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어알이 만든 남도의 진미, 영암 어란이야기

by 길가영
영암 어란_05.11.jpg 숭어알이 만든 남도의 진미, 영암 어란이야기


전라남도 영암군은 월출산을 병풍 삼아 영산강과 황금 들녘이 펼쳐진 땅이다. 이 고장에는 조선시대부터 귀하게 여겨진 바다의 보물이 있다. 바로 숭어의 알로 만든 어란이다.


어란은 물고기의 알을 염장하고 건조시켜 만든 저장식품이다. 영암에서는 특히 숭어알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영산강 하구와 영암호 일대가 숭어의 주요 산란지였기 때문이다.


숭어는 겨울철이면 알을 품은 채 강과 바다를 오가며, 어민들은 전통적으로 ‘겨울 숭어가 약이 된다’고 여겼다. 숭어의 알은 단단하고 윤기가 돌며, 염장과 숙성을 거치면 진한 감칠맛이 배어난다.


조선시대 이래로 영암 일대에서는 숭어알을 염장한 뒤, 대나무 발 위에 가지런히 펼쳐 햇볕과 해풍에 말려 어란을 만들었다. 이를 ‘지혜로운 손맛’으로 여겼으며, 민속적으로는 혼례와 제례 음식에 빠지지 않는 귀한 진미로 사용하였다.


이와 같은 제조법은 조선시대 이후 남도 연안지방에서 성행하였으며, 장기간 저장이 가능하고, 맛과 영양이 풍부하여 귀한 반찬으로 여겨졌다.

영암 어란(魚卵)은 조선시대부터 전라도 지역, 특히 영암군 일대에서 제조되어 상류 계층과 궁중에까지 진상되었던 고급 식재료였다. 특히 어란은 육란(육포처럼 고기를 말린 것)이나 멸치젓과 함께 진상품(進上品)으로 활용되었으며, 지방에서 중앙으로 보내는 공물 중 하나였다.


영암은 영산강과 인접한 해역에 위치해 있어 숭어 자원이 풍부했고, 해남·목포 등과도 연계가 쉬워 어란 제조와 유통이 활발하였다.


조선 전기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편, 전라도 영암 도호부조의 전해진 기록은 다음과 같다.


“魚卵所出諸郡邑之海邊,皆納于官。其味珍美,以供大內之膳。”

어란은 여러 고을의 해안 지역에서 생산되며, 모두 관청에 납부되었다. 그 맛이 진귀하고 아름다워 궁중의 식사에 사용되었다.


"바닷가에서 나는 어란은 궁중에 진상되며, 맛이 담백하고 기름져 귀히 여긴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특히 숭어 어란은 육지에서 흔치 않았기에 더 큰 가치를 지녔다. 영암은 전남 내륙과 해안 사이에 위치하면서 목포, 해남 등 어류 유통 중심지와 인접해 있어 진상품 조달지로서의 역할도 했다. 이 기록은 어란이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식재료로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조선 후기의 어류 전문서인『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는 어란 제조에 적합한 어종으로 숭어, 농어, 민어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 중 숭어는 전남 일대 갯벌과 하구역에서 풍부하게 어획되었으며, 특히 영암 일대는 영산강 하류와 갯벌이 맞닿은 지역으로 숭어 어획이 활발하였다. 이는 단순한 식품이 아닌 선물과 공물의 위상을 가진 식재료였음을 방증한다.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 (이규경 저)

"숭어알은 색이 붉고 질감이 치밀하며, 오래 염장하여 말리면 그 맛이 육포보다 낫다"


『전라남도 향토문화자료집 – 영암 편』에는 영암 지역 어촌에서 어란을 ‘신구이’(신선한 생식을 구워 먹는다 하여)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혼례상·제사상에 귀한 찬품으로 올렸다는 민속기록도 있다. 특히 영암의 해촌에서는 낙월도, 신북면 해안마을을 중심으로 민어, 숭어 등을 잡아 어란을 만들어왔다는 구술 증언이 포함되어 있다.


영암군 삼호읍, 신북면 등지에서는 지금도 어르신들이 옛날 방식 그대로 어란을 담그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 때 잡은 숭어에서 알을 꺼내, 거친 소금으로 절이고 햇살이 잘 드는 마당에서 말리는 풍경은 이 고장의 전통 겨울 살림 중 하나였다.


특히 제사상에 어란 한 점이 올라가야 대접하는 마음이 담겼다고 믿었기에, 이 음식은 단순한 반찬이 아닌 공동체의 정체성과 연결된 음식문화의 산물이었다.


영암 어란은 생물과 영암이라는 땅, 그리고 사람의 손맛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역사적 음식문화의 정수이다. 그 속에는 남도의 바람, 영산강의 물결, 조상들의 삶이 켜켜이 배어 있다. 우리는 이 어란 한 점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영암이라는 땅의 미각과 기억을 함께 음미하게 된다.



참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 조선왕조실록,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이규경,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 조선 후기

지역 N문화.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773

디지털영암문화대전 https://yeongam.grandculture.net/yeongam/toc/GC04400441

영암군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