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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Aug 04. 2021

한여름,'검정 뽁뽁이'를창문에 붙였다.


이혼 후 전남편에게 요구했다. 소위 ‘아메리칸 스타일’로 ‘아이 양육에 있어서는 서로 협동하자 ‘고 말이다. 이제껏 아이 양육과 교육에 있어 모든 것을 담당했던 게 ’나‘였는지라, 전남편도 쉽게 허락해 주었다.     


전남편이 없으면 아이들을 보러 가서 밥을 해 놓고, 아이 교복을 빨아 널어놓는다.

그럴 때는 아이들이 이제 함께 살지 않는 엄마 곁으로 와서 ’ 계란찜‘이나 ’ 김치찌개‘를 하는 방법을 물어보고 가르쳐 주며, 빨래를 돌리는 것을 스스로 해 보게 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하루는 집안일이 많아 시간이 좀 지체되었나 보다. 일을 다 하고 나오는 데 현관에서 전남편과 마주쳤다.     


전남편은


“오늘 근무 뭔데?”


“왜?”


“있다 집으로 갈게...”


“왜? 여자 친구는 어쩌고?”(이 말이 내 권리를 주장하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대뜸 이렇게 밖에 물어볼 수 없었다.)


“..............”


“그렇다고 왜 나를 찾아와?”


그렇게 쏘아붙이고는 재빨리 집을 빠져나왔다.     


나오면서도 든 생각은 이제 이렇게 아이들을 지원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덜컹 겁이 났다. 아이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이혼 전과 같은 환경을 꾸려주려고 남편이 무섭고 미웠지만, ’ 아메리칸 스타‘일 까지 운운하며, ’ 쿨한 전 부인‘ 행세를 하고 있었는데, 혹여나 오늘 일로 전남편의 심기가 뒤 틀릴까 봐 스그 머니 걱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진짜 겁이 났던 것은, 전남편이 내 집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릴 것만 같은 공포였다.     


전남편은 내가 사는 아파트를 알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아이들이 ’ 내 집‘으로 오는데 가끔 전남편이 차로 아이들을 태워다 준 적이 있다.     


집을 나온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창문에 붙일 ’ 검정 뽁뽁이‘를 사는 것이었다. 


이사를 온 집은 ’ 복도식 아파트‘였음으로 밤에는 복도에서 집안에 불이 켜져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전남편이 찾아올까 무서워, 집에 없는 척을 하고 있을 ’ 심산‘이였다. 전남편이 우리 집 호수를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겁이 났다.


전남편은 이혼 직전 여자를 만나고 있었고 그래서 쉽게 이혼에 합의해 주었지만, 17년 내내 “도망가거나 이혼하면 죽여버릴 거야”라고 말했던 전남편의 말이 다시 떠오르며, 무서워졌던 것이다.     

이혼 후 지구 반대편으로 까지 도망가고 싶었지만, 나는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사춘기 아이들이 느낄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더 이상의 불화 없이 조용히 조용히..... 이혼하고, 경제적인 바탕을 조금이라도 마련하고, 아이를 안전하게 데려올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용기가 필요했다. ’ 가난‘과 ’ 무서움‘에 맞설 수 있는 용기....     


나는, ’ 아이 엄마‘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것이지 ’ 아내‘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다른 여자‘까지 끼고 있으면서, 어쩜 그리 내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소수의 남자들은 여자를 소유할 수 있는 ’ 대상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번 애정을 갖고 품었던 여자라면, 어떤 식으로든 다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 권리‘가 생긴 것쯤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뉴스에서도 접하듯,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폭력을 당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네가 내 것인데 감히 나를 떠나?‘ 이러한 심리가 작동되는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 라이 킷‘과 ’ 댓글‘을 받았다. 댓글을 읽을 때면 그 사람들의 위로와 공감이 너무 따뜻해, 눈물이 '주르르' 흐른 적이 많았다. 그러면서 생긴 신념은 ’ 절대 나는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의 위로와 공감으로 오늘 나는 '검정 뽁뽁이'를 걷어내며 스스로 중얼거렸다.     


내가 기억해야 되는 것은 나는 ‘엄마’ 일뿐, 더 이상 ‘아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겁낼 필요가 없다. 이것은 지극히 사적인 나만의 공포가 아닌, 공적인 문제인 ‘폭력’이며, 나는 언제든 당당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     


일 년 동안 어둡고 습했던 방안으로 한 낮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들어온다.           






ps. 제 글에 7만 5만..... 조회를 해 주신 분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매번 댓글을 달아주시며 따뜻한 위로의 말씀으로 저를 울리신 분들....

또한 긴 댓글로, 저의 입장이 되어 함께 공감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아픔’과 ‘공포’에서 조금씩 해방되어 가는 저를 느낍니다.

쓰다 보니, 무슨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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