 그렇게 다리 벌리고 있으면 넣고 싶잖아 “라는 농담 갖지도 않은 성추행적 발언을 50명의 여학생이 들었음에도 누구 하나 대응하지 못했다.     


기억해야 할 일들은 잘 잊어 먹으면서도 그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때의 일들은 단지 ”귀여워서 “,”농담이니까 “라고 지나갈 일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와 같이 사회적, 신체적으로 약자(여자도 남자도)인 누구라도 이와 같은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생활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 임에도 우리는 ‘성’이라는 앞자리를 생각하며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억울함’이며 ‘부당한’ 경험이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들만을 위한 일은 아니다. 끔찍한 성폭력피해 뉴스를 보고 ”나도,  우리 아이도 저런 일 당하면 어쩌지?”하면서 미리 겁을 집어먹게 되는 사람들도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쉬쉬하며 소문날까 두려워하고, 피해 생존자가 수치심을 느끼는 분위기를 바꾸면 성폭력이 주는 상처의 무게감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피해자들이 느낄 가해자를 향한 분노와 피해 상황이 남긴 힘든 기억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느끼는 수치심은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바뀌면 좀 더 가벼워질 수 있다. 피해자들이 모자이크와 우스꽝스러운 음성 변조를 벗고, 아픈 상처를 토로하고, 아픔을 극복한 무용담을 나누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꿈 꿔본다. 나도 못 해본 그 일을...(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김영서)     


‘영서“의 용감한 발걸음을 응원하며, 우리 각자의 영서들에게 ”그건 네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야 “라고 말하며 위로해 주고 싶다.


나도 ’ 친족성추행 피해자‘이다. 빛나게 용감했던 영서의 말처럼, 누구든 이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 ”그때“를 만들고자, 나도 나의 이야기를 앞으로 꺼내보려 한다.     


”성폭력“은 ”성“의 문제가 아닌, 단지”폭력“그것 자체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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