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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Aug 16. 2021

내 이혼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다.


남편의 폭력이 이혼보다 더 비교육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자신은 맞을지라도 자녀를 위해서 폭력을 견뎌야 하는 여성들의 아야기는,

한 ‘인간’으로서 여성과 ‘어머니’로서의 여성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나 최소한 맞지 않고 살 권리가 있지만 여성이 ‘어머니’가 될 때 그 권리는 당연히 유보되고 포기된다. 그들에겐 ‘인간의 권리’보다 ‘어머니로서의 도리’가 더 중요한 가치이고, 또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친밀한 폭력 정희진)     


나는 어릴 때부터 내 엄마에게 “너희 때문에 산다”라는 말을 주로 듣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든 의문은 ‘엄마는 왜 나 때문에 괴로워야 할까?’였다.


나는 엄마가 괴롭기보다, 행복하길 바랬고 그 방법이 아빠와의 이혼이라면 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너희 때문에 산다”라는 말은 족쇄처럼 다가와, 나는 늘 엄마에게 원인 모를 죄책감을 갖고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고, 엄마의 기대에 실망시키지 않아야 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있었다. 이 무게는 성인이 되어서도 벗어내질 못하고 아직까지도 짊어지고 있다.               


엄마는 알까? 엄마의 딸이 엄마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남편에게 맞아도 참고 견뎌내야 “엄아의 역할을 다 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삶을....     


나 또한 ”내 아들 때문에 “...라고 위로하며 그간의 결혼생활을 견뎌냈지만, 깊게 생각해 보면 그 비루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은 내가 핑계 삼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엄마였고, 나 자신이었다.     


중학생 때 내 아빠에게 대 들었던 날, 아빠가 내 목을 쥐고 조았던 그날...

나는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엄마는 나 때문에라도 이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그러나 나 때문에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던 엄마에게  나는 결국 이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나는 내 아들에게 “너희 때문에 산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의 무게를 아이들에게 주고 싶지 않아서 나는 이혼을 결정했다.     


그리고 말하고 싶었다. 너희도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 ‘언제든 항의’하고 ‘언제든 벗어나라’고 말이다. 

“무엇 때문에”...라는 말로 결코 자신을 희생시키지 말라고 말이다.      


이처럼 가정 폭력이 왜 근절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는 가정 폭력이 왜 근절되어야 할까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은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가족이 파괴되기 때문에 가정 폭력이 나쁘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조금 생각을 뒤집어 보면 가족은 무조건 소중하다는 생각, 혹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은 해체되면 안 된다는 가족 유지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토록 극심한 폭력으로도(남성 중심적) 가족이 빨리 파괴되지 않는 것이 실은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피해 여성들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폭력가정을 떠나지 못해서 가정폭력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아주 친밀한 폭력 중)     


나의 이혼에 있어서, 나 또한 아이들에게 원만한 가정을 주지 못했다 죄책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폭력가정'이 '이혼가정'보다 더 최악일 수 있다.     


엄마가 아빠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사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더 이상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현재로써는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훗자는 질문할 수 있다. 그러면 맞을 상황을 안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아내의 말대꾸는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가 ‘수그러드는’ 태도로 애교를 부려 안 맞기를 바라는데, 아내가 그것을 거부하므로 때릴 수밖에 없다.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남편들도 아내를 흔히 ‘곰’과 ‘여우’로 구분하면서 아내가 여성적인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기 바란다. 이러한 문화적 맥락에서 폭력남편은 자신은 폭력을 쓰더라도 (폭력이 난무하는 공포와 긴장 상황에서도) 아내는 애교를 부려야 한다고 본다....(아주 친밀한 폭력 중)     


왜 아내는 남편의 성격을 건들지 않으면서, 남편과의 갈등을 풀어내 가야 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까???     

맞을 상황을 아내 혼자 만들었을까? 또한 화가 나는 상황으로 아내가 끌고 간다 한들, 남편은 아내를 때릴 권리가 있을까?      


가정폭력은 아내가 가족 내 성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남편이 판단할 때, 남편이 임의로 수행하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처벌이다.

남성의 성 역할과 인권은 일치하지만, 여성의 성 역할과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일치하지 않는다. 여성이 폭력 가정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것은 ‘폭력이 개인의 행복과 건강에 나쁘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그야말로 여성에 대한 비하가 아닐 수 없다. 나를 포함하여 여성들은 매 순간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여성으로서의 ‘도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우리는 모두 ‘결정 장애’에 시달린다. 남성 사회는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보다 도리를 아는 여성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아주 친밀한 폭력 중)     


아내로서의 역할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를 자문해 봐야 한다. 맞을 짓을 했다는 것 또한 ‘남성주의적 사고’로 해석한 ‘여성비하적’ 발언이다. 여성이 여성에게 불쾌하고 무례한 잘못을 저질렸다고 한들 상대를 떳떳게 권위적으로 대하며 ‘폭력’으로 자립 구제하진 않는다.


이것은 오직 ‘가부장적 사회’라는 틀 속에서 ‘남편’이라는 역할로써 포장되어 가능하게 되었던 일이다.     


이런 ‘비평등한 성역할’과 ‘가족 유지 이데올로기’에 속한 관념이 존재하는 이상, 나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임에도 ‘가해자’로 둔갑되어 있을 것이고, 가정을 지키지 못해 아이들을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나게 한 ‘나쁜 엄마’로 밖에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이러한 ‘비평등한 가족 내 위치 관계’를 그대로 답습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엄마라서'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내가 가정을 지켰다면, 아이들 역시 아빠와 같은 성 역할을 담당하며, 남편과 아내란 원래 그런 위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답습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이혼한 것에 대해서 더 이상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지겹도록 들은 “너희 때문에 산다.”라는 말로 아이들에게 ‘모성애의 헌신’을 말하며 ‘죄책감의 감정’을 쥐어주고 싶지 않다.    


엄마가 지금이라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엄마’와 ‘아내’ 이전에 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살고자 용기를 가졌듯, 나의 아이들도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먼저 존중받고 권리를 주장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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