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나도 메모
이혼 ”조정기간“과 ”세대분리 이사“ 전에 쓴 다이어리를 정리한 것입니다.
글의 앞뒤 구성이 맞지 않아 고쳐쓰기를 할 수 없을 때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다시 쓰기를 할 때가 있다.
나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구성’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뜯고 다시 박음질을 하겠지만, 결국은 ‘완성품’이 될 나의 인생을 상상하며...
결혼생활이 길기도 길었지만(17년) 정리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감정적인 부분의 정리가 더욱 버거웠는데, 그럴 때마다 “아~~ 지금껏 진짜 열심히 살아와서 이렇게 ‘미련’도 ‘불안함’도 남는구나” 라며 생각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조정기간 3개월의 1달이 남은 상황이었다. 이제 진짜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잘못 연결된 인연을 떠나보내고, 오직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내 삶”을 꾸려 나갈 것이다.
인간이란 ‘더 좋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안 좋은 지금의 것을 되풀이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단다. 나도 그런 것인지 마음이 헷갈리고 앞날이 불안하였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아이들을 어떻게 케어해 나갈 것인지 세세히 계획해 보았다.
‘감정적’으로 섣불리 앞서 나가지 않고, ‘이성적’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혼 일주일 전 ‘전출신고’부터 했다. 혹시나 당일, 불출석할 수도 있는 남편에게 나의 의지를 드러내 놓고 싶어서 한 결정이었다.
어떤 남편이었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던 내’가 드디어 혼자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또한 ‘나 혼자 전출신고’를 한 터라 아이들과 이탈되는 것 같은 불안한 감정도 느꼈다.
가까운 지인과 친구들이 없었다면, 내가 그리 큰 결심을 할 때까지 조금의 시간이 더 걸렸을지 모른다.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준 이들,,,,,,
진정 밤이 되어 혼자 있는 공간에 갇히자, 그 사람들의 ‘따뜻함’이 ‘외로움’으로 바뀌어 갔다.
‘강신주 선생님’의 말처럼 “결혼은 모두의 축하를 받으면서 하는 것‘이지만, ’ 이혼은 혼자 외로이 하는 것” 이였다.
이혼 당일 ‘법정’에 갔다.
이상하게도 내가 이혼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날 이혼하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고 관찰하게 되더라..
이혼한 것이 뭐라고, 주변에(가족, 직장...) ‘나의 이혼’에 대한 ‘정당함’을 설득하고 다녀야 한다는 것은....
아이의 ‘학교 선생님’에게 가정의 상황을 알리고 아이 정서에 세심한 관찰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서로 같이 눈물을 글썽였다.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이해해 주신 선생님에게 너무 고마웠다.
‘부탁하는 일’도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서투르고 부족한 내가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잠을 못 이루게 했다.
가끔은 ‘주위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다.
담담히 집을 구하고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