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란 무엇일까(1)
매일 퇴근 후 납덩이같은 발걸음을 옮겨 버스에 몸을 싣던 날들이 있었다. 온몸에 촉수가 돋아난 듯 뒤통수에도 뾰족한 가시들을 세우고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얼 먹으려 해도 손이 떨리고 가슴이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아 몇 숟갈 국물을 떠먹고는 모조리 국그릇에 밀어 넣고 끝내 못 먹을걸 쓰레기로 만들었구나 하는 죄책감과 함께 식판을 반납구 레일 위에 올려놓았다. 답답한 마음에 도저히 백화점 건물 안에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갔다.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누구에게도 마음 털어놓을 수 없고 따뜻한 말 한마디 얻어내지 못한 때였다.
그럴 때면 카페로 갔다.
백화점 정문에서 신호등을 기다려 길을 건너면 바로 보이는 카페는 크지 않아 아늑하고 카페 주인의 밝은 인사와 미소로 환한 곳이었다. 무엇을 바라 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때는 그의 친절함에 눈물이 핑 돌만큼 따뜻했고 안심되었다. 이곳에선 나의 말과 행동을 검열하지 않았도 되었고, 말속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지 않아도 되었다. 안전하다 느꼈고 경계를 느슨히 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오고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사십 분 남짓한 짧은 점심시간. 그렇게 그날 하루치의 다정함을 받아왔다.
이것에 기대어 무시와 멸시, 비참함을 견뎌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이 작은 친절을 바라 이곳으로 오는 거구나."
일에 대해 생각한다. 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서비스직이란 무엇일까. 카페 직원과 백화점 직원. 둘 모두 재화를 판매한다는 점에서 같다. 나와 카페 주인은 무엇이 다를까. 한 사람은 다정을 건넸고 다른 한 사람은 물건을 주었다.
“내가 친절을 바라는 건 아니니까.”
라식 수술을 앞둔 동료가 한 말이다. 시력 교정 수술 병원을 찾던 중에 여러 후보군을 놓고 한 이야기였다. 친절은 바라지 않으니 일(수술)만 잘하면 된다는 말이었는데, 어쩌면 이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쁜 현대 사회에 친절까지 바란다면 과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서비스직에 일하는 나로서도 친절이 어려운 순간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백화점에 오는 사람들은 다 대접받으려고만 하지.."
하루종일 사람에 시달린 직원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억지와 요구에 지쳐 영혼까지 탈탈 털린 후엔 그 말이 사무치게 와닿는다. 돈을 지불하는 고객이니까 대접받아 마땅한 분들께서는 직원을 동등한 인간으로 봐주지 않는 듯하다. 어느 광고에서 '고객이 왕이다'라는 말이 나온 이후로 왕처럼 대접받으려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 21세기에서도 신분제는 여전하다. 바뀐 것이라면 돈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왕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세상에 왕이 너무 많다. 왕권강화를 위해 갖은 애를 썼던 이들이 알게 된다면 놀라 기함할 일이겠지만.
그러나 백화점 앞, 길 건너 카페를 생각한다. 친절하고 활기찬 인사를 떠올린다. 생색 없이 건네진 작은 쿠키와 어느 날은 맛을 보라며 작은 접시에 담아준 향긋한 사과를 상기한다. 카페 문을 나설 때 잊지 않고 잘 가라 소리내주던 걸 기억한다.
내가 이 다정함에 값을 지불했던가. 이것은 값을 매길 수 있는 것인가. 내가 낸 커피 값에 이게 포함되었나. 그렇다면 (그 값어치는) 충분한가. 서비스직이란 유형의 물건뿐 아니라 무형의 친절도 함께 판매하는 것인가. 나의 친절은 얼마짜리일까.
다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를 둘러싸던 포근함을 회상한다. 내가 받은 건 단지 지불한 값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그 이상의 것이다. 그 너머의 것이다.
지난 4년 간 백화점에서 마주한 고객 중 나와 같은 이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백화점으로 온 것은 아닐까. 작은 친절을 바라 왔는데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실망해 돌아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상상일지도 모른다. 고객은 물건을 사러 왔고 나는 판매원이니까. 값을 지불하고 물건을 주는 것 외에 다른 게 있을까. 그러나 내가 받은 다정함에는 그것만 있진 않았다.
또다시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일’이라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인가, 일을 통해 보람과 성취를 바란다면 욕심인가. 돈과 보람과 성취를 한꺼번에 얻을 순 없는 것인가. 이를 모두 얻어낼 수 없다면 나는 지금 실패한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것은 나의 게으름의 결과인가.
일터에서 맺어지는 관계는 무엇일까. 단순히 업무를 함께 하는 동료일까. 감정적인 이해까지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일만 잘하면 되는 걸까. 일을 하기 위해 한 공간에 모였다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시적인 관계일까. 동료와 개인적인 친분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가는 걸까.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갈팡질팡하는 마음속에서 출렁였다.