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때 다시 받은 아이큐는 ”126“이였지만, 나는 이 아이큐를 믿지 않는다. 이 또한 뒤에 이야기로 알 수 있겠지만,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아이큐 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3학년때로 기억하는 어느날, 공부 경쟁이 심한 어느학교에 전학간 나는 '학습부진아이'로 낙인찍혔고, 어느날 담임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불러 보여준 것은 ’아이큐검사지‘였다.
선생님은 “너는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돼” 라는 말을 했는데, 그때 그 선생님의 말투와 표정을 나는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공부경쟁'도, '엄마들 치맛바람'도 격심한 그 초등학교에서 나의 모습은, 그때 핫했던 레깅스에 덧입은 짧은 치마를 입은 이쁜 친구들 속에서 그저 언니에게 물려받은 유행지난 옷을 입고, 친구들이 화려한 파마를 해 오거나, 아침마다 '디스코머리묶음'을 해 올 때 그저 나는 늘 귀밑 3센티미터의 단발머리였다.
어느 중간고사가 있던 날 답안을 제출하고, 화장실을 갔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답안 지 거둘 때 김보영 답지 봤어? 칸에 안 맞게 왜 그렇게 길게 많이 썼대니?...걔는 왜 그런대니?”
그말을 듣고, 수업시작종이 울리는 데도, 나는 나의 소신을 적은 답안이 부끄러워 화장실 밖을 못나가고 있었었다.
그때 부터였을까? 나의 꿈은' 대통령'도 '과학자'도 아닌, 그저 저들처럼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였다.
어린마음에도 나는 저들의 무리에 속해, 인정받는 사람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저 그들처럼 평범하고 공부를 잘 못해 비난받지 않는, 그런 친구가 되고싶었던 것이었다.
머리나쁘고 엉뚱하고 저능한? 나는 중학교를 입학하며 나를 기억하는 이들이 몇없는 틈을 타 새로운 이미지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나의 목표는 그저 '중간'과 '평범'이였다. 제발 중간이 되고 싶었다. 중간이 되어서 낙후되지 않고 이상하지 않으며 비난 받지 않는 아이가 되고 싶었고, 나도 끼어들어 수다 떨 친구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죽어라 공부했다. 한글도 늦게 트인 나는 공부머리도 없고, 누구하나 '공부는 이렇게 한다'라고 가르쳐 주는 이 하나 없었음으로 그 과정은 그야말로 ’무식‘ 그 자체였다.
불쌍과 경멸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입으로 “노력”이라는 말로 나에게 위로를 건냈던 그 선생님의 말처럼 나는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그래야 평범한 중간은 가니까...."
그래서 나는 중학교 처음 성적표에 51명중 딱 중간인 26등을 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성적의 친구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드디어 평범한 학생이 되어가는 것이 그저 기뻤다. 그때 든 생각은 ’나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절대 없다“, ”평범하게 살려면 내가 가진 엉뚱한 생각을 지워야 한다“ 였다. 나는 저능하니까, 이상하니까, 노력해야만 남들처럼 살 수 있다는 신념! 오직 그 신념하나로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를 버티며 살아내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신념이 잠깐 무너졌는데. 대학교를 들어가고 꾀나 괜찮은 성적을 받고 졸업하며 제법 규모있는 기업에 취직을하고 나서야, '나는 어쩌면 저능하지 않아'!라고 생각했던 때가 한때 있었다. 고작 4년 여.......나의 오랜 열등감을 회복하기에는 너무나 짧았던 시간이였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나는 또 내가 생각하는 그 '평범'하고 '중간'인 삶에서 '이탈'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평범한 결혼생활은 남편이 벌어오는 300여 만원의 돈으로 북적북적 지지고 볶으며, 아이 엄마들과 어울려 남편 흉도 보고, 가끔 이쁜 치마를 입고 아이들과 함게 놀이터에 놀러나가는 그런 삶이였다.
하지만 남편은 돈이란 것을 제때 일정한 양을 갖다주지 않았고, 나는 매달 카드값에 허덕였으며, 아이는 '장애아'가 되어, 나에게는 그 딱 중간인 평범한 삶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평범은 꿈도 못꾸고 아이의 문제행동으로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으며 살았으니, 그 동네에서 나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그런 이야기 거리의 소재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중간이 되고 싶었을까? 이미 중간인, 아닌 그 이상의 삶의 히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은 아마도 지금 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인생이란 것에 쉽게 무엇하나 그저 주어지는 것 없이 매번 부딪치고 노력하고 좌절하고 깨닫는 나의 삶에서 그토록 갖고 싶었던 것은 그저 중간의 평범한 삶이였을 뿐이엿다.
인생을 누구보다 진하게 살고 있는 나...
그저 무엇하나 흘려지나간 적이 없던 시간..
삶에 공짜가 없듯 그 고통뒤에 내가 가진 것은 ’성숙‘과 ’적응‘ 뿐이였다.
친구들 말처럼 나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이해안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내 비루했던 열등감은 “그럴수 있지”라는 이해의 폭을 무한대로 증폭시킨다.
그리고, 남들에게는 있을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나는 그저 고맙고 기쁘다. 그것마져 나에게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저 재수없는 인간이 되고싶다. 처음부터 다 주어져서 아무것도 느끼고 깨닫지 않아, 그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내 잘난 맛에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제 그만 성숙하고 싶다고 오열하며 기도한 적도 있다.
고난이 나를 자꾸 성숙하게 만드니, 그만 고단하고 싶어서 였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원하는 '중간'과 '평범'또한 내가 '기준점'을 삼고 '판단'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누구나 인지하는 윤리와 도덕이, 평범한 것이고 중간의 것이라 판단했으나, 이런 나의 기준점과 판단또한 '대중적'인 것이 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때는, 누구도 탓하지 못하는 어느시점이 되어서였다.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판단, 다 맞고 옳은 일인것인가?
열등하고 저능할수 있는 내가...그리고 ’죄 많은 내‘(종교적인 관점)가....과연 무엇을 저울질 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까?
최근 나는 '사직서'를 써 놓고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정의'와 '공정'의 열정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은, 그저 소신껏 적어낸 답안이 남들의 조롱꺼리가 되었듯, 나를 다시 '저능아'로 만들고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평범'과 '중간'을 허락하지 않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중간고사때 내가 적어낸 답안 처럼, “왜 그런대?”라는 비난을 받으며, 종이치고 수업이 시작되었음에도 나는 지금 나의 공간을 찾아내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중이다.
이쯤 되면 평범한 질문하나가 생각난다.
“내가 이상한 것일까???”
ps. 이제는 그만, 평범한 일상과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가끔은 심심하고 때로는 외롭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