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보다 더 많이 보는 한국 드라마
우리 가족이 뉴질랜드에 온 지 일 년이 되었다. 한국과는 정 반대로 가는 네 계절을 겪었다. 남편이 풀타임으로 취업을 한 후에는 경제적으로도 조금 안정이 되었고, 아이들도 친구관계나 학교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 걸 보면 학교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 같다. 그래도 낯설고 팍팍한 해외살이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을 터. 요즘 우리 가족의 스트레스 해소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텔레비전이다.
뉴질랜드에 와서 초반에 한인커뮤티니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구입한 300불짜리 55인치 삼성 중고티브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 절반이 안 나오는 증상을 보이며 사망했고, 그렇게 텔레비전 없이 지내던 우리는 집에서 한국어만 사용하고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아 안 되겠다며, 영어 프로그램이라도 보며 리스닝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그럴싸한 명목으로 텔레비전을 구입하기로 했다. 할인율이 가장 장 크다는 크리스마스 다음날, 박싱데이에 큰 맘먹고 55인치 엘지 티브이를 구입했다. 그리고 그즈음 넷플릭스에서 오징어게임 2를 공개하였고, 남편과 큰 아이가 보고 싶어 해서 딱 한 달만 보기로 하고 넷플릭스 구독신청을 했다. 그렇게 연말 연휴 동안 넷플릭스 콘텐츠를 잘 보았는데, 삼일 후... 텔레비전을 보던 나는 화면에서 선명한 가로줄 하나 세로줄 하나를 발견한다. 이게 뭐야? 오 노!! 새 제품을 샀는데, 믿고 사는 엘지인데, 어찌 이런 일이. 구입한 곳에 전화를 했더니, 같은 제품은 품절이고 언제 새 제품이 들어올지 모르니 영수증과 구입한 텔레비전을 가져오면 환불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텔레비전을 싣고 구입한 곳에 가져가 환불을 받았다.
다시 텔레비전을 구입해야 했다.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고른 제품이었는데, 쉽게 고장 난 것을 보았느니 같은 것을 사기는 싫고, 몇 군데 전자제품 판매점을 둘러보고 그중 가장 친절하게 응대를 해주었던 직원이 있던 판매점에서 제품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구입한 이유 중에 하나는 제조사 엘지에서 제공하는 기본 1년의 제품보증기간에 판매사에서 제공하는 추가 1년의 무료 보증기간, 그리고 여기에 추가 3년의 보증을 크게 할인된 가격에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총 5년 동안은 제품이 고장 나도 걱정 없이 새 제품으로 교환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처럼 전제제품 A/S가 잘 되는 곳이 없다. 뉴질랜드에서는 새 제품이어도 고장에 대한 불안이 있다.
하지만, 그날 텔레비전을 받아올 수는 없었다. 제품은 일주일 정도 후에 들어오니 회사 warehouse에서 픽업하라고 안내를 받았다. 하지만 일주일이면 온다던 제품은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삼주가 거의 다 되어서야 받아올 수 있었고, 그렇게 넷플릭스 1개월 구독 기간은 끝이 났다. 그렇지, 재깍재깍 해결되면 뉴질랜드가 아니지. 아무튼, 넷플릭스의 중독성에 걸려든 우리는 단호하게 구독을 끊지 못하고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다. 처음의 텔레비전 구입 목적과는 다르게 주로 한국드라마를 시청하며, 하루의 노곤함을 달래고 있다. 한국에서보다 한국드라마를 더 많이 보고 있는 것 같다. 뉴질랜드 넷플릭스는 한국 넷플릭스와는 콘텐츠가 조금 다른 것 같긴 한데 놀랍게도 한국 콘텐츠가 정말 많다. 그리고 가끔 한국 콘텐츠가 높은 시청 순위에 있기도 하다.
추가로 고장 난 텔레비전 버린 이야기. 1년에 한 번 오클랜드시에서 무료로 고장 난 가전을 수거하는 날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았더니 4월이었다. 그런데 2월쯤 지나가는 길에 보았던 고물상 같은 곳이 왠지 고장 난 가전을 무료로 받아준다는 곳인 것 같아 무작정 고장 난 텔레비전을 싣고 그곳에 찾아갔었다. 그곳에서는 자기네는 받을 수 없으나, 받아주는 곳을 알려주겠다며 근처 장소를 알려주었다. 찾아가 보니 다양한 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인 것 같았는데 처리 비용이 무료가 아니라 떡하니 처리비용 리스트가 붙어있었다. 'All flat screen TVs $15'. 마음속에서 큰 갈등이 일었다. 여태 갖고 있었고 두 달만 있으면 무료로 버릴 수 있는데 15불이나 써야 할지. 그래도 여기까지 일부러 싣고 왔는데 도로 집에 가져가는 게 맞는 것인지. 하지만 남편의 강력한 의지로 15불을 지불하고 텔레비전을 버리고 왔다. 대형가전폐기물 처리도 쉽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