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기를 포기하지 마세요
퇴사를 일 년쯤 앞두고는 매니저와 대화가 단절되다시피 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통해 대화하는 식이었다. 분명히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누군가 불러 가보면 다른 동료가 매니저의 말을 전달했다. 처음에는 피차 서로 어색하고 불편했던 터라 다른 사람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게 편하기도 했고 시간이 얼마쯤 흐르자 자연스러워졌다. 나 또한 업무 상 물을 것이 있으면 동료에게 궁금증을 넌지시 밝혀 동료들이 “그럼 내일 매니저님 오시면 내가 물어보죠 뭐”라고 하는 식이었다. 동료들도 나와 매니저 사이의 불편한 기색을 읽고 있었던 지라 매장의 평화를 위해 반쯤은 자발적이고 절반은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중간 역할 자처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민망하고 미안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대화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업무상 필요하다고 생각해 동료를 통해 물음을 전달해도 중간 역할자인 동료가 해당 사항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생략해버리거나 혹은 축소해 전달하게 되면 완벽하게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다. 또 매니저의 답변에 즉각적으로 다시 물음을 던질 수 없다 보니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기도 했다. 애써 대신 물어준 전달자에게 재차 다시 물어달라 부탁할 수는 없어서 어영부영 대화를 마무리하기도 부지기수였다. 백화점 근무 특성상 항상 같이 근무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스케줄이 맞지 않으면 거의 일주일 만에 보는 동료가 있을 정도로 스케줄에 변동이 많았다. 때문에 이번 주 업무에 필요한 질문이었는데, 동료가 매니저에게 묻고 또 동료를 통해 답변을 듣는 과정은 한참이나 지난 후에 전달되는 경우가 많아서 결국 해당 주의 업무에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런 식의 대화 방식은 자잘한 업무에 차질을 빚은 것은 물론,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되게 만들었다. 언젠가는 동료가 “우리 OOO행사 좀 있으면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나는 멍청하게 “OOO행사해요? 언제요?”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매장 내 중요한 행사나 업무가 있을 때 동료 구성원들과 함께 내용을 공유하고 업무 방식을 의논하게 되는데, 해당 과정에서 배제되다 보니 나중에서야 뒤늦게서야 해당 내용을 공유받고 이미 정해진 방식을 전달받아 수행하는 역할에 그치게 된 것이다. 구성원으로서 함께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면서 얻을 수 있는 동료 의식과 어려운 문제를 함께 의논하며 해결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일 그 자체에 관한 즐거움에서 배제되었다. 일의 주체적 참여자가 아니라 단순히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보조자 역할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 원하는 나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허탈감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퇴사를 한 달쯤 남겨두고는 이런 일도 있었다.
“OO씨 방금 어떤 고객님이 전화 오셔서 지난번에 할인해서 구매해 가셨는데 아직까지 하면 사러 가고 싶다고 문의전화 오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연락처 남기시면 행사할 때 연락드리겠다 말씀드리니, 고객님께서 직원한테 이달까지 한다고 들으셨다는데.. 우리 행사 안 하지 않나요?”
“이거 지난달부터 20% 행사했잖아요.”
판매가 가장 중요한 곳에서 행사 판매의 일정조차 전달되지 않는 실정이었다. 매니저가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니, 다른 구성원조차 누군가는 이야기하겠지 하고 나 몰라라 하거나 잊어버렸다. 누굴 탓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매니저와의 대면 대화를 일정 부분 포기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업무 성과에 마이너스가 되었고, 일에 있어서 어떤 성취감도 가져오지 못했다.
누군가 상사와 갈등을 겪고 있어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대화에 어려움을 갖는 분들이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 기회를 엿보고 시도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물론 나를 싫어하는 누군가와 대면하다는 것이 아주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당장 퇴직을 하거나 팀을 옮기거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앞으로의 업무 성과와 그에 따른 보상을 위해서라도 계속 시도해야 한다. 상사가 기분 좋을 때 기회를 봐서 면담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문제를 지적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도와달라고 먼저 손 내밀어 보시길 바란다. 당장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들은 바가 있으니 아주 모른척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이걸 하지 못해 몸도 마음도 너절해져 결국은 퇴사를 선택했지만, 다른 이들은 현명하게 대처하고 스스로를 지키며 앞으로 나아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