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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Aug 19. 2021

‘강박장애’ 치료만10년째입니다.

믿을 수 없는 나


아침부터 마음이 어지럽다. 자고 일어난 아침 풍경에 어질러진 물건들이 집중해져 보인다. 왠지 정리하고 청소하고 그래야, 다른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강박장애가 있다."     


내가 집 밖을 나갈 때는 ‘가스밸브 잠그기’, ‘모든 콘센트 빼기’, ‘냉장고 콘센트에 먼지가 없는지 확인하고 문 닫혔는지 다시 열어보고 닫길 세 번!’, ‘창문을 모두 잠그고 열리나 안 열리나 힘껏 열어보기’..... 이렇게 나가다가도 다시 들어와서 수십 번씩 다시 확인하는 일은 다반수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한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믿고 결혼한 사람에게 비난과 폭언과 폭행을 오랜 시간 겪은 후, 나에게 생긴 비합리적인 신념은 “나는 못나서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시 ‘비합리적인 신념’이 맞다.

그런데도 나의 감정은 아직까지 그런 비난의 이유를 믿고 있으며, 스스로 나를 의심하는 이 불편한 감정을 매 순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강박장애 치료만 10년이 넘었다."     


약을 먹어도 완화되지 않는 것은 나의 ‘무의식’ 속까지 점령한 나의 ‘비합리적인 신념’때문 일 것이다.

하루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확인하지 말고 그냥 외출을 감행해 보세요”라고 말하며 숙제를 내주셨다.

확인하지 않고 외출을 했는데도, 집에 불이나지 않고 도둑이 들지 않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책을 읽다 벌떡 일어나 휴대폰만 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숙제는 해가야 하는 거니까.......’라고 생각하며 집 근처 공원으로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이 답답했다. ‘내가 뭘 켜 뒀나? “를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러라고 숙제를 내 준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의심병이 도졌다. 왠지 전기 콘센트 합선으로 불이 날 것만 같고, 아침에 국을 데운 가스레인지를 끄지 않아 냄비에 불이 붙는 모습이 눈앞에 상상되었다. 그리고 에어컨을 껐는지 의심되기 시작하면서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계속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다시 급하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급한 발걸음은 이내 나를 뛰게 만들었다.     


"나를 믿질 못하니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사람을 잘 믿지 못한다. 아니 안 믿는다. 

기본적인 생각은 ‘다들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곁을 둔다’라는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고 만남에서 매번 답답함이 느껴진다면 나 또한 그 사람을 그만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곁을 두는 친구는 항상 이렇다.

“아! 이 친구에게는 배신당해도 괜찮을 수 있다!”라는 이 생각이 들면 비로소 나는 그 사람에게 내 곁을 허락한다.

즉 ‘상처를 허락’한 사람만 곁을 두고, 믿어보는 나는 외로운 존재이다.     


"지금, 조금씩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쓴 글을 프린터기로 뽑아 읽고, 고치기를 열 번넘게...

마지막 발행하기 전에 소리 내어 읽기를 또 열 번넘게...

결국 글 하나가 발행되기 전에 최소 20번의 고침 작업을 해야 비로소 글 하나가 올라갈 수 있었다. (하도 많이 읽어서 나는 나의 글을 줄줄 외울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글이란 것을 평소 써 본 적이 없는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잘 못써서 민폐를 끼칠 것 같은 염려가 계속 따라왔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제는 글을 쓰고 프린트하지 않고도, 몇 번 고치고, 적당히 소리 내어 읽어본 다음 발행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조건 없이 나의 글을 읽어주고, 나를 위로해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덕분이다.     

나의 글을 읽고, 믿고, 응원해 주었듯,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나를 믿어봐야 겠다.

오늘은 노트북만 챙겨 나와 카페에서 글을 쓰면서도, 집에 달려가지 않길 2시간이 넘었다.     


ps. 누군가에게 브런치는 “대나무 숲”이라고 쓴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무릎을 탁 치면서 “그래!”하고 삼산 뿌리 캔 듯 “심 봤다!”를 외칠 뻔했다. 거기에 나의 브런치는 “대나무 숲 약초밭”이다. 오래도록 묵혀둔 내 지병을 느리게 낮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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